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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한국형 재난은 가능할 것인가?
2009년 7월 16일 목요일 | 유지이 이메일


장르의 속성과 한국영화의 현재 사이

한국에서 시도돼 대성공을 거둔 한국형 장르 영화는 대부분, 장르 본토의 전통적인 길을 가지 않았다. 본격 괴수 영화였던 〈괴물〉은 가족 드라마와 블랙 코미디를 섞었고, 정통 할리우드식 케이퍼 물로 시나리오를 썼던 〈범죄의 재구성〉은 치밀한 취재를 거치는 사이 찰기 있는 대사와 상황이 붙으며 매우 한국적인 영화가 되었다. 할리우드 슬래셔 공포 영화 공식을 교과서적으로 도입했던 〈해변으로 가다〉〈찍히면 죽는다〉가 관객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빼어난 작가의 비전 만으로 단숨에 걸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영화지만, 장르 영화는 세월에 문화적 경험이 누적된 결과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몇 십년에 걸쳐 계속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가 나오면서 쌓인 관습이 보는 이의 시선에 익숙해질 때 비로소 하나의 장르가 완성되고 구축된다는 말씀. 그러니 70년대 후반 〈할로윈〉이후 장르의 규칙을 쌓아온 할리우드 슬래셔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한국적 장르영화의 성공은 할리우드의 장르 규칙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코드와 효과적으로 버무리는 데서 시작한다. 할리우드 갱스터가 오랫동안 협객물과 신파극, 시트콤류 코미디와 섞여 1990년대 후반 한국식 조폭 코미디로 안착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너무 큰 영화를 노리지 않는 것도 비결이다. 블록버스터로 발전한 장르 영화조차도 처음에는 작은 시도에서 출발했다. 더불어 강렬한 개성을 지닌 공포물이나 (흔히 B급 액션이라고 부르는) 원맨 액션물 같은 장르는 여전히 중소 규모 제작이 대다수이기도 하거니와, 강렬한 장르 정서는 B급에 가깝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도 70년대 〈스타워즈〉의 성공, 80년대 〈람보2〉와 〈다이하드〉, 〈인디아나 존스〉의 성공에 힘입어 B급으로 치부하던 SF, 원맨 활극, 싸구려 모험극이 블록버스터의 대열에 낄 수 있었지만, 성공을 이끌었던 제작진들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 B급을 즐겼던 사람이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위대한 세월의 깊이.

그림 좋고, 화려한 스타 진용에, 올로케 규모까지 갖췄지만 김지운 감독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 적지 않은 관객에게 공허한 이야기로 비판을 받았던 것 역시 장르의 마찰이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흔히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들 하는) B급 서부극에서 영향 받아 만주를 배경으로 한국식으로 소화한 60년대 만주 웨스턴을 무려 40년 만에 되살린 〈놈놈놈〉은, 태생적으로 B급이었다. 작은 규모의 영화로 '차용한 장르'라는 60년대 스타일을 지켰다면, 훨씬 잘 어울렸으리라. 그러나 흥행과 비평을 한 손에 거머쥔 김지운 감독에게 한국 영화의 자본이 몰렸고 감독은 훌륭한 B급을 찍고 싶었으나 주변 상황은 꽤나 호사스러웠다. 돈이 몰리고, 스타를 기용하고, 외국으로 나가고, 거창하게 찍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B급. 비슷하게 자신이 좋아했던 B급 모험극을 영화로 만들었던 1980년대의 루카스 + 스필버그 콤비도 처음부터 〈인디아나 존스〉를 커다란 규모의 영화로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지운 감독에게는 루카스 + 스필버그 콤비가 〈인디아나 존스〉를 세 편 찍으며 가졌던 완충기간이 없었고, 관객은 유명 감독이 수퍼스타 세 명을 기용해서 찍은 해외 올로케 액션 서부극을 B급 이야기를 가진 작품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재난은 태생부터 귀족인 거창한 장르물

다행스럽게도, 한국영화가 올 여름 시도하는 〈해운대〉는 재난영화다. 예고편과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대로 여름 휴가철 인산인해를 이루는 부산 해변에 쓰나미가 닥치며 벌어지는 사고를 다룬다. 불과 4 년 전 인도네시아에 거짓말같은 쓰나미가 닥쳐 수많은 인명 피해를 직접 본 마당에 부산에서 그런 일 없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맥을 이루는 사건이 앞뒤가 맞고, 무대는 사람 몰린 여름의 관광지. 그림만 잘 뽑으면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게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게 다행이다. 수많은 장르 영화가 중소 규모거나 B급에서 시작한 반면, 재난영화는 처음부터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대형 스튜디오의 영화였다. B급 언저리를 떠돌던 장르물을 블록버스터 영화로 탈바꿈 시킬 때 가장 먼저 리스트에 오르는 조합 대상 역시 재난영화가 아닌가. 태생부터 귀족인, 거창한 장르물.

