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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도 드라마다-'위대한 유산'을 보고
이해경의 무비레터 | 2003년 11월 21일 금요일 | 이해경 이메일

'위대한 유산'의 포스터
'위대한 유산'의 포스터

<위대한 유산>을 보려고 기다리는 관객의 마음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다른 건 안 바랄 테니 제발 나를 웃겨 다오. 결코 가벼운 마음이 아니죠. 웃기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썰렁해.’라는 표현이 득세한 다음부터는 어려움이 더 커졌지요. 사람들이 웃음에 대해 더 까탈스러워진 겁니다. 안 웃기기만 해봐라… 그런 마음을 편안하다고 할 수는 없지요. 웃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만, 헤프게 웃지는 않겠다… 그 마음 뒤에는 안 웃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돈이잖아요. 요즘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 손해 본 기분이 들게 만들잖아요. 부담 없이 웃다 나오겠다는 마음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팔 할이 김선아 덕입니다. 일단 망가질 줄 알죠. 영화를 위해 망가졌는데 그 연기가 어색해 보이면, 그것처럼 배우에게 안 된 일도 없을 거예요. 김선아는 망가진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엽기적인 그녀>를 기폭제로 해서 숱한 여배우들이 망가져왔습니다만, 전지현 이후에 가장 잘 망가진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지현의 ‘엽기녀’와 비슷한 캐릭터이지만 아류는 아니구요, 김선아가 자신만이 선사할 수 있는 웃음의 비결을 터득했군요. 대사의 내용만으로는 그녀가 주는 웃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 말투와 표정이 ‘김선아 표’로 특화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지요. 언뜻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르네 젤위거 풍인 듯도 하고, 언어는 다르지만 둘이 구사하는 말투가 닮았다는 느낌이네요.

위대한 유산의 김선아
위대한 유산의 김선아
'브리짓 존슨의 일기'의 르넬 젤위거
'브리짓 존슨의 일기'의 르넬 젤위거
그녀에 비하면 임창정은… 글쎄요, 미스 캐스팅이라고까지 하기는 그렇지만, 적역은 아니었다는 느낌입니다. 이 영화는 그냥 코미디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잖아요. 웃기는 것만큼이나 로맨스 또한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코미디로 끌고 나가다가 사랑이 싹트게 되고, 두 남녀를 소원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있는데 결국은 해소되기에 이른다… 장르의 공식이죠. 이 영화는 그 과정에서 특별한 것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대체로 무리 없는 포맷으로 전개되는 편인데, 아쉽네요. 막판에 감정이 팍팍 살지는 못해서요. 반드시 꽃미남이 나와야 로맨스가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임창정은 김선아와 티격태격하는 데서 힘이 다한 듯해 보이는걸요.

그런데 정말 임창정에게 다 뒤집어씌우면 그만일까요? 이 영화의 포맷에 무리가 없다는 제 말이 맞을까요?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최근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주는 경향에 익숙해져서, 그 기준으로 보니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닌가… 어떤 경향이냐구요? 순간순간 웃기는 데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거죠. 자주 웃을 수 있는 거야 환영할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드라마에 들이는 공이 부족해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게 얘기할 게 아니라 좀더 제대로 지적하자면 코미디와 드라마가 따로 논다고 할까요. 웃음은 탄산 가스처럼 날아가버리고 남는 것은 밍밍한 드라마의 앙상한 뼈대뿐인 경우가 많죠. 한참 웃기다 보니 마무리할 때가 됐는데, 이제 와서 부랴부랴 살을 붙이려고 하다 보니 어떤 식으로든 무리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지

김선아와 임창정
김선아와 임창정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지요. 코미디는 이제 장르가 아니라 영화의 문법이다. 맞는 얘깁니다. 장르 불문하고 코믹한 요소가 빠져 있는 영화를 찾기 힘들죠. 그런데 우리가 통상 코미디라 칭하는 것과는 좀 다른 맥락에서, 코미디란 원래 무엇입니까? 비극의 반대라는 게 가장 훌륭한 답입니다. 한 마디로 해피 엔딩이죠. 바로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핵심적인 문법…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흐뭇한 결말을 그럴싸하게 이끌어내기란, 그때그때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이 내밀한 드라마의 끈으로 연결되어 인물 간의 관계 변화를 튼튼하고도 자연스럽게 뒷받침해줘야, 마지막에 썰렁하다거나 낯간지럽다는 반응을 피할 수 있는 감정의 선이 잡히게 되죠. 말은 참 쉽네요. 말처럼 되는 일이라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위대한 유산>은 부담 없이 웃고 나올 만한 영화입니다. 결말이나 결말로 가는 마지막 단계도 비교적 잘 처리됐구요. 비교적… 저는 지금 그 표현에 자꾸 시비를 걸고 싶나 봐요. 다른 건 안 바란다고 했는데,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건 장소 불문일까요? 욕심이 생기네요. <위대한 유산>에 대해 갖는 아쉬움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고 싶었다면 이 영화를 벌써 구체적으로 다뤘겠죠. 더 큰 욕심이에요. 이제 한국영화계도 정말 아주 기막히게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를 하나쯤 선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미 여러 편이 있지 않냐구요? 글쎄요, 제 기억에는 <닥터 봉>이 유일한 수작인데 그것보다 더 빼어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달라고, 그 쪽에 뜻이 있는 감독님들께 부탁하고 싶은 거죠. 우리 감독들이 잘 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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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fl529
좋은 글 감사~   
2009-09-21 18:32
qsay11tem
잊어 버린 영화에요   
2007-11-27 14:00
kpop20
잊을수 없는 영화   
2007-05-18 23:30
imgold
너무 오바다...하는게 개인적인 생각.임창정씨도 김선아씨도 모두 코믹연기의 달인들이지만 둘이 만나서 너무 오바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2005-02-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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