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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언어로, 때로는 몸으로 -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감각적인 표현 서슴치 않아
몇 차례의 상영여부 심의와 지하철 포스터 철거 등 개봉 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개봉을 앞두고 일반 시사회를 가졌다. 일반 시사회 전, 기자 시사회를 포함 몇 차례의 시사회 반응이 좋았다는 보도에 ''한국의 에로영화가 그래봤자''지 하는 맘으로 시사회장을 찾았다.
영화는 에로영화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로 카메라 앵글, 특유의 베드신과 초반부터 격렬한 정사 장면으로 시각적인 자극이 되기 충분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더 이상 단순한 시각적인 효과로만 통하지 않는 것이 요즘 관객의 수준이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것을 선호하는 영상 세대의 기호에 맞춘 것일까. 영화 내내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맛있는 요리) 성행위 때의 끈적끈적한 소리와 주인공들이 주저없이 가볍게 내던지는 성적 농담으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관객들은 압도당한다. 일부는 시작하기가 무섭게 자리를 뜨기도 하고..
이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를 통해 봉만대 감독은 2003년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감독의 말처럼 섹스 장르를 멜로나 액션 등과 같이 영화의 한 장르로서 양지로 꺼내야 한다는 것.
누가 그랬던가, 성은 더 이상 은밀한 것이 아니기에 구성애씨가 다시 브라운관에 나와야 한다고 일부 연예인들의 누드가 스포츠지의 1면을 장식하고 카메라폰의 등장으로 남의 사생활에 대한 엿보기가 음성적으로 커져버린 우리 사회. 예술 전용관이나 성인영화 전용관 설립을 운운하는 시점에서 섹스라 해서 더 이상 구습의 잣대로 음지로만 밀어넣어선 안될 것이다. 다만,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에 대한 안전장치는 유지한 채로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최근 영화관련 언론보도에 유난히 섹스 코미디 장르에 대한 소식들을 자주 접할 수가 있다. 얼마 전 자극적인 영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결혼은 미친 짓이다>, <몽정기>, <색즉시공>을 시작으로 한 2003년은 여름 더위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싱글즈> 그리고 문소리의 새로운 변신이 기대되는 <바람난 가족>에 이르는 바야흐로 섹스 코미디물이 전성기라고 할까..
그 전성기를 이어가듯 봉만대 감독은 ''낯선 몸, 낯선 맛, 낯선 자극'' ''성기에게 말걸기''(은희경의 ''타인에게 말걸기''에서 따온 듯) ''성기로 사과하기 사정으로 위로하기'' ''이기적인 사정'' ''우리 사랑의 마지막 탈출구'' 등 5개의 에피소드로 동거에 들어간 남녀가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가능한 대사와 배경음악은 절제하고 몸의 언어(행위와 소리)로 이끌어가는 모습은 현대소설의 최근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프랑스 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전수일 감독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정보석, 추상미 주연)의 원작자 김영하를 필두로 은희경, 성석제 등의 현대 작가군은 그 동안 금기시 되어왔던 나르시시즘, 죽음, 에로티즘, 성(SEX)의 화두를 꺼내 보이고 있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중에서
감각적인 영상 세대의 입맛에 맞는 이들 작가군의 소설들이 현대문학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한다. 특히, 파편화하는 주체의 비극을 확인하며 동시에 이를 완벽한 도달점으로 설정하면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예고하는 전수일 감독의 주인공 S의 직업은 자살 안내원이다.
봉만대 감독의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주인공 동기(김성수)의 직업 또한 호스피스이다. S처럼 동기 역시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으며 무료한 현실의 일탈을 꿈꾸는 신아(김서형)의 탈출구가 되고 있다.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작가 지망생 동기 역시 막힌 세계의 삶과 죽음 사이 순환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탈출구로서 섹스를 선택한 건 아닐까..
어차피 그녀는 그의 삶에 틈입한 곰팡이 같은 존재였다. 건조하게 살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건물의 음습한 곳에서만 서식하는 그런 곰팡이처럼 그녀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 구석구석을 균열시켜 놓았다. -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중에서
반면에, 신아는 절제된 대사를 통해 변화한 신세대 젊은이들의 성 의식을 환기시킨다. 친구와 대화하면서 남녀 간의 차이, 처음 만난 사람과 섹스를 할 수 있는가 관객에게 질문한다.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동기와 하룻밤을 보낸 후 낯선 동거를 시작하며 에너지가 넘치고 매우 육감적이며 직설적인 성애 장면이 한 겹 벗겨진다.
특히, 봉만대 감독이 발견해 낸 예비 스타, 신아 역의 김서형은 전작 <오버 더 레인보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의 조연에서 마치, <타락천사>의 이가흔을 보는 듯한 한층 성숙된 연기를 보여줬다. 스스로 실연을 했다는 자위장면에서 더욱 그렇다. 중성적인 매력과 함께 사랑에 있어 솔직하고 당당한 김서형은 영화 속 신아라는 캐릭터에 제격이었다고 할까.
동기 : 손부터 잡았어야 하는데.. 서형 : 이제부터 하면 되죠. 사랑에도 순서가 있나요?
동기와 첫 만남에서 '손부터 잡았어야 하는데'라는 동기의 말에 '이제부터 하면 되죠. 사랑에도 순서가 있나요?', '내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성기가 나른하게 느껴질 때쯤 다른 남자를 만났다' 라는 그의 내러티브는 감정에 매우 솔직하고 시원한 모습을 보여준다. 동기와 관계가 멀어졌을 때, '너가 내 몸을 가졌다고 날 다 아는 척 하지마'에서는 그 동안 한국 영화에 오랫동안 그려왔던 수동적인 여성상을 뒤집어 버린다.
하지만, 급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빨리 꺼진다고 했던가.. 둘은 서로간의 소통의 출구를 찾아 헤매지만 '너가 내 몸을 가졌다고 날 다 아는 척 하지마'라는 신아(김서형)의 말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찾으려는 탈출구(항문성교)에서도 소통할 수 없어 헤어지게 된다. 요즘 젊은 세대답게 사랑도 이별도 바로 결정하는 둘의 모습에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얘기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연애 행태가 미국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어, 아직 미혼이라면 혼전 동거를 1년 해본후 결혼하던지 아니면 결혼 후에 1년간 혼인 신고를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고..인기리에 방영중인 TV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은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화두가 아닐지..
한가지 더, <너에게 나를 보낸다> <거짓말> <미인>에 이어 이번 영화를 기획한 제작사 기획시대(대표 유인택)가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성공적으로 영화의 한 장르로서 에로장르(봉 감독의 말대로라면 섹스장르)를 개척하고, 앞으로도 관객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는 영화들을 계속 만들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2003/06/26 오전 10:33 ⓒ 2003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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