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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음모론에 중독된 미국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 유지이 기자 이메일


새로운 교황을 뽑기 위해, 바티칸에 후보로 선출된 추기경들이 몰려온다. 그러나 곧, 성스러운 교황 선출 행사는 엉망이 된다. 후보에 오른 추기경들이 납치되고 차례로 시체로 발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벌어졌을리 없는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영화화 되기 좋은 이야기. 출세작 〈다빈치코드〉에서 루브르 박물관에 엽기적인 시체를 올려놓았던 작가 댄 브라운이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 로버트 랭던 교수를 기용해서 해결한 첫 사건이 〈천사와 악마〉였으니, 이번에 개봉하는 동명 영화 역시 요새 유행하는 〈비기닝〉식 프리퀄인 셈이다. 시간 상으로는 〈다빈치코드〉보다 전임에도 더 늙어버린 영화 속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엽기적인 시체 따위는 아랑곳없이 사건을 풀어나간다. 여전히 그는, 기호학자의 탈을 쓴 음모론자고 끔찍한 사건을 불러오는 문제아다. 마치 고고학자의 탈을 쓴 〈인디아나 존스〉나 고교생의 탈을 쓴 <소년탐정 김전일> 처럼.

음지의 권력이 성스러운 힘을 공격하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교황 교체 시기에 후보 추기경들을 납치해 살해하는 잔혹한 조직은 비밀결사로 유명한 일루미나티다. 음모론에서 매우 인기가 좋은 이 조직은 영화에서처럼 바티칸의 불합리를 싫어하는 자유사상가들의 비밀 조직으로 알려져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합리주의 집단치고는 신비주의나 음모론에 단골 등장하기는 하지만. 계몽주의시대에 결성된 이유로 일루미나티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집단을 '광명회'라는 이름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시간을 되돌리는 괴상한 물건을 놓고 일당백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와 결전을 벌이는 〈툼 레이더〉 첫번째 영화판의 악당들도 이들이다.

대부분의 음모론 단골 비밀조직이 그런 것처럼, 공식적인 역사에서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 정예 멤버를 조직하고, 시대를 앞서 가는 조직으로 인기를 누리다 해체된 일루미나티는 음모론의 세계에서는 비밀리에 계속 유지되며 세계사의 의미심장한 고비마다 나타나 음모를 획책한다. 앙숙인 바티칸의 수장 교체 시기에 나타나 잔혹한 살인을 일삼는 〈천사와 악마〉 시기나,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을 가진 부적이 힘을 발휘하는 이상한 때에 나타나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그런 때. 혈기방장한 고고학자 아들 〈인디아나 존스〉 세번째 편에서 영화의 주제가 되는 성배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던 것이 아버지인 헨리 존스 박사(숀 코너리)였던 것처럼, 세계 최고의 다이나마이트 바디를 가진 미녀 고고학자 라라 크로프트 역시 시간을 조절하는 부적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아버지에게서 얻는다. 영리하게도 헐리웃의 영화 제작진은 영화 속 라라 크로프트의 아버지인 리처드 크로프트 역을 실제 안젤리나 졸리의 아버지인 존 보이트에게 맡겼다. 그런데 존 보이트가 진짜 음모론에 대가인 모양인지, 다른 영화에서는 라라 크로프트 뺨치게 음모론에 잘 엮이는 전문 보물사냥꾼을 아들로 뒀다.

미국의 역사, 음모론에서 만들어지다
 <내셔널 트레져(2004)>
<내셔널 트레져(2004)>

미국이 성립될 당시 대표적인 음모론 스타집단인 프리메이슨이 깊게 관여했고, 이들이 미국으로 중세시대 보물을 가지고 들어왔으며 미국 건국의 영웅들이 이들과 밀접한 관계였다고 철떡같이 믿는 사람이 바로 벤(니콜라스 케이지)이다. 당연히 영화의 주인공이 믿는 것은 결국 진실로 드러나고, 프리메이슨이 미국으로 들여온 중세시대 보물은 독립선언서같은 미국 국보에 숨겨져있는 힌트를 따라가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국보(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다. 보물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전문학자를 압도하는 빼어난 전문지식을 벤은 그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았는데, 속편까지 함께 출연하며 부전자전 〈국보〉 매니아를 보여주는 아버지 패트릭 역을 맡은 배우가 존 보이트다. 진짜 딸 안젤리나 졸리는 라라 크로프트로 〈툼레이더〉에 출연하며 실제 아버지 존 보이트와 다시 부녀관계를 맺고, 다른 영화 〈내셔널 트레져〉에서는 보물사냥꾼 부자로 벤(니콜라스 케이지)과 함께 출연했으니, 존 보이트야 말로 음모론과 연관이 많은 셈이다. 막상 영화 〈내셔널 트레져〉는 인디아나 존스를 현대 미국에다가 가져온 컨셉의 영화다 보니 그다지 진지한 분위기는 아닌데, 덕분에 미국 건국에 영향을 끼쳤다는 비밀결사 프리메이슨도 〈천사와 악마〉와 〈툼레이더〉에서 일루미나티를 그리는 차이 만큼이나 가볍게 다루어졌다. 이집트 석공조직의 비밀결사에서 출발해 몇 천년 동안이나 유지되며 세계의 비밀을 간직하고 온갖 음모에 관여했다는 음모론 바닥의 일급 스타집단이지만 〈내셔널 트레져〉에서는 미국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하니, 과연 위대한 조직인걸까.

