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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원더랜드> 김태용 감독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김태용 감독이 영화 <만추>(2011) 이후 오랜만에 관객을 찾았다. <원더랜드>는 인공지능으로 죽은 사람을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화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감성 SF 드라마. 요즈음 비약적인 발전으로 놀라움을 안기는 인공지능을 소재로, 탕웨이를 비롯해 수지 박보검 정유미 등 호화 캐스팅으로 일찍이 주목받은 작품이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가족의 탄생>(2006) 등 인간과 관계에 관해 숙고해 온 김 감독을 만났다. <원더랜드> 속 여러 케이스를 통해 인공지능 같은 과학기술이 깊숙이 들어온 세상, 관계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물음을 던진다.

13년만에 관객을 찾는다. 이렇게 시간이 걸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그간 시나리오를 쓰다가 잘 풀리지 않아 중도에 그만 둔 작품이 몇 편 있다. 중간중간 공연을 연출하기도 했었고. <원더랜드>는 시나리오도 촬영도 그리고 후반작업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CG가 이렇게 많은 작업은 처음이라 특히 그랬다. 극 중 인물들이 주로 영상통화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CG가 많았다. 또 각자 따로 촬영한 부분을 편집을 통해 맞추고, ‘어’ 다르고 ‘아’ 다른 대화의 뉘앙스를 살리느라 품이 많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AI 이슈가 뜨겁게 대두된 지금 시점에서 개봉하게 되어 오히려 좋은 면도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언제부터 구상한 건가. 또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시작은 2016년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탕웨이 배우에게 그리운 사람을 구현해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통화해보면 어떨까 하니, 너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과연 이런 일이 실현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왜냐하면 이런 서비스가 현실화된다면,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가치판단 없이 상품화될 수 있는데 이게 과연 바람직한 걸까. 마치 어린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여 주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더라. 평소 (가족과) 영상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고,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줌 같은 온라인 모임이 활발해지지 않았나. 실제의 만남과 가상의 만남이 혼재한 상황에서 가족도 만남도 확장되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했다.

현실에 밀착한 인공지능 이야기를 하면서 초점을 맞춘 부분이 있다면.
말했듯이 AI를 통해 그리움을 해소할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AI가 조만간 우리 삶의 일부가 되지 못할 거로 생각했는데 책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그 시기가 금방 올 수도 있겠더라. AI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을 복원하여 마치 살아있는 듯이 소통하는 이야기라 상당히 관념적이고 붕 떠있다고 느낄 여지가 있다. 그래서 VR 같은 가상 현실보다 일상에서 제일 많이 체험하는 영상통화를 매개로 했다. 과학 기술에 관한 배경을 일체 생략했지만,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많은 자문을 구했다. (웃음)

테크 배경을 배제한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많이 고민한 부분이다.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어떻게 올 것인지가 아니라 그 기술이 현실화됐을 때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 어디까지 설명하고 보여줄지가 관건이었다. 고심 끝에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AI에 집중하고자 했다. 바이리 가족의 경우처럼 AI 라도 믿음에 따라 가족이 될 수 있고, ‘태주’(박보검)처럼 자기가 진짜인지, AI태주가 진짜인지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진짜와 가짜의 문제가 아니라 AI를 대하는 감정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 나아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SF 장르지만, 그 지식 배경을 생략해도 되겠더라. 자문해주신 과학자분도 ‘과학기술에 관한 SF가 아니라 좋았다’고. (웃음)

AI 바이리를 거부하는 엄마(니나 파우) 와 수용하는 딸 ‘바이지아’(여가원), 그 온도차가 크다. 이를 통해 AI가 일상에 도래한 미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더라.
바이지아가 나중에 크면 서비스 관리자인 ‘해리’(정유미)같이 AI 부모를 가족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했다. 물론 해리가 부모님과 통화한 후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처럼 바이지아도 혼자만이 감당할 외로움과 공허함이 있을 거다. <원더랜드>를 작업하면서 이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하든 안 하든, 자기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각각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가 그 답을 제시하기보다 그들이 느낄 감정의 합을 모아 놓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원더랜드>는 러브스토리도 가족 드라마도 아닌, 파편화된 관계의 총합 같이 느껴지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

손자(탕준상)를 보기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이용한 할머니의 경우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AI 손자가 점점 버릇없어지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아가 성장한다고 할지, 실제라면 정말 무서운 일 아닌가!
그렇지. 해리가 할머니에게 ‘요구를 다 들어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것처럼 AI는 인터렉션으로 발전한다. 할머니가 안 된다고 하면 포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제멋대로 성장(?)할 수도 있는 거다.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는지는 극 중 해리의 말처럼 서비스 사용자의 욕망에 달렸을 거다. 마치 핸드폰이 우리 필요에 따라 기능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바이리’(白李)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이백 시인의 이름을 거꾸로 한 거다. 그의 시가 현실과 이상 사이를 넘나드는 자기만의 서리얼한(Surreal)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 다만 ‘이백’이라고 하면 너무 직접적이라 아빠의 성 ‘백’과 엄마의 성 ‘이‘를 따서 ‘백이’(바이리)로 지었다.

