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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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2016)을 통해 K-좀비라는 전무후무한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글로벌 안방극장을 뒤흔던 연상호 감독이, 무려 10년 만에 자신의 장기인 좀비 유니버스의 정수를 담은 신작 <군체>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군체>는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쾌거를 이룬 데 이어,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흥행세를 기록하며 최단 기간 2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극장가에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군체>를 통해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전지현은 독보적인 아우라를 뽐내며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찬사를 받는 중이다.
지난 10년간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시리즈를 종횡무진하며 한국 사회의 잠재적 공포를 날카롭게 포착해 온 연상호 감독.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늘 "영화는 완벽한 협업의 산물"이라는 철학을 고수해 온 그가,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10년을 고민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대중들이 "갑자기 왜 저런 괴상한 짓을 했지?" 하고 의아해할 만큼 아주 새롭고 독특한 괴상함을 장착한 프로젝트들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한다.
예상보다 흥행 속도가 빠르다. 최단 기간 200만 돌파 소감은.
규모가 큰 상업 영화로 정말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났다. 그 사이 극장가나 관람 문화가 많이 바뀌었더라. 개인적으로는 거창한 흥행보다 그저 손익분기점만 맞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어제 딸과 함께 4DX로 영화를 직접 관람했는데 극장 안이 아주 시끌시끌하더라. 큰 규모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떠들썩함과 활기가 참 좋았다.
칸 영화제에서 선보였을 때, 외신의 반응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칸에서 외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국적인 정서나 내가 담은 메시지가 해외 관객들에게도 잘 읽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외신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단순한 좀비물이 아니라 AI(인공지능), 집단지성, 그리고 SNS 사회의 병폐로 해석해 주시더라. 창작자로서 의도했던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읽어주신다는 느낌을 받아 무척 인상적이었다.
<군체> 속 좀비들은 기존 좀비들과 달리 진화(업데이트)를 한다. 그 선을 어디까지로 잡았는지.
처음 대본을 쓸 때는 진화 대신 '업데이트'라는 표현을 썼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큰 그림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떼들의 군집 형태를 상상했다. 일종의 '집단지성의 진화와 이것이 초래하는 폐해'까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숙제였다. 처음에는 순수한 집단지성처럼 움직이지만, 극 중·후반부부터는 선동가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이 변화의 흐름이 잘 표현되어야 했다. 영화 내에서는 이 진화가 아주 원시적인 단계에서 끝이 났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군체>를 바탕으로 한 이머시브 공연이 진행 중인데, 거기서는 훨씬 더 다양한 결론들이 도출되기도 한다.
영화 속 좀비들의 소통 수단인 점액 표현이 화제다. 아이디어와 표현법 모두 참신하더라.
미술팀이 특수 제작했는데,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슬라임'을 만드는 원리와 비슷하게 개발했다. 이 슬라임을 정말 대량으로 만들어서 현장에서 막 발라가며 촬영했다. 좀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그렇고 다들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점액이 바닥에 흘러내리니까 세트장이 엄청나게 미끄러워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중심을 잡고 액션을 소화하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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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부산행>이나 <반도>와 달리 인물들의 전사나 감정 표현이 상당히 절제되어 있더라. 의도한 부분인가.
처음 쓴 오리지널 대본은 168페이지에 달했다. 영화로 만들면 3시간 30분가량 되는 엄청난 분량이다. 이를 두고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와 방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어떤 관객층을 만날 것인가'였고, 결국 '런 앤 온(Run and On)', 즉 속도전으로 가자고 결정했다. 관객이 극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체험적인 형식미와,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우화적인 메시지 자체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과거 <부산행>이 아버지가 딸을 보호하려는 보편적인 마음을 장르적 공포로 극대화했다면, 이번에는 좀비 그룹과 인간 그룹이 한쪽은 진화하고 한쪽은 퇴화하는 대비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었다. 최근 유행하는 '방탈출 게임'이나 예전 영화 <배틀로얄>처럼 극단적인 게임성을 중심에 두고 연출했다.
생존자들의 개인 서사를 걷어내면서 아쉬운 지점은 없나.
