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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베니스의 상인'의 현주소.. 베니스의 상인
schipfied 2005-10-14 오전 3:20:59 12982   [29]

음, 원래는 블로그에만 감상을 올리려고했는데

이쪽 티켓나눔터에서 양도받아 간 것이라 감사하기도 하고 해서 감상 올려봅니다^^.(..재검색 해봤는데 구문오님이셨군요, 감사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이야 내용 다 아는거니 안 볼 수도 있고, 뭐 또 미리 감상문 좀 읽는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 하시는 분, 그리고 되도록이면 이미 이 영화를 본 분만 스크롤 바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미리 말씀 드리지만 편견과 애정이 가득차 되는대로 쓴 감상이오니 보시고 나서 '과연 같은 작품을 본건가'라고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음 생각해보니 거의 리뷰 수준이라 영화를 보지 않으신들이 읽으시면 자유로운 감상에 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간단한 평만 위쪽으로 끌어둘테니 줄 아래쪽 리뷰를 읽으시는건 자유에 맡기겠습니다..OTL

*전반적으로 전 상당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다 아는 내용이라도 색다르게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아는 내용을 생동갑있게 하는 건 사건의 인과관계를 좀더 분명히 해주는 연출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견배우들의 연기도 좋았고, 비주얼적인 요소과 청각적인 면이 조화를 잘 이루면서 잘 차려진 밥상을받고 나온 기분이었습니다.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원문은 이쪽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1. 수상한 감독의 의도(어이, 당신 동인남이지?)


러브스토리는 러브스토리죠..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r

백보 양보해서 감독이 동인남이 아니라고해도, 그가 게이삘로 이 작품을 해석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봐도 철없는 20대인 바사니오의 절친한 친구 안토니오로, 요새 들어 새삼스레 미중년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제레미 아이언스를 캐스팅한걸로도 모자라 그런 노골적인 묘사를 했을리 없겠죠. 어떤 묘사냐구요?
영화 초반에 안토니오는 가면 속에 얼굴을 숨긴 채 유대인 구역으로 잠입하는 바사니오를 직빵으로 알아봅니다. 잘 아는 사람이라 눈에 익어서 그런거라구요? 뭐, 저야 '그 와중에 보고싶은 사람을 딱 찝어서 보는건 애정의 힘이야'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다음을 봅시다.

다음 날 식사 시간 즈음 창가에 서 있던 그는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아.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라면서 동료들에게 불안을 털어 놓습니다. 그와 동시에 창가 너머로 배를 타고 다가오는 바사니오와 한무리의 친구들을 발견하지요. 그 때 표정을 잘 보세요. 한순간 불안에 떨다가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기뻐하는 듯 하더니 간밤의 바사니오의 행각을 떠올리면서 다시 불안해집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도 그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볼 리 없단 말입니다. 정말 애증이 교차하는 끈적한 시선이라구요.

 

두 번 째, '그러고보니 오늘 중요한 할말이 있댔지?' 라면서 주위를 물리고 부탁이 있다는 바사니오와 조용히 밀담을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 까지는 좋은데

왜 하필이면 침실로 가는 겁니까!!(어차피 식당엔 아무도 없었단 말입니다!!)

게다가 거기에 슥슥슥 걸어가 별 생각 없이 덜렁 누워서는 '젊고 부자에 아름답기까지 한 벨몬트의 미녀에게 청혼하러가야하니 니마 던 점..'이라 잔인(?)하게 말하는 바사니오군의 행각은 그 장소가 무지무지하게 익숙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순간 안토니오의 얼굴에 고뇌의 그림자가 스쳐갑니다. '하려던 말이 결국 그것이었나'-물론 이런 대사는 하지 않습니다만 얼굴에 다 써 있단 말입니다. '결국 나를 떠나는구나.'라고요.

