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풀"을 프랑소와 오종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보았을 때 그 피상적인 느낌이란건 대략 이렇다. 마치 원시 밀림 속에서 발견한 커다란 다이아몬드 원석이 정밀한 세공 과정을 거쳐 이제는 시내 백화점 1층 진열대에 전시된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철없던 시절 우연히 만나 열정을 불태웠던 추억 속의 시골 처녀가 어느날 TV 브라운관 속의 '요조숙녀'가 되어 눈 앞에 나타나 버린 것만 같다. "사랑의 추억"도 그러했지만 "스위밍 풀"을 보다보면, 거칠었지만 그 속내가 다 들여다 보이던 이전 작품들의 순수한 표현 방식이 아쉬워 진다. 이런 느낌은 아마 국내 미개봉작인 "8명의 여인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삼십대 중반 젊은 동성애자 감독의 개성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걸 드러내놓는 방식은 처음보다 많이 조심스러워진 것이 사실이다. 프랑소와 오종의 전매 특허라 할 수 있는 광기와 살인, 그리고 섹슈얼리티 등에 대한 직설적인 묘사가 대부분 암시적으로 처리되고 대신 그 자리를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가지 않으면 쉽게 놓칠 수 밖에 없는 섬세한 변화를 따라가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는 보다 많은 관객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좀 더 보편적이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 한가지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준 요인으로 이전보다 여유있는 제작비와 좀 더 능숙한 스텝들, 즉 제작환경의 변화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확실히 "스위밍 풀"의 화면은 전작들 보다 좀 더 섬세하고 안정감이 있으며 동시에 훨씬 대중적이다.
"스위밍 풀"은 샬롯 램플링의 영화이기도 하다. "사랑의 추억"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까탈스럽기 그지 없는 영국인 여류 추리소설 작가의 캐릭터와 복잡한 심리 변화를 능숙하게 연기해냈다. 그녀의 카운터파트 줄리 역으로 등장한 뤼드빈 사니에르는 "스위밍 풀"을 보다 대중적인 영화로 만들기 위한 가장 노골적인 선택이었다 할 만큼 젊고 매혹적인 섹슈얼리티를 체현해냈다. 영화는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들이 항상 그래 왔듯이 한정된 공간 내에서 전개되는 이 두 캐릭터 간의 강렬한 대립과 조심스런 화해를 모색한다. 관객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는 "스위밍 풀"의 모호한 결말 또는 반전은 프랑소와 오종의 이전 작품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요소인데, 이 역시 나름대로는 좀 더 많은 관객 들에게 쉽게 어필하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으로 보인다.
"스위밍 풀"은 프랑소와 오종의 이전 작품들을 보아온 사람들에게나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다소간의 낯선 느낌을 남기는, 다시 말해 어중간하게 만들어져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아쉬운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