사실 ‘권세정’(전지현)과 ‘서영철’(구교환)의 중학생 시절 과거 이야기 등 개별 서사가 각기 부여되어 있었다. 만약 이 작품이 긴 호흡의 시리즈물이었다면 그런 서사들을 다루는 게 의미가 있었겠지만,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2시간 동안 달리는 영화라면 콘셉트의 명확함이 더 중요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캐릭터들의 설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상상할 것이라 믿었다.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 전남편과 현남편이라는 독특한 관계가 눈에 띄는데 의도는.
<군체>는 개개인의 서사를 디테일하게 설명해 줄 만큼 친절하거나 느린 속도를 가진 영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물 간의 관계성 자체를 아주 특이하게 세팅하는 것이 중요했다. <부산행>의 부녀 관계는 누구나 바로 따라갈 수 있는 보편적인 관계지만, 이번에는 관객이 그들의 숨겨진 사연을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다.
메인 빌런인 ‘서영철’은 점차 선동가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 캐릭터의 역할과 의미는 무엇일까.
'군체'라는 생명체를 리서치하다 보니 흥미로운 성질을 발견했다. 하나의 거대한 특징으로 묶인 무리는 외부의 치명적인 자극 한 번에 집단으로 몰살당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생존 전략으로 스스로 '변이체'를 만들어내더라. 이 모습이 현대 한국 사회와 매우 닮았다고 느꼈다. 보편적인 사고와 주류 의견이 중시되는 사회 속에서, 왜 소수의 개별적인 의견이 존중받아야 하는지 역설하고 싶었다. 극 중 서영철은 이 군집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선동가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파멸이 곧 이 영화의 메시지라 하겠다.
서영철 역의 구교환과 여러 작업을 함께해 왔는데 이번 호흡은 어땠나. 아역과의 높은 싱크로율도 화제다.
구교환은 특별히 과장하지 않아도 내면에 비범한 태도를 품고 있는 훌륭한 배우다. 개인적으로 워낙 친한 편인데, 그 친구가 굉장한 영화 마니아라 원체 아는 영화도 많고 이야기하다 보면 너무 재밌기도 하다. 예전에 <기생수: 더 그레이> 작업을 할 때 자기도 기생수가 되고 싶다고 조르길래, ‘이번엔 훨씬 능력 있는 거 주겠다’고 하면서 준 역할이 바로 <군체>의 서영철이다. 아역 배우와의 싱크로율은 연출부가 추천해 준 배우를 보고 나 역시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아서 만족스러웠다.
전지현은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너무 아름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사실 현장에서 전지현 배우 외모를 부각하려고 따로 세팅하거나 의도한 점은 어디에도 없다. 나도 딸이랑 영화를 보면서 유심히 봤는데, 서영철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도 얼굴이 꽤 깨끗하게 나온다. (웃음) 또 주인공이 피를 뒤집어쓸 일이 별로 없기도 했다. 특히 엔딩 부분에서 어쩌다 보니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게 됐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이 너무 없어 보이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었다. 그런데 스크린으로 보니 전혀 없어 보이지 않더라. 한마디로 피지컬이 깡패다. (웃음) 그녀가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아우라가 영화의 톤앤매너를 완전히 지배했다. 캐릭터 설정상 개별성을 중시하는 왕따 같은 인물인데, '저 비주얼로 왕따가 될 수 있나' 싶긴 하더라.
<반도> 이후 물가나 제작 여건을 감안하면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군체>는 <반도>와 비슷한 수준의 제작비(200억 원)로 방어했다. 이 규모로 스펙터클을 구현한 노하우가 있다면.