안토니오의 모든 상선들이 해외에 나가있는 불안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서, 방탕하기 그지 없었던 바사니오가 3000두캇을 빌려달라는 어려운 청을 하지요. 안토니오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어쩔 수 없지, 베니스에서의 내 신용을 믿어보는 수밖에'라 말하고 보증서를 써 줍니다. 그의 상황을 충분히 알면서도 무리한 부탁을 한 바사니오는 감동해서 고마움의 표시로 안토니오의 '입술'에 키스합니다. 서양의 관습상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다음 장면에서 왜 그 입술을 쓰다듬으며 알수 없는 상념에 잠기는 건데!!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바사니오가 포샤의 결혼 퀴즈를 풀어낸 이후, 안토니오의 상선이 모두 침몰했으며 빚을 갚을 수 없어 곧 재판정에 서야만 한다는 서신이 날아들지요. 그 편지에서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곧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할 걸세. 샤일록이 의지를 굽히지 않으니 아마도 나는 죽을지도 모르겠군. 다만 죽기 전에 자네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싶네. 그대의 빚은 그걸로 대신하도록 하지.'


...보세요. 이미 우정의 수준을 넘었습니다. 이건 애정이라구요. 실제로 영어 대사를 듣고 있으면 우리 말로는 '우정'이라 번역되어있는 부분이 사실은 'love'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극중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우정이 보통의 것이 아님을 누누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love는 문맥상으로도 우정과 애정을 혼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도대체가 하는 짓을 보면 애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급기야 재판정에서도 애정행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절박해서 나온 소리이려니 하고 다들 넘어가시겠지만 바사니오는 분명히 말합니다. 새로 얻게 된 아름다운 부인이라도 안토니오와의 우정만 하지는 못하다고요, 그것을 잃느니 차라리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말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미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힌 바사니오의 또다른 허풍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제 눈은 의혹의 시선으로 가득차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감독은 동인남입니다- r.


과장해서 말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감독의 의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도 하죠. 셰잌스피어는 원작에서 안토니오가 바사니오와 왜 절친한 우정을 유지하는지,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 뭐 하던 친구인지 입도 뻥끗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보기 드물게 절친한 친구사이였다.'라고 써줌으로써 랄랄라, 우리는 친구, 그러니 목숨을 걸자, 라는 것은 현실성이 없지요. 아마도 그래서 그 틈을 비집고, 저 지나칠 정도로 보이는, 서로에게 목숨과 재산을 몽땅 다 걸어도 아깝지 않을 우정의 원인을 '내연의 관계'로 추정되는 애정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듯 싶습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말하는 거죠. '이래도, 이래도 그 둘이 그냥 순수한 친구 사이였다고 볼 수 있겠어? 당신이라면 친구에게 그렇게 쉽게 목숨을 걸어주나?'라고요. 마침 동성연애가 딱히 부정받는 시대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해석해도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니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다 소 코믹하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코믹이라든가 완전 게이영화라든가 하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이 그냥 '쟤들 뭐래니..'하는 정도에서 넘어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작에서 몇 가지 해명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점수를 높게 주고 싶어요.


2. 샤일록

 
사실 이전까지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상인'이 없었지 않습니까. 샤일록은 수전노로, 쓸데없는 분노를 안토니오에게 풀려고 하는 악당역을 도맡다가, 영민하다고 칭송되던 포샤의 판결에 넘어가 집도 절도 없는 노인 신세가 되는게 주된 결말이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좀 다릅니다. 아마 당신은 영화가 끝난 후 샤일록을 동정하며 이렇게 외칠지도 모릅니다.


"알 파치노 만세에에에에에에!!!!!"


그렇습니다. 샤일록이 분노에 들끓어 굳이 안토니오의 심장살을 떼가야겠다고 우기는 분노에 대해 적당한 개연성(마침 아끼던 딸이 바사니오 일당 중 한명에게 반해 집안 재산 싸들고 야반도주를 했거든요.)을 제시해주는 연출도 탁월하지만 샤일록의 캐릭터가 이만큼이나 절절하게 살아난 데에는 알 파치노의 탁월한 연기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했을 겁니다. '우리는 찔려도 피가 안나나? 독약을 먹고도 죽지 않는가? 너희들과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길을 걷는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가?'라면서 열변하던 그는 천대받았던 유대인의 한풀이를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처럼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 분노도요.

