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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투쟁은 그저 광대놀음일 뿐..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ldk209 2012-08-14 오후 2:12:10 282   [0]

 

권력 투쟁은 그저 광대놀음일 뿐.. ★★★☆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는 스페인 내전 및 프랑코 독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물론 주요한 이야기는 프랑코 독재가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1973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37년 내전 중 파시스트 군에게 광대 복장으로 싸우다 포로가 된 하비에(카를로스 아레세스)의 아버지는 복수를 가슴에 품으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소년 시절 죽음을 접해 슬픈 표정이 배인 하비에는 1973년 ‘슬픈 광대’가 되고자 서커스단을 찾게 되고, 이곳에서 나탈리아(캐롤리나 방)를 보고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서커스단의 폭군으로 군림하고 있는 웃긴 광대 세르지오(안토니오 데 라 토레)의 연인이다. 처음 만남부터 뒤틀린 이들의 운명은 끔찍한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전작을 알지 못했고, 제목의 느낌이 주는 오해로 인해 영화를 보자마자 ‘내가 생각한 영화하고는 완전히 상반된 영화’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마디로 깜놀한 것이다. 전쟁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가 그러하다. 대게의 전쟁 영화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와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의 전쟁 장면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건 거의 혐오에 가까운 느낌. 대단히 기괴하고 피로 얼룩진 이미지들의 연속이다. 사지 절단과 신체 훼손이 좀비 영화에 가까운 수준이다. 전쟁 장면만이 아니라 일단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특징이라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있다. 갈가리 찢겨져 누더기가 된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에 가득 잡히고, 하비에가 자신의 얼굴을 훼손하는 장면에 이르러선 살짝 눈이 감겨질 정도로 그 수위가 상당히 높다. 괜히 스페인의 타란티노라는 얘기가 나온 게 아니었다.

 

두 번째 놀란 건, 스페인 내전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거의 대부분의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들의 특징은 당연하게도 파시스트 군에 대한 비판이 전제된 것이었다. 반대로 공화파에 대한 우호적 시선들. 물론 이 영화도 기본적으로 파시스트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하고는 있지만, 감독은 내전 당시 파시스트 군이나 공화파 군이나 승리를 위해 민중들을 대하는 권력자의 태도는 동일함을, 그리고 민중에게는 어차피 죽음을 부르는 세력임을 출연 배우의 입을 통해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무작정 성인 남자를 끌어내 입대시키는 공화파 군이나 압도적인 무력으로 상대하는 파시스트 군이나 민중들이 공화파에 심정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하더라도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관점.

 

당연히 중요한 건 두 번째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감독의 취향 문제인 것이고,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건 두 번째 문제일 테니깐. 이후 진행되는 영화의 스토리도 두 번째와 연관되어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감독이 철저한 무정부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웃긴 광대인 세르지오가 파시스트를 대표하는 인격체라는 건 너무 뻔해 보인다. 재미없는 농담에도 주위 사람들이 웃어줘야 만족해 하고, 시시때때로 폭력을 통해 질서를 유지해 나가려 한다. 그는 강력한 힘과 경제력(!)으로 서커스단 전체와 특히 나탈리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 강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르지오에 저항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슬픈 광대인 하비에. 하비에는 나탈리아의 희망으로 떠오르지만, 웃긴 광대의 힘에 견줘보면 보잘 것 없이 약하다. 잔인한 폭력에 쓰러진 하비에는 세르지오에 버금가는 잔인한 폭력으로 상대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영화는 세르지오에 저항하는 하비에의 모습을 세르지오와 다를 바 없는 괴물로 그려놓으며, 세르지오는 나중에 하비에를 보고는 ‘나와 똑같아 졌네’라며 비아냥댄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되어야 한다면 왜 괴물과 싸워야 되는가. 나탈리아에게는 세르지오나 하비에나 동일한 괴물인 것이다. 세르지오가 파시스트 인격체라면 당연히 하비에는 그에 반대하는 세력의 인격체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탈리아는 민중 또는 스페인 국민의 인격체라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너무 단순해지기는 해도)

 

그러니깐 이 영화는 모든 스토리나 상황이 대단히 민감한 정치적 해석으로 짜여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탈리아를 민중/스페인 국민으로 치환했을 때에도 쉽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건 나탈리아가 흔히 그려지는 민중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나탈리아는 그저 무력하게 이용당하는 존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스로 운명을 쟁취하기 위해 일어서는 존재도 아니다. 소위 즉자적 민중도 아니고 대자적 민중도 아닌 민중. 그녀는 피해자의 이미지를 가지고는 있지만, 팜므파탈적 매력을 발휘, 세르지오와 하비에의 대립을 유발하기도 하고 생존을 이어가기도 한다.(혀로 세르지오와 하비에를 유혹하는 나탈리아의 모습) 여기엔 잘 먹고 잘 살 수만 있다면 과거 파시스트 세력의 손이라도 들어주는 스페인 국민에 대한 비판이 내재해 있다. 그런데 지금 스페인의 경제 위기를 보자면, 그들은 심지어 능력도 없는 세력인 것이다. (이게 스페인 얘기일까? 한국 얘기일까?)

 

그럼에도 결국 죽어 나가는 건 민중이다. 대체 하비에와 세르지오는 나탈리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대결을 한 것일까? 아니면 소유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일까? 마지막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 두 광대의 모습은 권력 투쟁 그 자체에 대한 허무를 짙게 보여준다. 결국 권력 투쟁은 광대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 파시스트의 인격체인 웃긴 광대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건, 권력이란 대단히 매혹적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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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2010, The Last Circus / Balada triste de tromp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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