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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묶어두는 과거의 사랑, 그 참을 수 없는 흔적 2046
jimmani 2004-10-08 오후 10:53:28 2489   [9]

부산에 사는 사람으로써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피프 광장에 나가 각종 홍보물만 잔뜩 얻어오고 영화는 한편도 보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쉬웠었다.(학생이라는 신분적 제약이 있기도 했지만...) 하지만 올해에는 기필코 한편은 보리라는 마음을 먹고 영화들을 찾아나섰다. 많은 기대작들이 있었으나, 거의 매진된 것을 알고(이 영화 <2046>까지 포함해서) 다른 영화들을 찾고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이 영화 <2046>의 부산 프리미어 시사회에 당첨되는 행운이 생겼고, 드디어 영화제 기간 중에 영화 한편을, 그것도 제대로 잡은 한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짜 시사회에다, 감독과 주연 배우가 함께 하기까지 하는...^^

왕가위 감독은 다소 무뚝뚝하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감성적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절실히 느꼈던 점이다. 전작들인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등에서도 '사랑'이라는 소재가 그가 주로 돋보기를 들이댔던 소재지만, 여기서 그는 이제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하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하면서도 점잖고, 고전적이면서도 극히 미래적인 스타일에, 조용히 감성을 건드리는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까지... 여러모로 이 영화는 보고 나서도 한동안 그 여운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신문 칼럼과 삼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쓰며 돈을 버는 남자 차우(양조위). 그에게는 한때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기억이 있다. 유부녀인 리첸. 안타깝게 끝나버린 그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인지, 그는 다른 곳에 자신의 마음을 집중한다. 2046년을 배경으로 한 SF 로맨스 소설을 쓰기도 하고, 다른 여인들과 만남을 갖기도 한다. 리첸을 떠난 뒤에 온 싱가폴에서는 도박사인, 리첸과 이름이 똑같은 수리첸(공리), 오랜만에 만나게 된 옛친구 루루(유가령), 싱가폴에서 홍콩으로 와서 묵게된 작은 호텔에서 만난 고급 창녀 바이링(장쯔이), 그리고 그 호텔의 큰 딸인 징웬(왕페이)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가 만나는 여인들과 사랑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리첸, 루루, 징웬과는 단순한 교감 혹은 우정 수준에서 그칠 뿐이고, 바이링과는 격렬한 정사가 다인, 육체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지난 사랑인 리첸을 잊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나 모두 수포로 돌아갈 뿐인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징웬과 그의 일본인 연인(기무라 타쿠야)의 사랑이야기를 모델로 한,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SF 소설 '2047'을 쓰기 시작한다.

우선 왕가위 감독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수려한 영상 스타일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2046>의 영상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화려함과 점잖음, 고전적 이미지와 미래적 이미지가 절묘하게 결합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의 배경이 1960년대 말이라는 예전 배경과 2046년이라는 미래적 배경이 함께 나오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보면 색다른 점을 느낄 수가 있다. 색색의 네온이 반짝이고 어딘지 차가운 블루빛 복도가 눈길을 사로잡는 1960년대의 풍경은 시간적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미래적인 분위기를 다분히 조성하기도 한다. 또한, 눈길을 확 끄는 영화 속 홍콩의 풍경과 2046년 미래의 풍경은 지극히 현란하면서도 그 속에서의 영화의 흐름은 지극히 조용하다. <화양연화>에서의 점잖은 이미지가 여기서도 어느정도 이어지는지, 중간중간 등장하는 열차의 빠른 움직임을 제외하자면, 인물들의 심리를 주로 추적하는 화면은 그리 동적이지 않다. 그점이 오히려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 않나 싶다.

