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한 남자 박해일. 낭만의 화신으로 돌아오다.
2008년 9월 30일 화요일 | 김선영 기자 이메일


해명이라는 인물? “난해한 캐릭터죠! 그런 차원에서 원작도 안 읽었어요”

그가 선택한 해명은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 인물이다. 30년대 일제 강점기에도 억울한 것 없이 잘 사는 조선인. 어떤 여인에게 미치도록 끌리는 남자.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내던질 마음을 품는 남자. 그렇게 해명은 자신안의 경계와 경계를 무너트리며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박해일이라는 배우는 그 경계에 부드러운 이음줄을 그려 넣는다. “해명을 대입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들고 중요했던 건 감정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해명은 자신이 매혹된 부분에 있어서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인물이에요. 한 여자에게 모든 걸 집중하고 그러면서 변화하는 자신을, 그리고 시대의 상황에 밀려들어가야만 하는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 건 생각보다도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것을 생각하며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해명과 함께 보내서일까? 아직까지도 그는 대화의 중간 중간 해명의 말투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버릇이 좀 남아서요.(웃음)”

초반부의 해명은 시대에 걸맞지 않게 누구보다 경쾌하다. 그래서 영화 제목처럼 말 그대로 <모던보이>가 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 스텝들이 준비해 놓은 해명의 모습에 무조건 적인 대입이 필요했다. 스스로도 굉장히 어색하고 난해했던 파마를 하고 옷을 입고 감독 앞에 섰을 땐 “진짜 가관이다.” 이런 말을 들어야 했고, 자신의 입에서도 “그래서? 이렇게 하고 어쩌란 말이야?” 이런 말이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감독은 시대에 반한 캐릭터를 원하였기에 해명으로 분한 박해일에 오케이를 외쳤고, 관객들은 발랄 하다 못해 트렌디한 모습의 일제 강점기 해명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외형의 낯선 순간이 지나가면서 박해일 자신에게도 편해지고 연기에 도움이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아쉬움이라는 것은 결과를 따라다닌다. “영화 초반 해명이 난실을 모던구락부에서 만나기 전의 경쾌한 상황들 있잖아요. 영화 보면서 아~! 저때 이렇게도 해 볼걸, 아니면 안 쓰더라도 저렇게 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쉽더라고요. 그런 점들이.” 주위 깊게 생각하고 자신의 속내를 비치는 그의 모습에서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을 해명에 대한 애착이 보였다. 그것은 배우로서의 욕심이 분명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의 다양한 필모그래피만 보아도 그의 욕심의 경계가 얼마나 폭 넓고 방대한 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둘러보면 그런 욕심을 부리기 위해 그가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도 군더더기 없이 느껴진다. “<모던보이>의 시대적 배경은 현대에 살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거잖아요. 그래서 자료를 찾았죠. 영상 자료원에 갔는데 그 시대 즈음에 제작된 <미몽>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보고선 많이 놀랐죠. 배우들의 연기가 사실적이고 지금의 우리와 별 다르지 않았다는 것에. 그리고 그 시대의 고증과 지금은 없는 그 시대의 풍경들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어요. 좋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그가 손수 자료를 찾고 배울 수밖에 없던 건 ‘해명’과 ‘난실’ 이외에 ‘일제 강점기 근대 경성’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또 하나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기운이 그 인물들을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현대에서 그 인물을 구성하면 다른 톤으로 갔을 거예요. 그 시대가 아니라면 영화를 이렇게 풀 수 없는 거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인다. “<모던보이>는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예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을 때 참조하라고 원작을 함께 받았죠. 근데 전 원작을 안 읽었어요. 시나리오를 먼저 보고 캐릭터가 매력 있고 해볼 만한 배역이라고 느껴짐과 동시에 원작의 틀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감독님께도 ‘원작은 안 읽었는데 읽지 말아 볼까요? 우선은 시나리오에서 얻고 호기심이나 의심나는 부분은 감독님께 물어 볼게요.’ 이렇게 말씀드렸고 동일시되는 부분만 오케이 하면서 찍었어요. 해명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꼭 소설의 틀이 아닌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싶었죠.”

