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없는 마음으로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신밧드 : 7대양의 전설"을 봤다. 러닝 타임 87분으로 마치 잘만든 게임 타이틀을 즐기듯이 신밧드가 몇 개의 난해한 미션을 통과하는 모습을 정신없이 지켜보다 보면 영화는 금새 모두가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슈렉"과 같이 기존의 장르를 비틀어 보이는 재기발랄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디즈니처럼 무슨 의무라도 되는양 뮤지컬 장면을 끼워넣는게 없었던 점은 괜찮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새로운 헐크가 그때의 헐크가 아니듯이 새로운 미국산 애니메이션에서의 신밧드도 나 어릴적 TV를 통해 즐겨보던 그 숏다리 신밧드 와는 매우 다른 새로운 신밧드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도 아닌데 미국산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게된 이유는 아무래도 "신밧드 : 7대양의 전설"에 참여한 초호화 목소리 출연진 때문이었다. 나이 많은 관객들 입장에선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없어 보이는 이런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의 장르적 한계를 스타 캐스팅으로 보완 하는데 성공한 경우라고나 할까. "신밧드 : 7대양의 전설"에는 광고를 통해 이미 잘 알려졌듯이 언제나 영화 팬들로 하여금 다음 작품에 대한 갈증을 심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브랫 피트를 비롯해서 캐서린 제타 존스에 미셸 파이퍼까지 참여했다. 그리고 대사량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조셉 파인스의 영국식 액센트까지 들을 수 있어 나름대로 좋았다.
이 가운데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혼돈의 여신 에리스 역을 맡아 영화 속 유일한 악역 캐릭터에 신비감과 생기를 불어 넣어준 미셸 파이퍼의 팜므 파탈적인 목소리였다. 아름다운 여인의 위악은 어찌 그리도 매혹적인지. 실사 영화에서는 사실상 단 한번도 악역을 맡은 적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이번 애니메이션에서의 목소리 출연은 나와 같은 오랜 팬 입장에서는 정말 놓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주인공 신밧드의 재기발랄하면서도 쾌남아스러운 캐릭터는 브랫 피트의 평소 이미지와 비교적 잘 어울리긴 했지만 막상 애니메이션 속에서 눈에 보이는 신밧드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조지 클루니를 떠올리게 할 만큼 너무 선이 굵게 그려진 편이었다. 물론 만약 조지 클루니가 그 목소리를 연기했더라면 나이를 10년은 더 먹은 장년의 신밧드가 되었어야 했겠지만.
아동용 미국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번 "신밧드 : 7대양의 전설"은 약속을 지키고 때로는 자신의 목숨 보다도 친구를 더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런 마음가짐을 어린 관객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7대양을 누비는 바다의 도적 신밧드가 시라큐스의 왕자 프로테우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안락한 낙원의 섬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스스로 사형대 앞에 나타나는 장면은 이 전통적인 스토리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평소와는 달리 나직한 목소리로 '...친구' 라고 말하는 브랫 피트의 음성과 신밧드의 진지한 표정은 그 어떤 설교 말씀 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갖고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이 파고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