어쩌면 그의 딸이 란셀롯과 사랑에 빠져 도망가지만 않았더라도 안토니오에게 그렇게 잔인한 형벌을 가하려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간 받은 천대의 기억 때문에 냉소할 수는 있었겠지만요. 오히려 그 전까지의 태도를 보면 절박한 순간에 빚을 탕감해주고 앞으로 그의 고리대금없에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는 조건을 내거는 편이 그의 계획이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성을 잃기 전 계산이 빠르고 몇 수 앞을 내다 보며 이빨을 감출 줄 아는 제정신의 그였다면, 원금의 두 배인 6천 두캇을 눈앞에 두고 쓸데없는 가슴살덩이 하나를 택하지는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오히려 '다시는 내 직업을 문제삼지 않도록'이라는 조건을 내걸며 자비를 베푸는 척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았겠죠.


아아, 평생토록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가 가련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인들에게 뺏길까봐 애지중지하면서 키워온 딸은 바로 그 기독교인(그것도 기독교 왕국의 기사 이름을 가지고 있는)에게 홀랑 넘어가버렸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안토니오에의 복수는 '다니엘의 재림이야'라면서 믿었던 정체불명의 법관 때문에 날아가버렸죠, 덤으로 이방인 주제에 베니스인의 목숨을 노렸다는 죄목을 떠안아 벌금내야죠, 재산의 절반은 죽일 듯이 미워하는 안토니오에게 귀속되버렸죠. 그 재산 안토니오가 잘 관리하고 있다가 그가 죽으면 그 딸에게 물려주겠노라고 약조했다지만, 그 망할 놈의 딸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이라곤 '하루 밤에 80두캇을 흥청망청 썼다더라, 원숭이를 사느라 샤일록이 젊은 시절에 부인에게 선물했던 반지를 팔았다더라.'등등. 게다가 사형당하지 않으려면 목숨보다 아끼던 종교도 기독교로 개종해야하죠. 대체 그에게 남은 것이 뭐가 있답니까. 잔인해요, 잔인하고 말구요, 똑똑하다고 칭송받는 포샤의 판결은 사실 기독교의 승리를 위해 무자격자라는 것을 눈감아 준 관습법을 무시한 말장난이란 말입니다. 그걸 샤일록이 내내 융통성없는 정의만을 고집했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인정 한톨 없는 판결을 내려야 할 이유가 뭐랍니까. 엉엉엉.


3. 바사니오, 버럭
 
사건의 원흉이자 기회주의자이며 희대의 '기생오라비'(...이건 제 표현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대사 일부입니다)입니다. 안토니오가 홀려있었다는 건 둘째치고, 원작에서도 그리 썩 마음에 드는 남자는 아닙니다. 아니 대체 포샤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납상자를 고를만큼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 어째 그리 하는 일 마다 사고를 치고 다닌답니까. 젊은 날에 얼마나 방탕하게 놀았으면 전 재산을 날려먹고 아니 그래, 청혼하러 가는데 돈이 없어서 절친한 친우에게 보증 서달라고 하는 놈이 어딨습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안토니오쪽이 급하게 생겼으니 아내에게 손 벌려 사건을 무마하려 들지요. 철없고 순진하게 무식한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돈에 관해서는 꽤나 현실감각 없는 친구라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기에 좋은 남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하는데는 젬병일거라는 거죠.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겁니다. 눈독을 들이고 있는 사람은 틈만나면 아련한 연심의 눈빛을 보내는 안토니오 외에도, 첫눈에 그에게 반한 포샤가 있을 뿐더러, 심지어 '너무나 잘생기고 사랑스러운 분'이 왔다고 포샤에게 전해주는 전령의 허둥거림과 과장에 이르르면 폭소하게 됩니다. 그 전령도 남자거든요OTL.

한가지 재밌는 점이 있다면 바사니오 역의 조셉 파인즈 씨는 '셰잌스피어 인 러브'에서 무려 셰잌스피어 역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사랑에 빠졌던 인물의 스타일이 알게모르게 당시 상대역이었던 바이올라(기네스 펠트로)와 닮았죠. 망상증을 가동시킬 수 있는 영화 팬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는겁니다. '아아, 셰잌스피어 씨, 아직도 아메리카로 떠난 바이올라양을 잊지 못하고 스스로의 작품 속에서 떠도는겐가' 라고요.