정지우 감독? “사실 물어 보고 싶어요. 김정은, 전도연, 최민식 선배님들께”

‘해명’은 시대와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며 잘 살아가지만 ‘난실’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선택이 시대의 상황에 무관할 수 없음을 알아간다. 하지만 마지막 까지도 오직 사랑 하나만을 원하는 자신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가 진정 낭만의 화신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박해일은 낭만의 화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념식장의 장면을 보면 해명만 모자를 안 벗어요. 보는 분들 입장에선 그때 해명의 태도가 그 의식에 반한 느낌일 수도 있어요. 근데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정말 큰 결단을 하고 기념식장에 왔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 나라 풍습인 모자 벗는 걸 까먹은 거예요. 그리고 더 중요한건 긴장한 상황에서 옆을 보니 아버지가 와있다는 거죠. 나는 ‘난실’ 대신 죽으려고 여길 온 건데 아버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굉장히 쉽지 않은 감정이어서 스스로 자문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감독님은 가라고 했고 최대한 몰입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었죠.” 그의 몰입에 대한 생각은 긴장으로 어눌해진 그의 걸음걸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명으로서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기 때문에 이후의 내용을 알아도 그걸 지우려고 했어요. ‘도가 넘치면 지금까지 이끌어왔던 감정을 확 깨주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건 안 돼는 거잖아요. 고민을 너무 많이 했죠.(웃음)” 그렇게 마지막을 지우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진지한 상황에서도 약간의 웃음까지 안겨주는 장면으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고 해서 그 장면이 가질 수 있는 무게감이 결코 가벼워 졌거나 와해됐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순간 해명의 표정만큼이나, 비극안의 희극은 때론 상황을 더 안타깝고 애틋하게 분출시킨다.
기존 자신의 작품들에서 인물의 어떤 한 면만을 부각시켰던 것과는 달리 다양한 감정을 촉발시켜야만 하는 해명을 선택한 이유에는 ‘정지우’라는 감독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몇 년 전 정지우 감독과 함께 작품을 하려했지만 아쉽게도 촬영 직전 무산되었고 그때의 인연을 이어오다 결국은 <모던보이>의 해명이 되었다. 하지만 <해피엔드>나 <사랑니>를 연출했던 정지우 감독의 세밀함과 인물의 감정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파고드는 점은 박해일에게도 그리 녹록치 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사실 물어 보고 싶어요. 감독님 전작에 출연했던 김정은, 전도연, 최민식 선배님들께. 아마 저랑 똑같은 얘기 하실 걸요. 쉽지 않았다고.(웃음)” 그러나 아무리 쉽지 않은 작업이더라도 감독과 배우는 매 촬영마다 정확한 감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좋은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 “아마 이번 영화에서 감독님이 선택한 방식은 우리들에게 큰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너희들은 뛰어 놀아라. 재밌는 건 내가 찾을게. 그래도 안 나오면 또 다시 대화를 하자.’ 이런 방식이셨던 것 같아요. 촬영 들어가기 전 정말 많은 대화들을 나눴죠.”

김혜수와의 호흡? “저한텐 ‘쾌재’죠!”

그는 이번에 정지우 감독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함께 뛰어 놀 파트너로 김혜수를 만났다.
시나리오를 두고 감독과 분석을 하면서 ‘대체 이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그 자리에 김혜수라는 이름이 새겨졌을 때 모든 것은 긍정이 되었다. “내가 배우를 하지 않았을 때 김혜수라는 사람은 나한테 대단한 존재였어요. 작품을 같이 하게 된 게 영광이었죠. 하지만 걱정도 됐어요. 잘 맞춰 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요.” 하지만 박해일의 생각은 김혜수를 만나는 순간 기우가 되었다. “만났는데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쿨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부담으로 버벅될 때 스텝들과 배우의 조화를 잘 조절해주어서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에요.” 그래서였는지 박해일은 김혜수와의 호흡을 ‘쾌재’라고 표현했다.

