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카의 충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가타카를 만난것은 공중파의 연휴특집프로그램을 통해서였는데 영화에 완전히 몰입되서 한동안 길고...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렸었다. 앤드류니콜감독은 전작 트루먼쇼와 가타카에 이어 여전히 현실을 완벽하게 아우르고 있는 디지털과 미래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를 [시몬]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의 전작들이 나의 호기심과 정서를 건드렸던 이유는 단순한 새로움을 뛰어넘은 "고뇌"때문이었다. 앤드류니콜이 "고뇌"하고 있는것은 적어도. 미래가 아닌 "현실"이었기에 나는 동감했다. 만약 그가 완벽한 테크놀로지의 노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아주 역겨운 헌사만을 보냈다면 나는 결코 그의 영화에 동감할수 없었을것이다. 진지한 고뇌없이 태어난 밝은 식견을 나는 매우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몬은 완벽한 여배우의 탄생을 기다린다는 설정에서 출발해서 판타지의 세계를 현실에 완벽하게 안착시켜 그려낸다.(이것은 영화의 진행 내내 그렇듯. 매우 역설적인 뉘앙스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진행은 매우 판타스틱하게 진행되지만 보는 관객은 결코 유쾌할수만은 없다. 왜냐면 그것은 너무나 완벽한 가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을 속일만한 반전따위를 장치로 두고 수를 세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가짜앞에서 진짜처럼 구는 주인공 타랜스키감독(알파치노)의 쩔쩔매는 우스꽝쓰러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결코 관객에게 "긴장할필요없으니 편하게 즐기시오!"라는 자막을 끊임없이 흘려보내는것만 같단 말이다. 그런데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독은 엄청난 비장의 무기를 감추었다 살포하는것도 아니고, 현실을 무조건 풍자하겠다는 대담성을 지닌것도 아닌데 관객은 편하게 즐기기는 커녕 언제 어느순간 타랜스키의 원맨쇼가 세상앞에 노출되고 말것인가에 더더욱 초조해지니 말이다.
자. 여기서 다시한번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타랜스키가 대중을 속이고자 했던 그 시점의 계기에 안착해보면, 해답은 간단하다. 타랜스키감독이 의도한것은 세상을 속여보자는것이었는가? 아니면, 찾고자 하는 명예였는가? 물론, 답은 후자다. 그러니까. 타랜스키가 간절히 갈망했던것은 세상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길 바라는 강한 "명예욕"이었던 것이다. 결국 개인적 욕망에 기인한 단순한 의도가 불러온 엄청난 결과에 영화는 내내 주목하지만 그것에 주목하는 관객을 감독은 비웃고 있는것이다. 그러니까, 앤드류니콜감독은 전작 [가타카]와 [트루먼쇼]에 이어 다시한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익명성"으로 간단히 정의내리는 것이다. 타랜스키가 얻고자 했던 유명세가 결국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시몬을 통해 얻어지는순간 관객과 함께 주인공이 절망해야 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에게 주어진 돈과 명예가 다시 절망의 끝에서 반환점을 돌아 그에게 고통의 순간으로 되돌아 올것이라는것을 그는 처음부터 예견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런 고통의 늪으로 뛰어든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때문이다.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라도. 단한번은 얻어보고 싶은 단한번은 주목받아보고 싶은 유명세에 대한 지나친 갈망을 앤드류니콜은 영화 [시몬]에서 완곡한 뉘앙스로 그려낸다. 영화는 뻔한 결말과 전형적인 캐릭터를 전전하면서도 순간순간의 재미와 통쾌함을 전해준다. 감독은 전작들에 비해 다소 낡은 방법과 낡은 결말로 산업사회를 아우르는 자신의 뛰어난 통찰력과 교훈따위를 관객에게 전해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앤드류니콜의 전작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진행과정상 보여준 감독의 헛점은 우리가 상상한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아차릴수 있는 순간에 해결되는 인위적인 상황(아주 많아 모두를 언급하기 힘들지만, 한가지만 언급하자. 타랜스키의 작업실까지 침입(?)했던 영화사 직원들이 충분히 설치했음직한 몰래카메라는 왜 하번도 나오지 않았을까. 또한가지. 왜 타랜스키는 바이러스 디스켓을 없에지 않았을까? 뻔한 결말로 향하기 위한 너무나 뻔한 숫법!)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시도되는 가족과 타랜스키와의 감정고리들은 기대이하즈음에 머물고 만다.
영화 [시몬]은 앤드류니콜감독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영화를 찾은 관객에게는 다소 많은 실망감을 안겨주는 영화다. 짜릿한 감흥도 울림을 주는 정서도 뒤를 돌아보게 하는 충격의 순간도 과거와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고찰의 순간도 전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앤드류니콜감독이 쉬지 않고 들여다보고 있는 미래에 대한 그의 우려에 얼마만큼은 공감할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끝없는 우려가 단지 테크놀로지에 헌사하는 과시욕이나 뻔한 상상으로 매번 치닫아 진다면 곤란하다. 진지한 고뇌없이 보여지는 교훈따위에 관객들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덧붙이기 : 알파치노의 연기와 위노나라이더의 연기에 열광하고 싶진 않다. 영화가 조명한것은 알파치노의 연기가 아니라 시몬의 몸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