남은 것은 한국에서도 벌어질 법한 그럴싸한 끔찍한 사고를 찾는 것이다. 그럴수록 재난영화라는 장르는 그 나라에 밀착한 영화가 된다. 외계인이 대규모로 쳐들어오면 어떨까? 한 두 외계인이 몇몇 사람만 만나거나, 외계인이 그 나라 정부요원이나 상대하면 B급이기 쉽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 대도시에 나타나면 재난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는 미국에나 어울린다. 어쩐지 서울 상공에 나타나도 지구인 대표로 미국정부가 나설 것 같잖아. 한국 장르 영화가 될 소재는 아닌거다. 온 동네 사람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싸그리 죽어버리는 건 어때? 나쁘지 않은데 재난영화 중에서 가장 B급에 가까운 게 그 설정이다. 다 죽어버리면 포스트 묵시록 SF가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도의 땅덩어리가 아니면 근사하게 찍기도 어려울 뿐더러 재미없기 쉽다. 망망 벌판에 오토바이 폭주만으로 그림 나오는 영화 〈매드맥스〉이후에 본 적 있나? 사람 많이 남겨 놓으면 좀비물 같은 게 되는데, 이것도 블록버스터 소재감은 아니지. 매우 B급스럽잖아. 대지진은? 일본에서 벌써 많이 써먹었다. 만화도 영화도 많이 나왔는데, 그중에 일부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안되는 거지. 아무래도 우리보다야 일본이 지진에 대한 공포도 더 깊을 것이고. 배 가라앉히자니 〈포세이돈 어드벤쳐〉와 〈타이타닉〉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비행기에 재난 떨구자니 하이재킹은 역시 미국스러운 소재고 공항 배경으로 하면 이미 고전 할리우드 영화 〈에어포트〉시리즈에 패러디인 〈에어플레인〉시리즈까지 할리우드 전공이다. 해변이 남는데, 식인상어 띄우자니 너무 속보이잖아. 해서, 쓰나미면 안타감이다.

우리에게도 재난은 있다

재난영화가 기대고 있는 사건은, 어떤 곳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한 공포심이다. 문화적인 축적이 없이도, 어떤 곳에서나 가지고 있는 그런 공포. 게다가 우리는 올해 〈해운대〉로 한국영화 사상 첫 본격 재난영화를 만났지만, 대형사고에 제법 익숙한 나라에 살고 있다. 시작은 〈해운대〉에 갑자기 나타난 쓰나미지만, 한국 재난영화가 나올 소재는 무척 많다는 이야기다.

몇 년에 한 번 씩은 화재사고로 아까운 생명을 잃곤 하는 나라가 아닌가. 불과 10년전 씨랜드 화재로 23명의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잃은 나라다. 대형 화재를 소재로 재난영화가 나올 법 하다. 확실히 〈리베라메〉와 〈싸이렌〉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지도 모른다. 한 영화는 방화범과 소방관의 사투를 다룬 스릴러고, 또 다른 하나는 직업인으로 소방관을 다루는 〈분노의 역류〉풍 영화. 둘 다 재난영화와는 거리가 있지만, 매서운 불길을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다뤘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화재에 대한 공포를 이용했다. 두 영화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면 〈해운대〉보다도 먼저 화재를 다룬 재난영화가 나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밴드 활동의 분기점을 맡는 〈고고70〉의 주인공들이 가까운 동료를 잃는 것도 (실제 일어났던) 화재 때문인 것을 기억하면, 여전히 화재는 한국영화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다. 실은 한국 영화계보다 빠르게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었기도 하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1974년 영화 〈타워링〉은 당대의 스타 군단 폴 뉴먼, 스티브 맥퀸, 윌리엄 홀덴, 페이 더너웨이, 프레드 아스테어, 리처드 챔벌레인, 로버트 본 등을 기용해 찍은, 요새로 치면 〈오션스〉시리즈 두세 편을 한 번에 찍는 영화로 대형 화재가 일어난 고급 호텔에서의 생존기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비슷한 시기 일어났던 한국의 대원각 화재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소문은 유명하다.

화재가 재난에 대한 우리의 추상적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면, 한국인의 기억에 강렬하게 새겨져 있을 사고는 역시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가 아닐까. 민감한 사건인 만큼 쉽게 영화로 만들어지기는 힘들겠지만, 미국이 911을 소재로 〈월드트레이드센터〉나 〈플라이트93〉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 재난영화의 소재로 쓰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재난영화는 아니지만 애잔한 멜로영화 〈가을로〉와 강렬한 대체 시대극 만화 〈야후〉가 '삼풍백화점' 참사를 중요한 소재로 사용하는 작품. 역시 재난영화는 아니지만 단편영화 〈기념촬영〉은 '성수대교'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여름 시즌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관광지 중 하나인 '해운대'에 쓰나미가 몰려온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 중 하나인 설경구, 박중훈, 엄정화, 하지원이 도시를 집어 삼키며 무자비하게 엄습하는 거대한 파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할 예정이다. 한국에 불어닥친 초유의 재난을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 재난영화가 어떻게 스크린에 담아내고 형상화시킬지 궁금할 따름이다.

2009년 7월 16일 목요일 | 글_유지이(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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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sdl3
해운대..기대되네요...   
2009-07-16 20:19
jhj8181
포스터가 어디서 많이 본듯헌데...음음..   
2009-07-16 19:01
justjpk
오늘 극장에서 예고편 볼때는 괜찮은 것 같던에..   
2009-07-16 16:55
bjmaximus
말많은 <해운대>,예고편만 보면 괜찮을 거 같은데.. 쓰나미는 90분 후에 나온다고..   
2009-07-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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