함께 사랑의 감정을 연기했던 상대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갑자기 궁금함이 고개를 들었다. 박해일은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아주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선보였다. 처절할 정도로 문제적 요소를 지닌 아주 진지하고 적나라한 남자이기도 했고, 지고지순 하거나 무모하며, 미련할 정도로 소심한 남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준비된 마른 스펀지처럼 고스란히 캐릭터를 빨아들였고 보는 이들은 그대로 그의 감정에 이입되었다. 그렇다면 본인은 어떤 사랑의 감정이 가장 다가서기 쉬웠을까. “사랑에 있어서도 캐릭터라는 것은 나와 감독님이 만나서 화학 반응을 일으킨 거니까 어떤 것에 확실하게 공감하고 어떤 것은 확실히 없다고 얘기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모던보이>는 너무 무모한 면이 있고, <연애의 목적>은 분명 문제가 있는 인물이죠. 근데 <국화 꽃 향기>에서처럼 제가 그리 지고지순하지만은 않아요. 그렇다고 <질투는 나의 힘>에서처럼 소심하지 만은 않고. 하지만 다 조금씩은 있는 거 같아서(웃음).” 자신의 모습에서 적재적소에 어울릴만한 부분을 끌어내고, 모호한 눈빛으로 선과 악을 오가며 다양한 사랑의 표정이 오가는 것은, 그가 배우로서 가지는 또 다른 영민함이다.

관객? "보고 나서 이런 말 해주시면 고생한 거 다 털어 버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잠시 편안한 대화로 유연해진 박해일에게 <모던보이>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길 바라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가장 어려운 시험문제를 앞둔 학생처럼 진지해진다. “감독님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들을 배우와 스텝들이 뭉쳐서, 거기에 기술적인 부분까지 더해 경성모습을 고증하고 재연과 재현을 했어요. 솔직히 보답을 받고 싶은 게 사실이죠. 많이 노력했거든요. 극장에 오신 관객 분들에게 ‘그 시대 재밌게 표현했네.’ ‘배우들도 잘 노네.’ 그런 얘기 들으면 그동안 고생한 거 다 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바람치고는 소박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가 말한 대로 영화 안에서 재밌게 놀던 해명과 난실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하고, 구애하고, 도망치고, 찾고를 반복하며 결국은 사랑이 되어버린 그들의 모습.“<모던보이>는 작품들어가기 전 부담감과 책임감이 가장 컸던 영화였어요. 전작들이 캐릭터의 어떤 면을 부각시켰다면 이번 해명은 굉장히 다채롭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태도를 정확하게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했고, 이제까지 작품을 하면서 습득한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라고 생각했죠. ‘있는 거, 없는 거, 다 끄집어내서 해보자. 캐릭터를 만들어 보자.’ 이런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저로서도 뭔가 좀 더 나아질 필요가 있다라는 거예요. 관객들이 해명을 통해서 다채로운 감정들과 상황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을 향한 그의 기대와 고민이 늘 발전적이길 바란다.
2008년 9월 30일 화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2008년 9월 30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총 19명 참여)
kisemo
잘 읽었습니다^^   
2010-05-09 14:50
pretto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2010-01-27 17:36
taijilej
충격의 헤어스타일!ㅋ   
2008-12-21 17:38
remon2053
연기 좋았어요   
2008-10-30 13:15
sungmo22
새 영화 기대되요~~
  
2008-10-29 11:48
mckkw
연기천재   
2008-10-12 16:30
yyjandshy
모던보이는 박해일 때문에 빛난 영화   
2008-10-10 00:36
ldk209
혼자 고군분투하긴 하지만.. 별로 인상적이지 못함.   
2008-10-0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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