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는 요즘처럼 화려하고 짜릿한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지나치리 만큼 평범한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갖가지 디지털 도구들로 사랑이 손쉬워진 세상에서 오로지 그리움 만으로 서로를 마음속에 간직해 가는 사랑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사랑했지만 떠나 보낸 아오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준세이의 눈은 이슬 가득 얹힌 거미줄 처럼 방금이라도 쏟아질 듯 눈물이 걸려있습니다. 이별의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멀리 피렌체까지 와서 고미술품 복원 스튜디오에서 열심히 일해보지만 그의 냉정해 지려는 노력은 이내 슬픔에게 들키고 맙니다. 고미술품을 복원하는 것은 '옛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것' 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스러져 가는 오랜 추억의 끝을 부여잡고 살아갑니다.
그에게 10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 듯, 그리움 저편에 살고 있는 그녀의 삶에도 분명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아오이의 시각에서 쓰여진 소설부분을 생략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일어난 일들은 짐작으로 알 수 밖에 없습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그녀는 과거의 슬픈 기억따위는 잊고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살아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사랑을 추억하는 것은 남자의 몫이라고.. 여자들은 현실에 충실하여 과거의 기억따위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녀도 사랑했던 그를 마음 속에 묻은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오랜세월이 흘러 받아본 준세이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나 (타케노치 유타카의 매력적인 저음은 남자인 제 가슴속까지 사정없이 두드려 댑니다) 그 편지를 읽고 공중전화로 그에게 전화해 보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는 아오이의 모습은 사랑의 상처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경험해 보았을 가슴 아픈 모습 들 입니다.
밀라노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그 동안 냉정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아오이의 기나긴 눈물... 그 눈물 끝에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준세이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출구를 향하는 수 많은 인파의 뒷모습 속에서,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그 남자만이 아오이를 향해 서서 나즈막한 미소를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남녀가 사랑하게 되면 냉정과 열정사이를 수없이 오가게 됩니다. 때론 뜨거운 열정에 빠져 이성을 잃게 되기도 하고 어느새 열정은 냉정이 되어 무심함의 시선으로 서로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깁니다. 민들레 꽃씨처럼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게 냉정과 열정사이를 날 수는 없는 걸까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극장문을 나설 무렵엔 따스함에 뭉클해진 가슴으로 가을풍경의 서늘함 조차 녹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움이 병처럼 깊어져서, 피없는 심장처럼, 짠 맛을 잃은 바다처럼 슬픈 연인들이여..
낙엽마저 떨어져 쓸쓸함이 묻힌 곳에 또 한줄기 눈물을 심게 되겠지만,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그 맑은 겨울 별들이 슬픈 연인들의 심장에 떨어져 밝게 빛나는 추억으로 박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과 슬픔을 간직한 계절에..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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