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보는 내 머릿속에는 한심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역전에 산다>에게 너무 내가 짜게 평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를 다 본후 나는 그 두 영화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별 반개씩 상향조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영화평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말을 서두에 쓴 이유는 하나다. 한 마디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엉망인 영화다. 아주 재미난 소재와 우수한 배우들을 가지고 저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왜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가 이 정도의 영화밖에 되지 않았을까? 이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사투리에 의존하고 상당히 과장된 부분은 있지만 초반 컨셉에 의해 굴러가는 40분까지의 지점은 충분히 볼만하다. 전국 3만등의 태일(차태현 분)이 일매(손예진 분)를 차지하기 위해 망가지는 모습들은 귀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이 대학에 가는 순간부터 이 영화의 컨셉은 산산이 박살나고, 어설픈 신파멜로의 공식으로 영화라는 문제집의 해법을 구하려 한다. 일매는 시한부 인생이고, 자신만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태일에게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거짓된 사랑을 하며 이별을 고한다고? 이 스토리는 상당히 귀에 익은 스토리다. 그렇다. 차태현과 손예진의 바로 이전 작품인 <연애 소설>의 주요 스토리와 일치한다. 여기에 이르면 그냥 할 말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TV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오종록 감독의 연출력에도 실망을 금하기 어려웠다. 감정을 뚝뚝 잘라먹는 편집은 둘째치고라도, 작품을 어떻게 이런 신파로 끌고 갈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같은 신파라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연애 소설>만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영화컨셉의 부재이다. 전반부의 코미디와 후반부의 신파멜로는 궁합을 맞추기에는 너무 극과 극으로 나선다. 살포시 웃음을 주던 <연애 소설>이 뒤에 가서 관객들을 엉엉 울린 것은 관객을 천천히 감독이 의도하는 감정안으로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에는 그런 노력도, 그런 설정도 없다. 배우들의 사투리와 오버액션으로 웃기다가 갑자기 일매가 죽을 병이라는 설정을 던져주고는 계단 위에서 사라져가는 태일의 등뒤에 대고 울음보를 터트리다가 아버지와 버진 로드를 맞춰보는 작위적인 설정만이 넘쳐난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위트, 센스, 절제 그 무엇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이런 설정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애초에 컨셉을 잘못 잡아서이다. 정말 감독의 실수가 두고두고 눈에 밟힌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의 공통적인 특징은 후반부에 억지스러운 감동연출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비단 이 영화들뿐 아니라 일련의 조폭 코미디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왜? 차라리 <오 해피데이>처럼 솔직하게 끝을 낸다면 나는 장르 코미디로 기꺼이 웃으며 즐겨줄 생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런 코미디 영화들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괴리감을 극한으로 몰고간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도 차라리 후반부의 신파멜로를 없애고, 태일이 3천등으로 성적을 올리는 고등학교 시절과,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대학 시절에 비중을 두어서 코미디로 일관했다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이 지속되지 않는데도 억지로 눈물을 짜게 하려는 수작은 너무나 화가 난다.
더욱 화가 나는 현실은 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도 분명히 흥행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현실이기에 나는 가끔 영화를 더 이상은 보기 싫다는 충동에 종종 휩싸이곤 한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분명히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때마다 영화 만들기 참 쉽다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곤 한다. (★)
※ 영화평에 너무 비난만을 나열했다. 사실 차태현의 연기에 대해서는 칭찬을 해도 될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난 도저히 이 영화에 대해 조금의 찬성표도 던지기 싫을 정도다.
|
|
|
1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