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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찰리 카우프만, 당신의 뇌 속엔 도대체 무엇이?
시네도키, 뉴욕 | 2010년 1월 5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기상천외하고 상상력 충만한 작가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 할리우드지만, 개중에서도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작가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 사람, 찰리 카우프만을 꼽고 싶다. 7과 1/2층에 숨겨진 긴 홀을 통해 한 남자의 뇌 속으로 들어간다는 <존 말코비치 되기>, 원숭이의 아들로 자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네이처>, 실제와 각본 사이를 오갔던 <어댑테이션>,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이터널 선샤인> 등을 통해 기발하다 못해 기이하고, 기이한 동시에 발칙하며, 발칙함을 넘어 도발적이기까지 한 상상의 세계를 선보여 온 찰리 카우프만 아니던가. 메타 플롯과 1인칭 내레이션을 전매특허로 일찌감치 할리우드의 천재작가로 불린 그의 상상력이 <시네도키, 뉴욕>에서도 어김없이 펼쳐진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에는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작품과 마주했다는 점이다. 스파이크 존즈(<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 감독), 미셸 공드리(<휴먼 네이쳐>, <이터널 션샤인> 감독)라는 영상미의 대가들과 단짝을 이뤄 작업 해 온 그가 이번에는 연출까지 도맡아 ‘시네도키(Synecdoche)’, 즉 ‘제유법’(사물의 한 부분으로써 그 사물 전체를 가리키거나, 그 반대로 전체로써 부분을 가리켜 비유하는 것)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찰리 카우프만은 시작부터 시간의 체계를 파편화시키며 <시네도키, 뉴욕>의 문을 연다. 10월 22일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에 잠을 깬 연극 연출가 케이든(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손에 들린 신문의 날짜는 10월 14일, 혹은 11월 2일을 가리키고, 냉장고에서 꺼낸 유통기한 지난 우유의 날짜는 10월 20일을 나타내고 있는 식이다. 불가해한 텍스트의 진열은 초기작부터 이어져온 카우프만 시나리오의 모티프로, 그는 <시네도키, 뉴욕> 역시 일상적인 사유로 해석 될 수 없는 작품임을 미리부터 예고한다. 유의해야 할 것은 초반의 이러한 부분이 별다른 장치 없이 매우 평이하게 흘러가기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고, 놓치면 작품 자체가 지루하게 다가갈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영화를 두 번째 볼 때야 초반 어그러져 있는 시간들을 눈치 챘다.) 영화의 재미는 초반에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시네도키, 뉴욕>은 긴 인내를 요구하는 영화인 셈이다.

다소 무료한 듯 진행되던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는 건, 맥아서 재단으로부터 엄청난 지원금을 받은 케이든이 뉴욕의 낡은 창고를 하나 빌려, 거대한 도시 세트를 지은 다음 그 세계를 정교하게 모방하는 계획을 세우면서부터다. 아내와 딸이 떠나고, 마음이 끌리는 극장직원 헤이즐(사만다 모튼)과의 관계마저 틀어진 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던 케이든은 뉴욕을 그대로 모방한 이 공간에 자신의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기 자신을 대역해 낼 배우까지 캐스팅 해 넣는다.

이 속에서 케이든은 시간이 갈수록 현실과 연극을 분리하지 못하고 두 세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가 아내와 딸에게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무대의 연극적 에너지로 치환되고, 허구의 무대 위에 연출 된 삶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실로 돌아 와 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연극은 '실제'는 아니지만, 때론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고, 실제였던 현실은 오히려 가상현실(시뮬라시옹)의 영역으로 진입하며 연극과 현실 중 어느 것이 진본이고 복제본인지 모호해지는 상황에 이른다. 케이든을 대역한 케이든이 케이든의 삶을 대신하고, 케이든의 대역의 대역이 등장해 또 하나의 케이든이 되면서 영화는 ‘제유법’의 확장을 거듭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네도키, 뉴욕>는 논리적인 사고보다 욕망과 꿈, 무의식에 발을 디딘 영화다. 더불어 메타포와 알레고리가 넘실거리는 영화이며 관객에게 무한한 해석이 열려있는 극히 주관적인 영역의 영화다. 문제는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열린 텍스트들마저도 쉽게 받아들이기 난해한 지점이 많다는 것에 있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세상에서 헤매는 케이든 못지않게, 관객 역시도 케이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 하다가 방황하게 될지 모른다. 헤이즐의 불타는 집이 무엇을 상징하고, 영화 속 문신들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헤치려 해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영화가 다루는 죽음, 고독, 관계의 문제, 형이상학적인 주제 역시 한 가지 언어로 딱 잘라 규정해 내는 게 쉽지 않다. 카우프만은 그 모든 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시네도키, 뉴욕>은 ‘모두의 영화’가 아닌, ‘일부의 영화’로 기억될 가능성이 농후한 작품이다.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매혹시킨 카우프만의 전작 <이터널 션샤인>과 달리, <시네도키, 뉴욕>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요소가 큰 영화라는 얘기다.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이로운 시간을 안길 영화 안에서 찰리 카우프만에 대한 평가 역시 자연스럽게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카우프만은 감독과 함께 해야 빛을 발하는 ‘시나리오 작가’일 뿐이라는 평과, 카우프만은 독자적으로 활동해도 그 행보가 기대되는 ‘연출가 겸 작가’라는 평으로 말이다. 하지만 관객이 어느 쪽으로 평가하든, <시네도키, 뉴욕>은 한 가지 점에서는 공통적인 궁금증을 안긴다. “도대체 찰리 카우프만, 저 양반 뇌 속에는 무엇이 든 거야?” 하는 궁금증을.

2010년 1월 5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찰리 카우프만. 오, 그대의 상상력은 놀라워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오, 그대의 연기력 역시 놀라워라
-내 머리가 나쁜 게 아닌가, 자괴감에 빠지지 말자. 혼자만 이해 못하는 게 아니거든
-<이터널 선샤인>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기대했다가는 낭패
23 )
shelby8318
왠지 여러번 봐야 이해할 거 같은....   
2010-01-07 20:19
sdwsds
작품성이 좋구나   
2010-01-07 12:53
ffoy
너무 작가주의적이라 그런가,, 찰리 카우프만 스타일은 전혀 공감도 안되고 감흥도 안 인다.   
2010-01-06 20:42
ooyyrr1004
작품성이 꽤 높군요~   
2010-01-06 15:16
norea23

흠..   
2010-01-06 12:57
gaeddorai
이터널 선샤인을 정말 좋아했는데.
정신없도 이해하기 힘들어도 도전해보고싶어요   
2010-01-06 01:28
mooncos
결국은 이해가 안되는거군요..ㅠㅠ찰리카우프만 참 좋아하는데..ㅠㅠ   
2010-01-06 00:51
nada356
쉽게 납득이 가는 작품은 아닌듯.   
2010-01-0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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