반지의 제왕 열풍속에 성탄절 전야에 우리를 찾아 온 684 북파 부대원의 비극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 실미도. 82억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우리나라 최고의 강우석 감독이 연출한 영화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 우리 영화입니다. 모래시계에서 한번 다룬 삼청교육대 내용을 또 소재로 한 강우석 감독이 기획한 김민종, 김정은 주연의 나비 영화가 별다른 재미와 감동을 못 주었기 때문에 야망의 전설이라는 KBS드라마를 통해 한번 소개가 된 소재를 강우석 감독이 직접 연출한 실미도는 어떤 영화인지 참 궁금했습니다.
야망의 전설에서 실미도 부대원들의 훈련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 영화 실미도에 그려진 훈련 장면 중에는 불에 달궈진 쇠로 등을 지지는 장면 외에는 특별히 색다른 내용은 없었습니다. 영화속에 묘사된 액션 장면도 헐리우드 액션영화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참 소박하고 촌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영화의 반 이상이 훈련 장면이고, 실미도를 탈출하는 과정과 청와대로 향하는 도중에서의 액션도 열심히 총쏘는 것외에는 별 내용이 없습니다. 북파 부대원에 대한 이야기도 이미 소설과 드라마, TV시사 프로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특별히 모르거나 색다른 내용은 없었고, 영화의 이야기 구조도 참 단순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분명히 나비처럼 별로 재미와 감동이 없어야 하는데, 강우석 감독이 직접 연출을 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정황의 불리함을 다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실미도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소외받은, 더 이상 기댈 곳도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도 있고, 전원 본인도 모르게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입니다. 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범죄자나 소외된 사람들을 훈련시켜 북으로 침투시킬 준비를 완벽히 해야하는 부대 책임자와 중사 두명, 기간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박정희가 권좌에 있는 한국 정부가 있고, 그 위쪽으로는 김일성이 주석으로 있는 북한이 있습니다. 남과 북의 관계는 70년대 들어 급속도로 개선되고, 중앙정보부의 우두머리는 바뀌고, 북파되어 김일성을 죽이고 나서 인간답게 제대로 살아보겠다고 죽도록 고생하면서 훈련을 열심히 한 실미도 대원들은 아무리 북에 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실미도 사건이 실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그다지 볼만하게 잘 만든 영화가 안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실제의 일입니다. 기간병을 죽이고 실미도를 탈출하지 않았으면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684 북파 부대원들의 너무나도 슬픈 이야기. 광주민중항쟁 때도 그랬듯이 국가권력에 의해서 국민들이 얼마나 비참히 살해당할 수 있는지를 실미도는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에 한국형 블록버스터 액션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영화 실미도는 관객들에게 아주 슬픈 감동과 재미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볼만한, 보았으면 좋을 영화가 된 것입니다.
강우석 감독, 1988년 농촌 총각들의 결혼 문제를 슬프게 다룬 달콤한 신부들로부터 시작해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1과 2, 최근 작품인 공공의 적과 실미도까지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입니다. 코믹한 영화와 항상 그 시대의 세태를 잘 반영한 영화들을 감독, 제작, 기획해왔습니다. 올해에는 실미도를 직접 연출하고, 나비와 천년호, 선생 김봉두, 거울속으로를 기획했고, 불어라 봄바람을 제작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담길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주시길 기대해봅니다. 1997년 IMF때보다 요즈음 시대의 경제와 서민들의 삶이 훨씬 더 안 좋다고 합니다. 해피엔드외에는 딱히 IMF때의 우리들의 삶이나 사회모습을 영상으로 담은 영화가 별로 없습니다. 200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영화가 전혀 없습니다. 실미도처럼 30여년(살인의 추억은 10여년)이 지난 후에서야 제작되어서는 결코 안될 정도로 끔찍하고 비참한 일들이 현재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현실의 문제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영화제작, 기획, 연출을 강우석 감독님에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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