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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 배우로서 평생의 숙제” <비공식작전> 하정우 배우
2023년 8월 2일 수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1986년, 전쟁이 한창이던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한국 대사관의 외교관이 납치된다. 학연도, 지연도 없이 있는 건 오로지 배짱뿐인 외교관 ‘민준’(하정우)은 승진을 위해 레바논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한국인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를 마주한다. <밀수>,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대작으로 가득한 올 여름 극장가에 <비공식작전>으로 뛰어든 하정우와 만나 나눈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터널>(2015)에 이어 <비공식작전>으로 김성훈 감독과 재회했다.
이번 작품 출연을 결정한 건 순전히 김성훈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시나리오가 그렇게 상업적이지 않았다. (웃음) 그건 <터널>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에 작업하면서 김성훈 감독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감독님이 워낙 집요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또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 이 시나리오도 같이 온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거 같더라. 현장에서도 독단적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엑기스만 현장에 가져와서 배우들, 스태프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배우 입장에서 재밌고 보람된 시간이었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도 많은 걸 배웠다. 확실히 완성된 영화를 보니 활자로 봤을 때보다 온도가 높아진 거 같아 만족스럽다.

감독님이 왜 당신을 다시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얘기해주던가.
따로 얘기한 건 없지만 내가 현장에서 열심히 해서 감독님이 나를 믿어주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모든 배우가 열심히 하겠지만 내 경우는 리딩할 때부터 1인 다역으로 여러 번 시나리오를 읽는다. 감독님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하고 함께 분석한다. 누군가는 오지랖으로 보겠지만 작품에 있어서 더 심도 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기도 하다. 감독님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준 게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이 끝나고 곧바로 <비공식작전>에 들어가면서 해외에서 체류한 기간이 상당히 길어졌다고.
김성훈 감독님께 처음 제안을 받은 게 2018년 추석이다. 원래는 2020년 3월에 크랭크인 예정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촬영이 지연됐고 결국 2022년 2월이 돼서야 촬영에 들어갔다. 그게 <수리남> 촬영이 끝난 직후였다. <수리남>은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촬영했고, <비공식작전> 때문에 바로 모로코로 넘어가면서 해외에 반 년 넘게 있었다. 오랜 기간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니까 일하고 온 게 아니라 군대 갔다 온 느낌이 들더라. (웃음) 좋게 말하면 한 챕터를 끝낸 기분, 졸업한 기분이다. 지금은 다시 배우 하정우로서의 자리, 그리고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관객 분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데뷔 이래 계속 해왔던 거지만 느낌이 새롭다. 다시 데뷔한 거 같다. (웃음)

모로코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모로코는 전기를 조금만 써도 바로 두꺼비집이 내려갈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런 모로코에서 징글징글하게 같이 생활해서 더 끈끈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웃음) 집을 떠나서 해외 촬영지에서 생활을 하면 촬영장과 집의 구분이 없어진다. 숙소에 돌아가도 퇴근한 거 같지가 않고, 어느 순간 촬영장이 일터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렇게 출퇴근 개념이 없어지다 보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이 사라진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몰랐던 면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그게 작품에도 잘 묻어나는 것 같다.

주지훈과는 앞서 '신과함께' 시리즈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번 기회로 더욱 가까워졌겠다.
사실 <추격자>(2008), <황해>(2010) 연달아 작업했던 김윤석 선배와 <1987>(2017)에서 재회했을 때 ‘관객 입장에서 기시감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신과함께’ 시리즈가 워낙 강렬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 예능에서도 호흡을 맞췄기 때문에 지훈이와 내 조합이 너무 뻔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나나 감독님 모두 염두에 뒀던 부분이다. 주연 배우로서 필모그래프가 쌓이다 보면 만나게 되는 평생의 숙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이유 때문에 출연을 재고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런 뻔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재미를 더 뽑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리허설을 하다 보면 ‘이 사람이 온 몸을 던져서 하는구나’ 느껴질 때가 있는데 운 좋게도 선배님들과 함께할 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게 느껴지면 상대 배우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불편한 배우와 연기하면 ‘여기서 내가 묻히면 안 되는데’하면서 기합이 잔뜩 든 채 연기할 때가 있다. 그런데 경계심이 풀린 상태로 촬영장 들어가면 모든 게 물 흐르는 듯이 흘러간다. 지훈이와 함께한 현장에서 그걸 많이 느꼈다. ‘신과함께’ 이후로도 사석에서 친분을 이어갔고 모로코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더 가까워진 덕도 없잖아 있다고 생각한다.

‘신과함께’에서 주지훈과의 코믹한 케미가 돋보였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럴 거라고 예상한 분들이 많다. 그런데 훨씬 더 드라이하고 무거운 분위기더라.
실화를 바탕으로 기획한 작품이기 때문에 실제 인물이 겪었던 고난과 비극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이 많았다. 지훈이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다. 어느 정도 선까지 표현하고, 어느 선까지 희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낼지 정하는 게 어려웠다. 처음 ‘판수’와 공항에서 만나 한적한 거리에 가서 대화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는 그거보다 훨씬 드라이하고 딱딱하다. 시나리오가 전반적으로 그랬다. 우리들끼리 1차원적으로 장난 치고 가볍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품은 블랙코미디적 요소에 집중하려 했다. 톤 앤 매너를 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던 거 같다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극중 낡은 택시로 카체이싱을 하지 않나. 주지훈은 믿지만 그 차는 믿을 수 없더라. (웃음)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건 물론이고 브레이크가 자꾸 밀렸다. 그러다보니 차에 탑승할 때마다 예민해지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안전벨트를 맬 수 없는 상황이어서 무술팀에서 따로 안전장치를 해준 상태로 촬영에 임했다. 또 건물에 매달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내가 너무 걱정하니까 남들보다 와이어를 더 많이 달아주더라. (웃음)

들개에 쫓기는 장면은 어땠나.
그 촬영 역시 쉽지 않았다. 개들을 데리고 온 훈련사가 우리에게 잘 훈련된 개라고 설명했지만, 내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훈련된 눈빛이 절대 아니었다. (웃음) 영화 속에서 필사적으로 뛰던 게 연기가 아니라 실제 내 모습이었다.

하정우의 고난이 커질수록 흥행이 잘된다는 흥행 법칙도 있지 않나. (웃음)
내가 고생해서 영화가 잘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전작 < PMC: 더 벙커 >(2018)도 그렇고 내 연출작 <허삼관>(2015)도 고생은 정말 많이 했는데 그만큼 사랑을 못 받았다. (웃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내가 고생하는 모습을 좋아하시는 거 같긴 하다. 그리고 김성훈 감독님이 유독 그런 걸 잘 뽑아내고 잘 쓰는 거 같다.

오랜만에 출연작이 아닌 연출작으로 돌아오게 됐다. 얼마 전 캐스팅 관련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허삼관>이 끝나고 새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문득 내가 진짜 이걸 찍고 싶은지 확신이 안 서더라. 첫 연출작인 <롤러코스터>(2013)처럼 서툴고 투박하더라도, 내가 극장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확신이 설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차기작 제목은 <로비>이고, 소재는 골프다. 2020년 우연히 골프 라운딩에 참여하게 됐는데 산 속에서 걸어다니는 거 자체가 너무 좋더라. 원체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마치 자연에게 선택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 (웃음) 그러다 재밌는 광경을 봤는데 사람들이 골프채만 쥐면 평소와 180도 달라지는 거다. 평소에 점잖은 사람이 야수로 돌변하는 걸 보고 이유가 뭔지 고민하다가 골프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골프 영화가 아니라 골프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웃음)



사진제공_(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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