<군체>의 순제작비는 170억 원 정도다. 전작인 <얼굴>을 비롯해 여러 시도를 해왔지만, 지금까지 여유 있게 영화를 찍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정도 규모로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는 회의를 정말 치열하게 해야 한다. 제작비와 가장 직결되는 요인은 결국 촬영 회차다. 회차가 짧은 편인데,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촬영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제작비 증가로 이어진다. 따라서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프리 프로덕션을 완벽하게 짜놓고 작업하는 편이다. 영화를 만들 때는 항상 오차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애초에 원래 계획한 대로만 움직일 수 있도록 계획을 아주 빡세게 세우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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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체>에서 영화계 화두인 생성형 AI 기술도 활용했는지. 또 이 기술이 업계에서 차지할 비중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이번 <군체> 자체에는 생성형 AI 영상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CG 업계는 생성형 AI를 급격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라 본다. 생성형 AI는 보편적인 이미지의 합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보편적인 이미지의 합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예술의 본질은 결국 독창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건 미술계에서 아주 예전부터 있던 논쟁이다. 마르셀 뒤샹이라는 화가가 기성품 변기를 떼어다가 ‘샘’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공산품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라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것이 인정되면서 앤디 워홀이나 다다이즘이 부흥했고, 이러한 논쟁 자체가 예술계를 풍요롭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뒤샹이 변기를 떼어내 현대 미술을 시작했듯, AI가 탄생한 지금의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생성형 AI 기술이 미술계를 무조건 풍요롭게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 들어온 AI의 근간인 '보편성'과 예술의 '독창성(특수성)'이 하나가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실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예술이 바로 영화이며, 우리가 계속 극복해 나가야 하는 형식이라고 본다.
한국 좀비 영화의 '문익점(좀익점)'으로 불린다. 앞으로도 좀비물을 계속할 생각인가.
<부산행>(2016) 이후로 한국 좀비물에 대한 글로벌 관객들의 기대감이 확실히 커진 것 같다. 창작자로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 흐름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좀비물은 태생적으로 사회성이 강할 수밖에 없고, 이를 장르적으로 풀어내기에 가장 매력적인 소재다. 최근 신간 ‘닥터 아포칼립스’를 출간했는데, 좀비를 수술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아직 좀비라는 장르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신선한 영역이 많이 남아있다고 본다.
<군체 2> 제작 계획은 전혀 없는지. 여운을 남기는 엔딩이다.
영화 후속편 제작 계획은 없다. 다만 후속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는 이미 써두었고, 이는 영화가 아닌 그래픽 노블(만화) 형태로 출간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책을 기반으로 한 체험형 게임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의 IP(지식재산권)가 만화로 시작해 게임, 영화 등 다양한 포맷으로 확장하는 미디어 믹스 모델을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다. <군체> 스핀오프 게임을 기대해 주셔도 좋다.
일전에 현장에서 가장 중시하는 요소로 '협업'을 꼽은 바 있다. 지금은 어떤가.
대학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했지만,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전향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협업'이 주는 로망 때문이었다. 미술은 즐기는 사람이 한정적이지만, 영화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완벽하게 협업해 대중 친화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상업 영화와 OTT 시스템 안에서 쉼 없이 달려온 지 10년이 되었는데, 작년에 영화 <얼굴>을 작업하면서부터 기존 시스템을 벗어난 새로운 방식의 '협업'에 목마름이 생겼다.
<부산행> 이후 지난 10년간 가장 왕성하게 작업해 온 창작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지치지 않는 창작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부산행>으로 상업 영화 판에 들어온 지 어느덧 10년 정도 흘렀다. 그동안은 주로 기존의 상업 영화나 OTT 시스템 안에서 협업을 하며 치열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작년에 영화 <얼굴> 작업을 하면서부터는 기존 시스템을 벗어나거나, 혹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 안에서 작업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이제 나이도 50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앞으로의 10년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결론은 지나온 10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 실험적이거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다. 이처럼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갈망하는 것 자체가 나를 흥분시키고, 여전히 창작의 재미를 유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만약 계속 똑같은 방식으로만 일했다면 아마 진작에 지쳤을 것이다.
앞으로의 창작 방향은 어떨 것 같나.
앞으로 선보일 작업들은 그동안 해왔던 전형적인 상업 영화 프로세스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 본래 애니메이션에 기반을 둔 창작자이기 때문에, 영화 제작 방식에 애니메이션적 기법을 독특하게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농담 삼아 '인디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곤 하는데, 차기작이 인디 애니메이션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만큼 애니메이션을 하던 시절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투영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아마 내년쯤에는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프로젝트들은 기존에 했던 작업들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나중에 작품이 공개되면 대중들이 '이 사람들이 이런 걸 왜 했을까?' 하고 의아해할 정도로 꽤나 괴상한 작업이 될 것 같다. 당장은 차기작인 <가스 인간>(극본과 제작에 참여)도 준비 중이고, 현재 14회 차라는 초저예산 규모로 영화 <실락원>도 촬영하고 있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사진제공. 쇼박스
2026년 6월 9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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