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에로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를 전면에 내세운 한국 최초 코믹. 단지 전체적인 부조화가 장르를 잊어버린 치명적인 오점에서 벗어나기 힘들 듯.
우리니라에서 크리스마스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마 어린 아이들이라면 맛있는 것을 먹거나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연인과 함께 사랑을 확인하는 조금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반대로 솔로인 성인들은 무지하게 외로움을 견디어야 하는 그런 날일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도 크리스마스는 없었으면 하는 날 중의 하나이다. <해피에로 크리스마스>는 적어도 이런 관점에서 시작한다. “솔로 없는 크리스마스를 위하여”란 구호를 외치며 만리길을 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 같다.
현재 극장가에서 한참 상종가를 치고 있는 <러브 액츄얼리>란 영화를 보자. 아마 솔로 혼자서 영화를 본다면, 나올 때 투덜투덜하며 극장 문을 박차고 나올 법한 영화이며, 또한 전혀 모르는 남녀가 나란히 영화를 본다면, 분명 두 손을 꼭 잡고 나올 만한 영화이다. <러브 액츄얼리>의 시작은 <해피에로 크리스마스>와 유사성을 가진다. 크리스마스날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꼭 같이 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낸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적어도 두 영화에선 말이다.
이와 같이 두 영화는 유사하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간다. <러브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적절하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해피에로 크리스마스> 역시 크리스마스를 중심으로 사랑이 이루어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동시에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웃음을 선사하려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같은 줄기에서 시작했으나, 뻗어가는 모양새는 아주 다르다.
<해피에로 크리스마스>는 분명히 관객들을 웃음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 많은 장치를 한다. 전혀 깡패답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방석두(박영규)와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포순이 성병기(차태현).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라이벌 관계라고 한다. 단지 뜨거운 목욕탕에 자신을 무참히 내동댕이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시키고 있다. 그리고 성병기가 성인이 되어서 한 여자, 허민경(김선아)을 사랑할 때 또 한번 라이벌로 등장한다. 참 이런 어처구니없는 관계형성이 조선팔도에 어디 있단 말인가, 참으로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황당하고도 기막힌 구성이다. 이런 구성이 영화의 장르적 실패에 큰 공헌을 한다. 어릴 때 그 기억 하나만으로 경찰이 되고, 방석두를 자기 손으로 잡겠다고 오두방정 떠는 모습으로 웃으라고 감독은 요구하지만 전혀 동요할 수가 없다. 또한 방석두가 허민경을 사랑하게 된 이유나, 과정을 살펴볼작시면 이건 어린 아이들 코 묻은 돈 뺏어먹자는 심보가 아니던가. 침 한방에 사랑이 꽂히는, 특이하고 색다른 모양새였지만 관객에게 다가갈 수 없는 억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해피에로 크리스마스>에서 나오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볼작시면, 영화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것 역시 참으로 볼상 사나운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에피소드들은 한 방향으로 집결시키는데 실패를 한다. 16미리 에로 영화를 찍는 일당들. 에로 영화 제목만 크리스마스와 관련을 지을 뿐, 영화가 가고자 했던 의미와는 전혀 별개로 따로 노는 물이 되어버렸다. 또한 동관(오태경)과 해민(이청아)이 나누는 알콩달콩한 사랑은 재미도 충분하고, 순수함이 베어 있으나 이 또한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무관한 듯 보이니 이것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러브 액츄얼리>와 같이 한 곳으로 집결시키지 못함은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다.
<해피에로 크리스마스>는 분명 크리스마스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작 크리스마스와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은 허민경의 생일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보여지고, 느껴질 만한 것들이다. 분명 크리스마스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하면, 모든 것들이 크리스마스를 향해 가야 함이 당연한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크리스마스의 특징이 드러난 것도 없거니와, 어떠한 분위기도 형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것을 보고 크리스마스를 느끼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학교 시험을 다 마친 동생과 같이 영화를 봤다. 그 동생이 영화가 끝나자마자 필자한테 한마디를 던졌다. “오빠! 이 영화 장르가 도대체 뭐예요?”하고 말이다. 오늘 왠지 후배의 이 한마디가 귓가에서 윙윙 맴도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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