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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박찬욱의 新세계
박쥐 |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 하정민 기자 이메일


티끌 하나 없어 보이는 새하얀 벽과 문에 나뭇잎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 문을 열고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나오는 장면으로 영화 <박쥐>는 시작한다. 병원에서 봉사하는 신부 상현(송강호)은 매일같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는 환자들을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인간의 무력함에 절망한 상현은 마지막 소명의식으로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백신개발 실험에 자원한다. 하지만 상현은 실험도중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사망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그 순간 진짜 기적이 일어난다.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은 상현이 뱀파이어가 돼 ‘부활’한 것. 살인욕망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살아가던 상현은 어린 시절 친구 강우(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를 만나면서 더욱 격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박쥐>는 복수, 구원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장르적으로 탁월하게 구현한 박찬욱 감독이 ‘뱀파이어물'을 만든다고 해서 제작 초기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거기에는 장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박찬욱 감독에 대한 기대감과 아무리 장르의 대가가 만든다 한들 서구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뱀파이어물의 한국화가 가능할까 하는 은근한 의구심이 공존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또 다른 신세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 장르영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이번에도 뱀파이어 장르를 자신의 스타일로 체화하는데 성공한다.

존경받던 신부가 의료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후 욕망을 탐닉한다는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의 목소리는 비교적 낮고 간결하다.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을 초반부 한달음에 보여주며 뱀파이어라는 존재에 대한 구태의연한 설명을 생략한 영화는 최소한의 것만 보여준다. 상현과 강우 일가로 이루어진 인물들, 시대성이 탈색된 공간과 그 안에 자리 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 그리고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구조에는 장식적으로나마 쓸데없는 곁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의 것들이 선사하는 영화적 인상은 더없이 강렬하고 선연하다. 밤마다 죽어있는 세상을 활보하는 뱀파이어들의 날렵한 움직임이나 흡혈 행위를 통한 핏빛 이미지는 침묵 속에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시종일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마지막 욕망의 잔재까지도 찬란해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완벽한 딜레마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신부가 흡혈귀로 변하는 소재를 선택했다." 시사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박찬욱 감독의 변에서 알 수 있듯이 <박쥐>는 박찬욱 감독이 장르적으로 먼저 변신을 꾀한 작품이라기보다 전작들의 질문을 다시금 던지기 위해 만든 영화다. 원죄의식, 구원 같은 종교적 테마도 여전하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간의 도덕적 딜레마를 꾸준히 다뤄온 그는 이번에 인간의 상황과 고뇌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박쥐>는 알려져 있다시피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켕>의 플롯에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접합시킨 영화다. 신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인간이 뱀파이어가 돼 숨겨진 욕망을 발산하고 씻을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은 박찬욱 감독의 어느 작품보다 깊고 어둡다. 이는 전작에서 보여준 인간과 사회가 충돌해 빚어낸 갈등이 아니라 철저히 한 인간의 내면에 놓인 근원적인 고통과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현의 고뇌는 개인의 욕망을 위해 자신의 피를 갈구하는 태주와 시각장애인 노신부(박인환)의 광기와 맞닥뜨리면서 더욱 깊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박쥐>가 마냥 무거운 영화만은 아니다. 장르 비틀기의 달인인 박찬욱 감독은 뱀파이어 장르의 기본적인 공식을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집어넣는데 성공한다. 상현은 뱀파이어가 된 후 뱀파이어물의 관습대로 햇빛을 피하고 피를 갈구하지만 할리우드 뱀파이어들이 지닌 뾰족한 송곳니 따위는 없다. 상현의 지극히 평범한(?) 외모는 영화가 뱀파이어의 생활을 그리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섹슈얼한 욕망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흡혈을 해야 하는 그는 식물인간인 환자의 링거 주사를 통해 나름 합리적인 방법으로 피를 구한다. 이런 설정들은 박찬욱 영화 특유의 히스테릭한 인물들과 함께 영화에서 유머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이번엔 최대한 색과 패턴을 덜어냈지만 여전히 그만의 스타일이 명징한 미장센도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새로운 시도와 기존의 장점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박쥐>가 박찬욱 감독의 걸작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각각의 견해가 갈릴 수 있다.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의 주제의식이나 <올드보이>의 스펙터클을 떠올리는 관객에게는 그만큼의 강도를 안겨주진 못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전작에서부터 반복되어온 블랙 유머 패턴과 상현과 태주를 잇는 감정의 밀도가 종종 떨어지는 부분은 주의를 흐트러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박쥐>를 통해 박찬욱 감독이 새로운 영화적 경지에 도달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그의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관객의 신체험이 된다는 것이다.

2009년 4월 25일 토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박찬욱과 뱀파이어의 궁합지수는 꽤 높다
-연기는 물론 이슈 측면에서도 송강호는 '넘사벽'의 배우
-김옥빈, 웰컴 투 박찬욱 월드
-<렛미인>의 서늘한 공감각적 체험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한국영화에서 귀신 아닌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관객
-액션과 CG가 현란한 할리우드 뱀파이어물과 동일한 아드레날린 수치를 원하는 관객
-박찬욱 감독이 던지는 종교적 질문이 이제는 지겹다는 관객
43 )
galiczin
닥치고 박.찬.욱.   
2009-04-25 21:02
dkstjdtn123
평이 상당히 좋군요! 역시 박찬욱 감독!!!
개봉하면 당장 극장을 ㄱㄱㅅ !!!   
2009-04-25 18:44
ldk209
쩝.. 어제 보러갈 수 있었는데... 이제 30일만 기다려야 겠네   
2009-04-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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