4.포샤, 영악한 그대
 

어렸을 때는 그녀의 똑부러지는 말재간과 '피 한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라는 그녀의 말이 명판결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했습니다만, 아아 알파치노의 연기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연출 탓인지, 아니면 머리가 굵어진 탓인지 이 아가씨 또한 순수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그녀는 묘사된 그대로 뽑아온 것마냥 아름답습니다. 우아하고 사랑스러우며 똑똑하기도 하지요. 명판결이라 칭송되었던 그녀의 판결이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잔인하기 그지 없다는 점은 위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셰잌스피어는 극의 재미를 위해서 굳이 그녀와 그녀의 시녀가 남장을 하고 위험천만한 재판정에 서는 장면을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그럴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판결의 힌트를 베니스 공작에게 서신으로 전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여하튼 여러모로 영악한 아가씨입니다. 바사니오는 그녀가 빚을 청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라 쓰고 내연의 관계라 읽는)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가 청혼했고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3가지 이유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에게 반항하지 못할 겁니다. 사랑의 고백으로 '나의 주인, 나의 지배자여' 라고 칭하긴 했어도 여전히 둘 사이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은 그녀가 될 거라는 거죠. 게다가 연적(...)에게 목숨빚을 왕창 얹어놓았으니 저절로 제거되버렸고요. 돈 갚으라고 빌려준 6천 두캇도 사실은 샤일록에게 처벌을 선언하면서 한푼도 안 썼습니다. 영악하고 어떻게까지 보면 무섭죠.


5. 풍부한 의상과 음악

DVD를 지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습니다. 그게 안되면 OST라도 지를겁니다.
화면에 흘러넘치는 저 풍부한 색채. 서정적이면서도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 아아,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환상이 스크린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됩니다. 이토록 의상과 색채가 화려하면서 눈이 핑핑 돌아가던 시대극작품으로는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했던 '베니티 페어(vanity fair)'이후로 처음이에요. 내용이 뭔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도 눈이 즐겁고 싶으신 분이라면 볼만합니다.


6.의혹의 마지막 장면

대강 쓰고 그만 잘까 했는데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상당히 뜬금없어 보이거든요. 뜬금없다기보다는 상당히 느낌이 특이합니다. 마침내 풀려난 안토니오와 함께 돌아온 남편의 일행을 맞이하고, 반지사건이 지나간 후, 포샤가 자신이 명판관이었음을 밝히고, 모여있던 세 커플(바사니오-포샤,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바사니오 친구와 포샤의 시녀, 란셀롯과 샤일록의 딸 제시카)이 룰루랄라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쌍한 안토니오는 졸지에 짝없는 외기러기 신세가 되면서 혼자 뻘쭘하니 식당에서 서성거립니다. 더 불쌍한 샤일록 할아버지는 강제 개종명령때문에 안식일날 교회에도 못 가고 교회 문이 자기 앞에서 닫히는걸 쓸쓸히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거리를 서성거리게 되지요.


그리고..


날이 밝습니다. 샤일록의 딸이 강가로 걸어 나옵니다. 아침 산책이라도 나온걸까요. 그녀의 표정을 밝지않습니다. 바사니오와 포샤, 그리고 안토니오가 살아남아 행복해졌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만한 고통이 지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녀는 반지를 쓰다듬으여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그 반지는 그녀가 원숭이를 사느라 팔았다는 소문이 자자하던 바로 그 반지(샤일록의 젊은 시적의 추억이 담긴)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을 바라봅니다. 긴 곤돌라가 두대 떠 있고 그 위로 사람이 한명씩 올라 서서 강에 활을 쏘는군요.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당시에 특별히 행하던 뭔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그 풍경을 바라보는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어라라, 방금 전까지 해피 룰루 하던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씁쓸한 풍경으로 끝나버립니다.그렇지만 직전까지의 화려함에 가려서 그 장면은 그다지 강렬하게 뇌리에 남지는 않죠.


하지만 기억해야하는 겁니다. 바사니오 일당에게는 해피엔딩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새드 엔딩일 수 있다는 사실을요. 주인공의 행복이 모든 사람의 행복일 수는 없다는 것을요. 누군가는 초라한 납상자를 열었음에도 사랑을 얻고,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어떤 사람은 사랑을, 가족을, 재산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냥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저항하지 않는 강물에 화살을 쏘는 것이 가만히 잘 사는 사람들을 건드려 문제를 일으키고 갈등상황을 만들어내고 또 짓밟는 당시의 모습처럼 보였거든요. 우리는 그 강의 수면이 쉬이 흔들리지 않기에 쉽게 잊어버리지만,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버렸을 누군가의 자존심과 목숨과 삶에 두번 씩이나 화살을 날려 확인 사살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또 이렇게 보는 수도 있겠지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유장한 강의 흐름은 비정하리만치 무심히만 흘러가더라 라고요.)

