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내치를 이제 쉰을 넘기시는 분들과 함께 보았다. 내 바로 뒷자리에 앉아서 보시던 그 두분은 상영내내 재미없고 뭐 이런 영화가 있냐며 투덜대시는 소리를 들었다. 나처럼 젊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이 영화의 화면들은, 최근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영화에 익숙하신 구세대(?) 분들에게는 부담스럽고 짜증나는 화면이 되어버린 것같다.
이 영화는 최근의 "스타일리스트" 영화답게 사람을 죽이고, 혹은 사람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을, 아무런 긴장감 없이 잘라내는 그런 화면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미 그런 소위 "엽기"라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별다른 느낌없이 다가오는 자연스런 문화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영상과 감동을 추구(?)하시는 분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문화적 충격이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은 글쎄, 재미있다거나 혹은 같은 수법을 너무 많이 써먹은, 계속 같은 스타일의 영화만을 내놓는 감독을 깍아내리는 평, 두가지 정도인것 같다(이건 전적으로 내가 읽어본 다른 많은 분들의 글들에서 받은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나는 그런 눈으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스타일"이 있는 영화와, 내 뒷자리에서 보시면서 당황해하시는 그분들의 영화적 관점에서 이 영화를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이 영화 스내치의 가장 큰 특징은 브레드 피트라는 젊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배우가 나왔으나, 그도 실은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누가 주인공이냐고 말할수 없는 주인공 부재(不在)의 영화이다. 주인공이 없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등장, 4-5개의 그룹이 등장해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인과 협박가운데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집시들의 등장. 전혀 상관없는 일들, 그것들의 우연하지만 유기적인 연결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예측불가능한 결론, 그것은 일본영화 "춤추는 대수사선"에서 이미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 흐름도 새로운 영화 흐름의 하나일까?
두번째. 지나친 폭력성의 단순화이다. 작년에 개봉한 일본영화 "포스트맨 블루스"에서 야쿠자의 졸개가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 있다. 음악이 깔리고....그 긴장감.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긴장감이 전혀 없다.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어, 처음에는 중요한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남자마저도 그냥 허무하게 죽는 모습. 그 죽은 사람의 팔에 달린 가방을 빼앗기 위해 마치 지나가는 일처럼 팔을 칼로 잘라버리는 장면. 그렇게, 엄청나게 폭력적이라면 폭력적일수 있는 장면들의 무긴장스럽고, 어떻게보면 황당할만큼 간단하게 처리하는 그 장면들의 배치야말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엽기"가 아닐까? 즉, 그런 냉혹함, 잔인함의 일상화를 과장된 화면속에 담아내는 것, 그것은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세번째. 영화의 주제 문제다. 이 영화 스내치에서 도대체 감독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굳이 거창하게 해석해서, "삶은 뜻하는 대로 되는것이 아니다?" 뭐, 어떻게는 이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의도에 대한 해석은 가능할 것이다. 유명한 평론가들의 해석이 많겠지만, 내가 본 이 영화 "스내치"의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그냥 봐라. 생각하지말고 그냥 봐라"
영화에서 굳이 무엇을 찾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고, 증거를 안남기기 위해 돼지에게 사람을 토막내어 던져주는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영화. 몇번이나 총알을 맞고도 절대 죽지 않았던 남자. 단 한방의 주먹으로 상대방을 KO시켜버리는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사투리 심한 말을 던지는 어떻게 보면 약해보이는 집시. 너무나 쉽게 털려버린 커다란 다이아몬드. 결론? 허망하기도 하고 너무나 급작스럽게 끝나버리고. 이런 영화에서, 삶의 진실 혹은 사랑의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타당하기나 할까? 물론 나도 이 영화에서 던져지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것을, 감독이 굳이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 짧게짧게 지나가는 메시지를 잡기위해 이 영화를 분석하고 이리저리 분해해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그런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과장되고 극적인 인물들의 행동안에서, 변화없고 지루한 일상의 탈출을 꿈꾸어보는 것으로 영화는 만족할 만한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영화를 가볍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그냥 '툭'하고 던져놓은 것 같은 이 영화는, 그렇게 일상적이라는 느낌을 전달받기 위해 들어간 노력이 다른 영화의 몇배나 된다는 것을 놓치면 안될것 같다.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특징적이며 살아있는 캐릭터부여, 그리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산만해질 수 밖에 없는 영화의 전개를 한곳에 몰아넣어 특별한 주인공없이, 1분을 나오건 5분을 나오건 1시간을 나오건 모두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만든 완벽한 시나리오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조소, 야유. 이런 것들은 아무렇게나 만들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독에게 똑같은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또 똑같은 영화야?"라고 비판을 쉽게 할수는 있지만, 실제 그렇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까? 어쩌면 그렇게 천재적인 재능을 같은 스타일의 영화를 고집하면서, 예전같으면 엽기적이었지만 이미 익숙해버린 느낌의 영화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것만을 바라는, 무엇인가 더 엽기적이고 더 잔혹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관객을 조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판단은 각자 할 일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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