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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목]덤핑하려는 감동에 값을 치르고 싶지 않은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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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슈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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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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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7 오후 11:38:01 |
1842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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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슈미트는 참으로 착한 영화다. 흔하디 흔한 반전이나 튀는 캐릭터(그나마 몇가지 있으나 그것조차 본것들뿐이다.)화려한 비쥬얼 , 독특한 소재 , 그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노년의 슈미트를 바라보는 감독의 착한 시선만이 가득한 근래에 보기 드문 영화다. 뛰어난 배우 잭니콜슨의 살찌고 주름진 얼굴과 몸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의 무상함에 젖어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는(나는 아직도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새에서본 그의 연기를 최고로 기억하고 있다.),
무엇하나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작품의 장점의 모든 것이라는데 아쉬움이 가득한, 그래서 씁쓸한 영화다. 영화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작한다. 시계만 뻐끔거리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서 고른숨만 조용히 내쉬고 앉아있는 슈미트는 어떠한 동작도 대사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 슈미트는 할말이 별로 없다. 평생을 애가 닳게 일해온 직장에서 아직은 너끈히 일할수 있는 힘이 넘쳐나는 자신을 자르고 젊고 팽팽한 젊은 놈을! 내자리에 앉혀놓은 회사에서 쫓겨나는 마당에 퇴임식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절차가 마음에 들리 없다. 영화는 오프닝을 슈미트의 퇴임식으로 장식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퇴임식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된다. 슈미트는 다음날도 역시 늘 일어나던 시간에 (예상대로) 일어나고 하루를 무언가를 하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안팎을 오가며 바쁘게 지낸다. 죽어갈 날만 기다리는 늙은 몸뚱이를 조금도 쉬게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 늙은이 슈미트는 이제부터 시작될 자신의 무료한 삶이 꽤나 두려운 가 보다. 시종일관 초조해보이는 그의 모습은 안쓰러워 보인다. 늙거나 젊거나 삶은 시종일관 누구에게나 초조하고 고통스럽다. 평온과 행복의 순간은 왜그렇게 짧기만 하느냔 말이다...
영화는 이후, 슈미트의 여정을 말없이 따라간다. 헐리우드식 휴머니즘이 강조되는 순간순간의 에피소드와 감정의 연결고리는 착하게 , 안정되게 단단히 엮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완성도는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늘 바쁘기만 한 딸과 그런 딸에 어울리지 않는 물침대 영업사원 사위 그리고 이상한 사돈은 그의 여정에서 만나는 주된인물들이다. 급작스럽게 시작된 아내없는 슈미트의 홀아비생활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영화는 세세한 장치들과 인물들에 신경을 쓴 정성스러운 흔적들을 내보여서 마음에 든다. 이야기 진행도 머뭇거림없이 평온해 보이는 영화의 외관과 달리 속도감있게 진행된다는 점도 영화의 장점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상하리 만큼 그간 헐리우드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안정된 방식의 이야기구조의 트루기만을 쫓기 시작한다. 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할것같은 조연들은 적시에 출연했다가 퇴장하며(슈미트의 여정속에 나타난 이상한 부부와 인디언등) 슈미트는 준비나 했던것처럼 지나온 시간들을 되밟겠다며 자신이 자라온 집과 추억들을 밟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딸은 아버지를 미워하며 늘 그랬던것처럼 딸은 일로 바쁘고 자신의 결혼에 아버지를 개입시키길 원치 않는다. 이 예정된 캐릭터들과 드라마구조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영화는 너무도 빤하게 가지 않아도 빤할 수밖에 없는 (헐리우드에서 잭니콜슨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탄생될) 인생을 되돌아보는 노년의 남성이 부인을 떠나보내고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위기감에 처한 보통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만큼 평범한 스토리에서 관객에게 울림을 전해주고 노년에서만이 느끼는 그 깊이 있는 인생에 대한 해석을 우려내려면 이만한 이야기와 캐릭터로 승부만으로는 당연히 모든 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 많이 보아왔던 이야기와 인물들에게는 심한 지루함과 상투성을 느끼고 쉽게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바웃슈미트는 너무도 안정된 노선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장점이 단점화 되고 영화의 미학은 지루함으로 퇴보되고 감동의 울림은 관찰에서 그치고 만다. 보통의 아주 밋밋한 영화들을 보고도 타인의 주목을 받을만큼 늘 눈물을 쏟아내는 수도꼭지인 내가 어바웃슈미트를 보면서 단한번도 눈물을 쏟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상투성에서 느껴지는 불편함때문이었다. 늘 헐리우드의 상업영화들이 만들어내는 휴머니즘이란 이렇게 빤한 몇몇의 장치들과 배우의 브랜드에 기대어 지나친 울림을 기대하는 상술이 내비쳐지기 때문에 조금의 창조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어바웃슈미트가 커다란 새로움을 반드시 동반해야 하는 영화는 아니다. 문제는 그만큼 많이 시도해온 과정들과 장치들에 감독의 어떠한 독창적인 이슈나 깊은 감정이 묻어나지 않아 타영화와 별반의 차별성이 찾아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조금더 깊이 있는 슈미트의 슬픔과 슈미트의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혹은 숨겨졌던 (전혀 가족이 알지 못했던 그만의 무언가!) 비밀이 노출될 순 없었던 걸까. 빈민구호광고를 보며 빈민에 굶주린 아이의 후원자가 되기를 선뜻 결심하는 슈미트의 순수한 캐릭터와 그후에 펼쳐지는 슈미트의 캐릭터는 왠지 일치가 되지 않아 납득하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부인을 잃은 슈미트의 상상하지 못할 외로움과 고통은 이해가 가지만 딸을 지키려는 과정이나 낯선 부부를 만나는 과정속에서 보여지는 슈미트의 귀여운(?)고집과 괴팍함은 앞에서 보여준 순수함과 너무나 큰 괴리감이 느껴져 납득이 되질 않는다.
영화에서 다만 뛰어난 것은 케시베이츠가 연기하는 로버트 허첼(슈미트의 사돈)역할이다. 이혼 후에 다가오는 노년의 불안감. 여성의 성정체성에서 혼란과 외로움을 느끼는 이 캐릭터는 매우 설득력있으며 창조적이다. 리얼리티가 물씬풍기는 이 캐릭터는 밋밋한 영화 어바웃슈미트를 보며 잠시동안 졸만한 가능성이 있는 관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효과적인 인물이다. (슈미트의 욕조에 겁 없이 들어가는 이 아줌마를 보라! 아직도 그녀는 여성이다! 슈미트가 남성인 것처럼.)
골든글로브가 주목한 잭니콜슨의 어바웃슈미트의 개봉을 오랜기간 기다려온 기대감이 지나쳤던걸까. 개성없는 시나리오가 만들어내기 역부족이었던 슈미트의 캐릭터의 한계성 때문에 잭니콜슨의 연기도 역시, 크게 빛을 발하진 못한다.(그가 얼마나 뛰어난 배우인가. 슈미트의 캐릭터를 살리지 못한 것은 고스란히 , 온전히 시나리오의 책임이다. 이순간 갱스오브뉴욕의 다니엘데이루이스와 디아워스의 니콜키드먼 줄리언무어 메릴스트립이 생각났다. 헐리웃의 대배우들에게 새옷을 제대로 입혀준 것은 역시 시나리오와 감독의 역량이었다.) 착하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 선함에 깊이 있는 해석과 창조적 이미지만 부가가 된다면 말이다. 물론, 어바웃슈미트는 그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빤한 트루기에 감동을 얹어 덤핑하려는 속셈만을 내비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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