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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ve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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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4 오전 4: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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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1편은 블럭버스터가 아니었다. 제작비도 6천3백만 달러의 작은 규모, 흥행 비수기에 개봉했다. 개봉 첫주 성적도 2천 7백만 달러로, 큰 편은 아니었다. 작품에 대한 호평에 힘입어 총 수입 1억 8천만 달러를 거두긴 했지만 어쨌거나 큰 영화는 아니었다. 그해 흥행 1위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고, 가장 많은 화제를 뿌리고 다닌 영화는 '식스 센스'였다. 분명 '매트릭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네 시작은 미미하여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있었던가. 해외에서는 2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총 수입 4억 5천만 달러를 넘겨 워너 브러더스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이 기록은 '해리 포터'가 깼다) 워너 간부들이 흥분할 틈도 없이 dvd로 발매된 매트릭스는 500만장이 훨씬 넘게 팔리면서 1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매트릭스의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DVD '매트릭스 리비지트'는 거기에 2천만 달러의 수입을 더 보탰다. 신이 난 워너는 얼른 워쇼스키 형제와 2, 3편 계약을 했고 현재 개봉중인 2편은 모두들 알다시피 흥행 기록을 모조리 깨면서 질주 중이다. DVD로 발매 예정인 '애니메트릭스'와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도 엄청난 수입을 가져다 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요즘은 어딜가나 모두들 매트릭스 이야기다. 도대체 왜? '매트릭스'가 뭐 그렇게 대단하길래?
'매트릭스'의 스토리가 대단한가? 설마 일본 만화 한편도 안 읽어본 건 아니겠지. 특수효과가 대단한가? 대단하긴 하다. 하지만 플로우 모션을 비롯한 여러 특수효과는 이전에 CF에서 이미 많이 쓰여온 기법이다. 효과적으로 쓰이기는 했어도 세상이 깜짝 놀랄만큼 새로운 기법까지는 아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를 잘했나? 설마. 캐리 앤 모스가 잘해서? 잘하긴 했는데 그 때문에 '매트릭스'가 대박을 친건 아니겠지. 도대체 '매트릭스'의 성공 비결은 뭘까?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게임으로 온갖 프랜차이즈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승승장구를 하는 비결이 뭘까?
그럼 한 번 반대로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같은 상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었다. 영화와 만화와 애니메이션과 소설과 게임과 DVD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상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모든 상품이 하나로 묶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쓰는 핸드폰은 영화에 나온다. 반대로 그 영화를 핸드폰으로 볼 수 있다. 그 핸드폰의 CF에 나오는 가수의 노래는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고 라디오를 틀면 나온다. 그 가수의 CD를 카드로 사면, 사용한 돈의 일부를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고, 그것을 사이버 머니로 전환해서 아바타에게 새 옷을 사 입힐 수 있다. 아바타는 인터넷에서 내 캐릭터 역할을 한다. 원한다면 유명한 가수나 개그맨의 캐릭터를 다운 받아서 내 아바타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것을 핸드폰에 다운 받아서 초기화면에 저장시켜 놓을 수도 있다. 상품이 순환한다. 모든 상품이 하나로 묶여 있고, 소비자의 욕구를 따라가는 우리 시대의 문화 역시 상품을 따라 순환하면서 서로 묶여간다. 영화와 인터넷과 소설과 애니메이션과 게임과 DVD와 핸드폰과 신용카드가 하나로 묶이면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거대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었다. 예언이 실현된 가장 가까운 경우를 든다면 '해리 포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소설로 시작한 이 상품은 영화와 게임 같은 소설에 가까운 분아로 시작해서 아이들을 위한 팬시 상품과 음료수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넘나들면서 돈을 쓸어모으고 있다. 물론 '해리 포터'는 소설의 상업적인 파급력이 다른 영역의 문화 상품에까지 힘을 미친 경우다. 그렇다면, 한 문화 상품이 다른 문화에 영향을 끼칠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아예 이 소비 순환의 정점에 엄청난 아이템을 하나 떨어뜨린다면, 이 아이템이 모든 문화 영역에 파급력을 미치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대박 터지는 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매트릭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매트릭스'는 일본 만화에서, 비디오 게임에서, 혹은 이전의 액션 영화들에서, 혹은 SF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다. 모든 것이 이전에 있었던 것들의 짜집기다. 이것은 반대로, '매트릭스'가 모든 문화 상품에 모조리 들어맞는다는 것을 뜻한다. '매트릭스'라는 아이템(패러다임?)은 어디에도 잘 들어맞는다. 이건 게임으로도 변형 가능하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변형 가능하다. 마치 다른 요원을 붙잡아다가 자신으로 복제해버리는 스미스 요원처럼 다른 장르에 달라 붙어서 또 다른 '매트릭스'로 복제해버린다. '매트릭스'는 모든 것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일이 가능하다. 영화 '매트릭스 리로디드'만해도 그렇다. 카메라가 지온의 거대한 규모를 죽 훑어갈때, 우리가 보는 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수십편의 저패니메이션의 배경을 짜집기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다. 실제로 지온의 모습은 실제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컴퓨터로 '그린' 것이다. 그 장면의 마인드 부터 테크닉까지가 모두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떼거지로 덤벼드는 스미스 요원과 싸울때 우리는 액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3D 액션 게임의 동영상을 보는 것이다. 이것 역시 실제로 컴퓨터 그래픽 키아누 리브스가 컴퓨터 그래픽 휴고 위빙과 싸우는 것으로서, 그 마인드와 테크닉 모두가 [게임]이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일부분이 게임이고 일부분이 애니메이션이라면, 게임 '매트릭스'가 없을 이유는 뭔가? 애니메이션 '매트릭스'를 못만들 이유는 또 뭔가? 그렇게 이 매트릭스가 자기 복제를 해나가는 이유다. 시작은 미미했던 이 영화가 갈수록 파급력이 커져만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곳에서도 자기 복제가 가능한 패러다임이 문화 상품의 순환하는 소비 패턴의 한가운데에 떨어지면서 빵! 하고 터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깨달을 틈도 없이 '매트릭스'는 자기 복제를 해나갔고... 그래서 우리는 '매트릭스'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다.
누가 '매트릭스'를 막을 것인가. 그건 불가능하며,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매트릭스'는 첫번째로 나타난 거대 규모의 상품이다. '매트릭스'의 엄숙한 패러디인 '이퀄리브리엄'부터 대놓고 웃자고 덤벼드는 패러디인 '무서운 영화'와 'Sex and the Matrix'와 'that 70's Matrix' 까지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은 신나는 아이템이다. 이제 두번째, 세번째 상품이 등장 할 것이다. 우리는 그걸 즐기는 일만 남았다. 돈이야 좀 들겠지만, 그게 우리 프롤레타리아들의 힘든 삶에 그나마 허락된 흥미진진한 오락거리인데 꼭 거부할 필요가 있겠는가. 냉정하게 생각해봐라. 당신은 '매트릭스'에 있고 싶은가, '지온'에 있고 싶은가? 당신은 '매트릭스'를 보고 싶은가, '인어 아가씨'를 보고 싶은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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