그리고 또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바로 그것을 말입니다. 샤일록의 아픔에 대해서 기억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도 악랄한 구석이 있기야하지요. 하지만 이쪽으로 판결이 좋게 났다고 해서 룰루랄라하면서 다 까먹으면 곤란합니다. 특히 란셀롯의 경우 갑자기 굴러들어온 막대한 재산이, 자기 아내의 아버지가 평생 걸려 모은 것을 제도권 하에서 강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까먹으면 언제고 제시카에게 구박받을 겁니다. (좀 속이 없어보여서 걱정이 됩니다만). 어쨋든 영화는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돌아서면 우리는 또 한 노인의 처절하고도 초라해져버린 인생을, 영민함으로 추켜세워지는 기득권자들의 교활함 등등을 잊어버리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억해줘야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해 줄 사람은 기독교인과 도망간데다 훔쳐간 돈 펑펑 쓴다고 분노했던 그의 딸 혼자라는 사실도요.

 

 


(총 0명 참여)
callyoungsin
명작을 영화로 보는... 기대되는데 아직도 못봤네요   
2008-05-15 13:14
kyikyiyi
책으로 읽었을때와 사뭇 다른면도 있네요   
2008-05-09 14:20
김선영/기독교인들 입장에서는 "너도 안 베풀었으니 자업자득이야" 같은 등가교환의 법칙이 작용한것일지도...라지만 돈뺏겨, 딸뺏겨, 직업에 추억에 종교까지 뺏긴 샤일록이 불쌍하죠;_   
2005-10-31 23:45
최남정/..음 바사니오가 납상자를 고른 센스야말로 이 작품 최고의 명판관인 포샤조차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인지도요   
2005-10-31 23:41
최남정/;_; 그쵸, 샤일록 너무 불쌍해요. 실제로 당시 유태인들은 저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갔다고 하더이다.   
2005-10-31 23:40
김윤전/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긴 저도 원작의 매력을 잘 살린 화면과 여기저기 숨겨진 볼거리와 한번쯤 되새겨보게끔하는 연출이 마음ㅇ ㅔ들었답니다^^   
2005-10-31 23:39
샤일록에게는 자비를 베풀라고 그러면서 결국 샤일록에게 종교마저 빼앗아 가버리고 기독교인들 그들이 더 자비가 없어보였어요..   
2005-10-26 09:12
마지막으로 바사니오가 방탕한 생활로 부채만 가지고 있던 젊은이가 아무런 계기도 없이 납상자를 골랐는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런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금상자를 고를텐데..   
2005-10-24 12:10
샤일록이 괜한 복수심에 그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앞으로의 여생에 기독교인으로써의 인정을 베풀어야 하는데 너무 잔인하더군요..   
2005-10-24 12:09
유라님께 올인!! 두사람은 우정이라기 보다는 동성애에 가깝게 표현되었고, 샤일록이 가졌던 복수심은 너무 잔인하게 무너지는게 정말정말 싫었습니다. 내가 알파치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2005-10-24 12:07
강가로 뛰쳐나와 반지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제시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물에 집중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듯합니다^^   
2005-10-23 20:49
특히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와 닿습니다. 저도 마지막, 동이 터오는 창 밖을 바라보는 안토니오와 안식일날 닫히는 교회 문 앞에 쓸쓸히 서 있는 샤일록,   
2005-10-23 20:46
제가 본 바하고 너무 정확하게 일치하시는군요!!어쩜 이렇게 제 마음을 글로 표현해 놓은 것같은지..보기는 봤으나 표현할 재주가 없는지라, 읽으면서 바로 그거야!!를 연발하고 있었죠   
2005-10-23 20:45
엄머; 900분이나 읽으실 줄이야;o;(그럴 줄 알았으면 좀더 잘 써서 올릴 걸 그랬네요 어흑)   
2005-10-16 05:32
1


베니스의 상인(2004, The Merchant of Venice)
제작사 : Spice Factory Films / 배급사 : 미디어라인 코리아
수입사 : (주)화인픽쳐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loveinveni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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