많은 음모론계 스타들이 그런 것처럼, 출생은 모호하고 다른 수많은 음모론 조직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비밀결사란 근본을 알 수 없을 수록 신비한 법이고 거대할 수록 무서운 법이니까. 미국으로 가져왔다는 중세의 보물이란 움베르토 에코가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도 다뤘던 성당기사단이 가졌던 바로 그 재산이다. 이름이 익숙하기도할 것이 〈천사와 악마〉에서 활약하는 로버트 랭던이 저 유명한 〈다빈치 코드〉에서 뒤쫓는 바로 그 집단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에 있어서 성당기사단은 다른 음모론계 집단과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대단한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중세를 대표하는 기사단 중 하나인데다가 성장과 거대한 부를 이룬 과정, 그리고 일제히 소탕되고 사라지는 최후까지가 매우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랫동안 음모론계 최고 스타 자리를 지켜왔고 수많은 음모론 집단이 성당기사단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후신이라는 장미십자단(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는 이 설을 다룬다)이지만, 영국으로 넘어가 프리메이슨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성당기사단의 보물을 프리메이슨이 미국으로 가져왔다면 〈내셔널 트레져〉는 이 설을 믿고있는 셈이다. 물론 성당기사단이 보물보다 더 거대한 무엇을 보호했고, 그래서 소탕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메로빙거 왕조까지 끌고와서 예수의 혈통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 저 유명한 〈다빈치 코드〉다.

세계를 지배하는 그림자 속 사람들
 <컨스피러시(1997)>
<컨스피러시(1997)>

보물을 가지고 있고, 신비하다는 것만으로 유명해질 수는 있다. 성당기사단은 오랫동안 중세 당시보다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고, 심지어 어려서 고아원을 탈출한 천재적인 도둑이 자신의 성을 짓는데도 쓰였다. 성당기사단의 영문 표기 '나이츠 템플라Knights Templar'에서 성을 빌려 사이먼 템플라가 된 이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히트하고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영화 〈세인트〉가 개봉하기까지 중세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그러나 음모론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건 음모론이 아니라 신비주의일 뿐이다. 신비한 집단이 단순한 신비함을 넘어 음지에서 밝은 세상을 뒷공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수준이 되어야 음모론이다. 수백명이 죽는 대형사고가 우연의 소산이 아니며, 엄청난 전쟁의 뒤에는 이를 조작한 뒷조직이 있다는 정도는 되어야 음모론이 된다. 과거에는 프리메이슨과 같은 비밀결사가 정치계나 경제계 거물을 길러 그림자 정부를 조직하고 세계적 환난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한다는 것이 음모론계의 유행이었다. 여기에 〈JFK〉같은 영화로 유명한 미대통령의 논란 많은 암살이나, 로스웰 사건같은 외계인과의 밀약이 더해져 음모론은 힘을 더한다.

과거 유행했던 비밀결사가 〈내셔널 트레져〉나 〈툼레이더〉같은 영화에서 가볍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근래에는 그보다 군산복합체나 미정보기관 등에서 음모론의 소재가 발굴된다. 워낙에나 큰 힘을 가진 조직이고 내부가 공개되지 않은체 운영되는 특징 상 음모론에서 다루기에는 안성맞춤인 까닭이다. 제목부터가 노골적인 멜 깁슨 +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컨스퍼러시(원제: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나 외계인과 관련된 음모론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TV 시리즈 〈엑스파일〉이 대표적이다. 극도로 발전된 컴퓨터 기술과 통신 기술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최신 유행. 한창 잘 나가는 샤이아 라보프가 주연한 영화 〈이글아이〉나 많이 어설프지만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기프트〉가 최근 몇 년 사이 개봉했다. 그리고 극도로 발전한 인공지능이 사람 여럿 잡아먹었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같은 SF 걸작과 아시모프 원작이라 우기는 〈아이 로봇〉같은 괜찮은 스릴러가 그 뒤를 이었다.

힘없는 개인이 불안한 시대, 귀신이 무섭지가 않은 시대, 음모론 인기가 좋은 것도 이해갈 만하다. 압도적인 긴장과 공포를 가장 널리 알려진 종교의 한복판에서 찾는 음모론의 솜씨! <천사와 악마>에서 확인해볼 일이다.

2009년 5월 19일 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

23 )
keykym
책이 너무 재밌어서 영화도 기대되요~   
2009-05-22 08:32
ldk209
소설로는 <다빈치 코드>보단 재미 없지만.. 영화로는 더 재밌다는 평이...   
2009-05-20 20:12
jueheuy
재밌다고들하던데 안보려니 찝찝하네..   
2009-05-20 11:21
thsmw0148
입소문만큼 재밌겠지..?ㅎ   
2009-05-20 08:40
ooyyrr1004
천사와 악마가 전세계 박스오피스 다 잡고 있떤데;; 다빈치코드처럼 실망감만 안겨주지는 않을지   
2009-05-19 22:22
kwyok11
뭐랄까..   
2009-05-19 19:48
justjpk
요즘엔 어디든..   
2009-05-1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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