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선과 악의 대립이 뚜렷하다 둘째, 선인과 악인으로 인물이 유형화된다 셋째, 선악의 복수가 과제로 주어진다 넷째, 잔혹할 정도로 치열한 무술 대전이 삶과 죽음을 걸고 벌어진다 다섯째, 빠른 템포와 증폭된 음성과 음향 효과가 필요하다 여섯째, 감추어진 수수께끼가 드러나면서 극적 반전이 생긴다 일곱째, 사랑 이야기가 부수적으로 들어간다 여덟째, 악은 소멸하고 선이 승리한다
<와호장룡>은....... 영화의 주조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선인과 악인의 구별이 없다 부수적인 인물로 푸른여우가 악인으로 등장하고 푸른여우를 잡으려다가 사이가 죽기도 하지만 그것은 영화에서 아주 부수적인 것이다 아니다 푸른여우의 독침 때문에 리무바이가 죽는다 그렇게 보면 아주 작은 악의 싹도 우리 삶에서 커다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권선징악적 요소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전개되는 수렌과 롱의 대전은 선과 악의 대립은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여인들의 내적 갈등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끝내 무엇이 승리하는지는 영화에서 알 수 없다 아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승리와 패배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선과 악의 대결을 주목하지 않는다
<와호장룡>은....... 잔혹한 무술 대전이 없다 죽음을 건 싸움이라고는 볼 수 없다 푸른여우는 역시 죽음을 몰고 오는 악의 상징이다 푸른여우가 가는 곳에 죽음이 있다
그러나 무협을 다루면서 이만큼 피를 흘리지 않는 영화는 없다 수렌과 롱의 두 번의 대전..... 삶과 죽음의 대전이 아니다 두 사람은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리무바이와 롱의 대전 하나.....운명적인 만남의 대전 스승인 푸른여우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복면의 롱 롱은 리무바이의 정통 무당검법에 놀라고 리무바이는 롱의 무당검법의 재질에 놀란다 둘.....새로운 스승으로서의 만남 리무바이는 다시 만난 복면의 롱에게 제자를 제의한다 회초리를 들고 검을 든 롱을 가르친다 셋.....사랑으로 표현되는 검술 휘청거리는 대숲의 대전은 이미 대전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갈등이다 휘어지듯 품으로 들어오는 여인의 마음....... 에로티시즘으로서의 검술 첼로의 흐느끼는 선율과 함께 적셔지는 사랑 더 이상 도망할 수 없는 롱의 마음이다
<와호장룡>은...... 증폭되는 소리가 없다 모든 대사는 조용하다 사색의 표백이다 인물들은 사랑이나 분노나 갈등을 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음악의 효과가 있다 북소리....첼로 소리....... 무협영화로서 瞑想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쓸쓸하다 고요함은 인물들의 쓸쓸한 내면 풍경이다
<와호장룡>은..... 수수께끼가 미약하다 하나의 작은 수수께끼가 있다 푸른여우가 롱의 스승이라는 사실..... 물론 이 수수께끼가 극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수수께끼는 중요 등장 인물의 필생의 과제이기도 하고 그의 인생을 뒤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푸른여우의 존재에 놀라지 않는다 푸른여우는 극적 반전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수수께끼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인가? 이 영화는 무엇에 주목하는가?
<와호장룡>은....... 갈망과 사랑에 주목한다 일생을 고요히 바칠 수 있는 성숙한 사람들의 사랑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 가는 보다 높은 가치에의 갈망 이 두 개의 목마름을 다루고 있다 배우들은 이 목마름을 절묘하게 표출한다 그들의 눈빛이 그들의 손길이 그들의 목소리가 영화를 완성시킨다
이 영화는 다르다 그 다름이 이 영화의 아름다움이다 낯설게 하기..... 형식주의자들의 비평 이론에 의하면 낯설게 하기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미학이 아닌가!!
아주 낯선 무협영화 시시해 보이는 조용한 대전 속에 깃든 신비 억제된 감정이 담긴 목소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사람들은 찾을 수 있다 그 아름다움을......
2003-04-21 오전 11: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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