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볼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던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꿈에 나온 이야기에 살을 붙여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믿는 여자 ‘영군(임수정)’과 남의 버릇을 훔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남자 ‘일순(정지훈)’의 로맨스를 스크린에 담아냈다.
부모의 시각으로 그려낸 복수 3부작이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다소 불편한 영화라고 가정할 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순전히 자식의 입장에 선 영화다. 이들에게 복수할 대상도, 유괴해야 할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이 어떤 대상을 미워하는 이유는 모성과 부성을 뛰어 넘는 순전히 자신만의 입장, 그뿐이다. 물론 그 증오의 중심엔 핏줄로 맺어진 관계가 원인이 되며 그로 인해 부모의 익숙한 역할은 여지없이 반복된다. 사이보그라서 식사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지닌 영군에게 ‘밥’을 먹이려는 일순의 순애보는 흡사 입 짧은 자식에게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고픈 부모의 마음처럼 절절하다.
동화적인 공간으로 표현된 ‘신세계 정신 병원’은 폐쇄적인 독방을 포근하고 발랄한 연두색 벽지로, 우울한 환자들이 배회하는 휴게실 벽면을 알프스 산으로 꾸밈으로써 환자들의 ‘갇힌 공간’이 아닌 그들의 ‘휴식처’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몽환적인 클림트의 벽화를 흉내 낸 구내 식당과 큰 새장 속에서 단체 치료를 하는 환자들의 모습까지 판타지 적인 느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태생적, 문화적 상처들은 그들에게 에게 씻지 못한 트라우마를 안겼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모호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속 ‘신개념 칠거지악’이야 말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확실한 실용서임을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제시한다.
대중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함에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실험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면서도 장르적 성격을 무시해버린 생소한 소재와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군과 일순이 비정상적인 입장(?)에서 보여주는 일상의 연애담은 순수하고 흔하지 않아 눈물겹다. 그녀에게 평생 AS를 다짐하는 모습은 정지훈이 연기한 일순이기에 가능하며, 그의 사랑으로 밥을 먹어도 되는 사이보그로 다시 태어나는 영군의 변화는 임수정에 의한 영화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한없이 유쾌하거나 혹은 상당히 불쾌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쓸데없는 공상이 만들어 낸 지루하고 난해한 영화라 몰아부치기엔 너무나 많은걸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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