이 영화를 얘기하자면 배우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양조위, 공리, 장쯔이, 기무라 타쿠야, 장만옥 등 공개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그만큼 연기 보는 맛을 제공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인 양조위는 지난 사랑의 강렬함으로 인해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는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겉은 지극히 점잖은 작가의 이미지이지만, 그안에는 지난 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남과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한 여자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바람둥이의 모습을 동시에 잘 보여준다. 창녀 바이링으로 나오는 장쯔이의 연기는 이제 성숙미가 정말 물씬 풍겨난다. 사실 그녀의 전작들인 <와호장룡>, <영웅>, <연인> 등의 모습에선 아직은 좀 앳된 모습이 보이는 게 사실이었는데, 이 영화에선 역할도 역할이거니와 연기가 부쩍 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돌하게 남자와 맞서며 대꾸하면서도 한번 꽂힌 사랑을 좀처럼 놓지 못하는 순정파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도박사 수리첸으로 나오는 공리의 모습은 몰라보게 세련되다. 사실 영화 속에서 자주 봐왔던 모습은 평범한 서민의 모습이라 수수한 이미지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우아함과 함께 오랜 연기 생활에서 뿜어 나오는 관록의 카리스마가 어느 배우 못지 않게 대단했다. 이 영화에서 흔치 않은 외국 출신 배우인 기무라 타쿠야는 사실 분량은 그리 크지 않지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중국어가 대부분인 영화 속에서 일본어로 나레이션이나 대사를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이국적인 카리스마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고, 현실에서의 단정한 남자의 모습과 미래에서의 다소 야성적인 모습, 이 두 양면적인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다. 다만 특별출연이라는 장만옥이 정말 '특별출연급' 비중이라 좀 실망스럽긴 했다. 1분은 커녕 30초도 채 안나오는 것같더라...-_-;;

사실 왕가위 감독이 아시아의 스타일리스트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그가 지금껏 영화 속에서 다뤄온 주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바로 '사랑'이라는, 인간사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지금껏 그가 전작들에서 사람들의 사랑하는 모습을 주로 보여줬다면, 이 영화 <2046>에서는 사랑을 끝낸 사람의 모습을 따라간다. 지난 날의 사랑이 짧지만 너무나 강렬했던지, 주인공 차우는 이 사랑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육체적 관계나 정신적 우정의 관계에서만 그치지, 그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현실 뿐 아니라, 그가 쓰는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가 징웬과 그녀의 일본인 연인을 모델로 썼다는 소설 '2047' 속의 남자주인공의 모습도 사실은 차우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국은 단절되고 마는 차우의 현재 모습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비밀이 있다면 산에 올라가 나무 한 그루를 골라 구멍을 뚫어 비밀을 속삭이고 그 구멍을 다시 흙으로 덮는다'면 좋겠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않는 차우의 상황으로선 그 비밀을 가슴속에 쇳덩이처럼 가라앉힌 채 힘겹게 현실의 발을 옮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좀 더 색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다. 관객과의 대화 중에도 이런 대답이 있었다.(누가 했는지 갑자기 생각이 안난다.^^;;) '사랑은 처음에는 불같이 뜨겁게 타오르지만, 식고 난 다음에는 그 차가움이 엄청나게 오래간다'고. 이 영화 <2046>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의미도 결국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빠질 무렵에는 그 솜사탕같은 달콤함으로 사람을 사정없이 빨아들이지만, 그 사랑이 허무하게 끝을 맺은 다음에는 그 깊고 긴 여운에서 발목을 빼지 못하고 허우적거려야만 한다는 것. 그게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 말이다.

이렇게 사랑을 정의내린다면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우리가 끊임없이 이 '사랑'이라는 소재를 수세기동안 찾는 이유가 되지 않나. 첫맛은 달콤하지만 끝맛은 쓰디쓴, 우리가 어느 곳에서 맛볼 수 없는 매력적인 맛을 지닌 게 바로 이 사랑이기 때문에. 이 영화 <2046>은 이처럼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아닌 것이다.

사족: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는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으나, 극장 개봉시에는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사실 15세 정도가 보기에 그리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베드신들이 상당히 잦고 강하다.-_-;;


(총 0명 참여)
정말 심오한 평이시네여 - 이영화 저도 보면서 많은 전율을 늦겼답니다..*   
2004-10-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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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20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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