제목 ‘원더랜드’에 담긴 의도도 궁금하다.
원더랜드 서비스가 그리움에 기반하여 남은 사람 혹은 떠날 사람을 위로하듯이, 결국 AI 기술은 인간 욕망을 바탕으로 상품화될 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 결국 중요한 건 진짜와 가짜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구현된 세계를 원더랜드로 하면 어떨까 싶었다. 원더랜드와 연결된 이 세계가 순간 ‘진짜’일까 의구심이 들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세계가 원더랜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원더랜드’라는 제목과 서비스 모두 두 세계를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관계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언뜻 <가족의 탄생>이 연상되기도. 혹시 염두에 둔 부분인가.
글을 쓰면서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보고 ‘SF 가족의 탄생’ 같다고 해서 돌아봤던 부분이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관계가 확장된다는 면에서 유사점이 있는 것 같다. <가족의 탄생>이 현실 기반이었다면, <원더랜드>는 AI까지 들어온 미래로 그 세계가 더 넓어졌다고 할까. 내가 어릴 때 키웠던 강아지를 할머니는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나. 또 우리 어머니는 로봇 청소기도 가족 같이 여기시니. (웃음) 사람, 동물, AI, 로봇 모두 가족 구성원으로 그 개념이 확장될 수도 있겠지.

탕웨이 배우를 비롯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 화려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캐스팅 관련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여러 케이스의 이야기다 보니, 무게 추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 안 됐다. AI를 바라보고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각각이라, 서로서로 시너지가 나게끔 이야기를 구성했다. 가령 원더랜드 서비스의 지속여부에 대한 답은 AI 부모를 둔 관리자 ‘해리’에게, AI를 수용하는 태도는 바이리 가족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 이렇듯 각각의 태도와 에피소드가 파편화되어 있는 구성이라, 각 케이스에 나온 배우들의 존재감이 다 같이 크거나 다 같이 작아야 균형이 맞겠더라.

다행히 존재감이 큰 배우들이 참여해주었다. 해리의 경우, 기계를 부모처럼 여길 정도의 진실성이 보여야 했는데 <가족의 탄생>(2006) 이후 정말 오랜만에 정유미 배우가 함께해줬다. 사실 ‘바이리’ 역할을 외국인인 탕웨이 배우가 맡는 게 괜찮을지 고민했었다. 그러다 보편적인 이야기라 성별이나 국적에 상관없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제안했다. 가족 관계라고 캐스팅이 쉬운 건 절대 아니고, 정식으로 의뢰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과정을 그대로 거쳤다. (웃음)

부부로서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인데 <만추> 작업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촬영장에서만 보다가 이번에는 일상을 공유하니까, 배역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전은 결과만 봤다면 이번은 과정까지 다 보니 그 노력이 더욱더 느껴졌다. 역할을 위해 감정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준비를 많이 하더라. 바이리가 고고학자인 만큼, ‘내 방은 이럴 거야’ 하면서 책이나 프린트를 쌓아 놓기도 하는 등 다각도로 살피는 거다. 아내가 아닌 배우로서 공들여 설득해 출연한 만큼 연출자대 배우로 작업한 건 당연하지만, 익숙한 만큼 촬영장에서 서로를 파악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또 엄마로서 딸로서의 바이리 이야기라 대사가 무슨 뜻인지를 비롯해 질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게 집에서까지 계속 이어져서 일의 연장인 듯했다. (웃음) 예전에는 현장에서 도망가면 됐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좋든가, 아니면?
음…’원더랜드’ 서비스 같은 거다. 거리감이 있으면 지킬 수 있는 감정이 실제 만나서는 무너지기도 하지 않나. 한편으론 핸드폰 같기도. 처음 나올 때는 ‘컴퓨터가 내 손에 있단 말이야?’ 하며 놀랐는데 일상의 필수품이 됐듯이, 서로의 일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다. 사실 감독이나 배우를 멀리서 보면 ‘그렇게까지 힘든 일’ 인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거든. 감독과 배우 일의 밀도나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점에서 좋은 면이 많다.

다시 같이 작업할 의향은 있나. 또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항상 같이 작업하고 싶다. 이번에 제작자의 권유에 따라 시나리오를 주며 간곡하게 부탁했듯이, 매번 제안하고 매번 설득하련다. (웃음) 지금 딱히 준비 중인 작품은 없고, <원더랜드>가 관객에게 잘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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