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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흥행성 중박! 작품성 대박과 중박사이!
오래된 정원 | 2006년 12월 29일 금요일 | 이지선 영화 칼럼니스트 이메일


유명한 작품을 영화화하는 일은 항상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작품의 유명세에 힘입어 초기 홍보라는 과정의 어려움은 덜 수 있을지 몰라도, 인지도 높은 작품과의 비교평가는 새로 태어난 영화가 반드시 겪어내야 할 필연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팬 층이 두터운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경우라면 벽은 더욱 높다. 캐릭터와 설정, 이야기와 분위기까지 샅샅이 비교당하고 해체되어야 할 운명. 그것은 어쩌면 유명한 원작을 지닌 영화에게 주어진 태생적 형벌이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오래된 정원>은 바로 그런 영화다. 흔히 격동의 시기라고 표현되는 8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는 두 남녀의 아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한때 한국문단을 뒤흔들었을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던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을 붙들고 밤새 울었다는 사람들이 숱했던 문제작의 영상화 작업. 궁금증만큼이나 불안감도 컸던 게 사실이다.

영화는 소설과 비슷한 구성방식을 취한다. 감옥에서 막 출감한 남자의 회상을 통해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이별 이후, 기다리는 여자의 시선으로 옮겨가며 시대에 대한 성찰을 담는다. 쫓기는 남자와 숨겨주는 여자.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남자와 운동권이 아니라고 말하는 여자. 두 사람의 사랑은 어쩌면 시대가 부른 운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역시, ‘신나게 사랑만 하기에는 너무도 미안했던’ 바로 그 시대 때문에 두 사람은 이별한다. 현실과 회상이 교차되고, 영화는 짧은 사랑을 영원히 가슴에 품어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삽화들로 채워진다.

심지 굳고 개성있는 남녀 캐릭터의 만남과 사랑은 흥미롭고 아름답다. 윤희와 현우는 원작에서 보다 가볍게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과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두 배우의 연기도 좋은 편이다. 언제나 진지한 인상의 지진희나, 야무진 표정의 염정아나 원작 속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한 얼굴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선하며, 각자의 캐릭터를 온전히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영상 또한 훌륭하다. 때때로 아름답고, 때때로 잔혹한 화면들은 시대적 분위기를 꽤 잘 전달하고 있다. 두 남녀의 애틋한 감정과 그림 같은 갈뫼의 풍경 사이사이를 삽화처럼 채우는 80년 광주, 격렬한 집회와 진압 풍경, 파업과 분신을 그린 장면들은 현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영화는 원작만큼 강렬한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시대와 사람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 아프게 교차했던 원작과는 달리, 임상수 감독의 시선에는 냉소가 다분하다. 사실 그의 전작들에 비한다면 충분히 따뜻하고 부드러워진 감독의 시선이 놀랍긴 하지만, 간간히 느껴지는 냉소는 마치 감독의 인장과 같다. 임상수 감독은 현장감 넘치는 영상으로 표현된 집회와 분신장면, 그리고 운동권들의 회합장면에서 감독은 “엄마, 뜨거워”나 “인생은 길어. 역사는 더 길어. 우리 좀 겸손하자.”는 대사로 비판의 지점을 시사한다. 사람보다 이념이 앞섰던 시대에 대해 던지는 감독의 비판은 옳지만, 사람보다 이념이 앞설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영화에는 없다.

이 인장과도 같은 냉소로 인해 영화 속 인물들이 지녔어야 할 필연성은 감소된다. 원작 속의 활자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던 장면들이, 도리어 시각적으로 완전한 하나의 그림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는데, ‘아, 그땐 그랬지’ 이상의 감흥을 부르지 않는다. 단 6개월 간 사랑하고, 무려 17년간 이별한 채로 그리움만으로 평생을 지내는 두 남녀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원작보다 훨씬 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현우와 윤희는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시대적 배경이 아프게 와 닿지 않아서인지 그들의 사랑과 이별이 원작에서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한다. 시대와의 화해를 제안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따뜻하지만, 그 따뜻함을 끌어안기에는 여전히 당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영화 <오래된 정원>이 충분한 미덕을 가진 작품임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영화가 원작과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오는 일종의 한계에 기인한다. 어쩌면 그것은 황석영과 임상수라는 인물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경험한 자의 언어와 지켜본 자, 또는 전해들은 자의 언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격동의 시대를 몸으로 겪어낸 작가가 그려내는 표현과, 그 시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작가가 담아내는 언어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영화는 원작과 같은 인물, 같은 소재, 같은 시대를 그리고 있음에도 다른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긴, 동어반복이라면 굳이 스크린을 통해 이들을 만날 이유도 없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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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감독의 팬이라면
-두 배우의 맛깔스러운 연기를 기대한다면
-80년대에 대한 ‘임상수식 비전’이 궁금하다면
-원작 <오래된 정원>에서 얻었던 감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은 분이라면 피해가는 편이 나을지도.
34 )
lee su in
이 작품에서는 전작보단 덜했지만 임상수 감독 스타일이 원래 냉소적 시선이기에 원작과 비교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80년대를 살아간 시대적 아픔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황석영 소설을 임상수 감독이 영화화 한 것은 적절했다고 봅니다.
  
2006-12-29 15:38
bjmaximus
원작에 비해서는 아쉽다는 평이신데,그래도 작품성 대박을 주셨군요.[오타 ---> 11번째 줄 : 인핸 ---> 인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06-12-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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