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5일 밤 11시... 서울의 어느 영화관. 평일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 앞은 발 디딜틈 없이 북적인다.
영화사상 최초로 전 세계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개봉(한국시간 저녁 11시, 뉴욕 오전 9시, LA 오전 6시, 런던 오후 2시, 모스크바 오후 5시, 방콕 오후 9시)하는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의 첫 상영 테이프를 끊기 직전... 세계 최초 공식관람이라는 흥분된 순간을 맞으려 하고 있다.
밤 11시 표는 진작부터 매진이라 표를 구하지 못한 일부 관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는 사태가 속출하고, 그 만큼 밤 11시 상영회 관람의 의미는 특별한 의식처럼 보인다. 오늘 뉴스를 보니까 어제 <매트릭스3: 레볼루션> 밤 11시 한 회 상영(객석 점유율 96%)만으로 6만5천명(서울 2만9천5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니, 일단 초반기세는 메가톤급 흥행이다.
어쨌든, 1999년 홀연히 나타나 영화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던 <매트릭스>, 그 신화의 종착점을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감상을 떠나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아쉬움과 허무함이었다. 결말에 다다른 순간, 이젠 더 이상의 <매트릭스>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수많은 담론을 생산해왔듯이 <매트릭스> 시리즈는 3부작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철학적, 종교적, 수학적, 과학적 사고를 쏟아낼 것임에 분명하다.
<매트릭스> 1편의 심오함이 2,3편에 이르러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다소 변질되었다고 할 지언정, <매트릭스>는 분명 세계영화 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매트릭스3: 레볼루션>을 통해 위쇼스키 형제 감독은 안전한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을 대표하는 네오와 악을 대표하는 스미스의 양극점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인한 힘의 균형이 결국 세계와 우주의 본질이라는 커다란 진리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기계도 인간속에 공존의 메시지를 담고있는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적 재미로서의 <매트릭스3: 레볼루션>의 백미는 1편의 네오가 탄환을 피하는 장면, 2편에 고속도로 장면이 있다면, 시온과 기계의 대규모 전투와 네오와 스미스의 빗속 최후의 결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필히 영화관에서만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매트릭스>의 아이콘이었던 '블릿 타임(Bullet Time: 정지된 시간)'이 3편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시온과 기계와의 전투가 분명 스펙타클하지만 거친 전투의 묘사가 <매트릭스>의 이미지와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전쟁씬의 비중이 크기에 검은 옷을 입은 네오의 멋있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것과 모피어스의 역할이 미미해 보인다.
이제 <매트릭스>에 열광했던 그렇지 않던, 11월 5일 밤 11시를 기해 뚜껑은 열렸고, 재미있다 재미없다는 논리보다는 <매트릭스>란 무엇인지 그리고 현실속에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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