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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비니즘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 디스 이즈 잉글랜드
ldk209 2009-08-26 오후 3:25:58 1100   [6]
쇼비니즘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 ★★★★


만약 영화의 제목이 <이것이 영국이다>라고 하면 ‘이거 무슨 영국 관광홍보처에서 제작한 영화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이다>라는 영화 제목이 있다고 해도 그랬을 것이다. 이건 한국에서 이런 식의 강렬한 반어적 제목을 붙일 감독이 있을까 하는 회의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잉글랜드 홍보 영화도 아니고,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영화도 아니다. 오히려 영국으로선 감추고 싶을지도 모를 치부를 과감히 파헤치는 영화이고, 그럼에도 2006년 영국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며, 특히 우리에게 곧 닥칠지도 모를(어쩌면 이미 닥치고 있는) 쇼비니즘의 광풍을 사전 경고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1980년대 초반의 영국을 상징하는 인물 - 대처 수상, 다이애나 비 등 - 과 장면들 - 포클랜드 전쟁 등 - 그리고 노래가 배경으로 흐르며 시작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가 지난 후 주인공 숀(토마스 터구스)이 등장해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가 놀림을 당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포틀랜드 전쟁에서 전사하고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숀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받으며 외롭게 생활하고 있다. 머리를 박박 민 스킨헤드인 우디(조셉 길건)는 외로운 숀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숀은 곧 이들 스킨헤드족과 어울리며 웃음을 되찾는다. 그러나 감옥에서 출소한 콤보(스테판 그레이엄)가 우디를 찾아오면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한다. 콤보는 멤버들에게 자신과 함께 할 것을 강요하고, 숀은 우디와 헤어져 콤보와 함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


스킨헤드하면 주로 네오 나치라든가 광신적 애국주의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감독의 어린 시절에 겪은 실화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다는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보면 초기 스킨헤드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닌 플라워 무브먼트와 동일한 기반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흑인 스킨헤드) 그저 젊음의 반항을 빡빡 깍은 머리로 외연화시켜내고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는 자기들만의 전쟁놀이를 즐기는 일종의 반기성세대, 반문화적 그룹인 셈이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영국 경제가 붕괴하면서 실업자가 급증하자 스킨헤드족의 일부가 국민전선 등의 극우파와 결합하면서 반파키스탄(반유색인종) 내지는 백인우월주의 조직으로 급선회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노동계급 출신이다. 이 지점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쇼비니즘 또는 광신적 민족주의 또는 극단적 애국주의 또는 인종차별주의, 그 어떤 용어를 선택하더라도 이민족에 대한 배타, 배제의 논리는 사회적 약자의 틈을 쉽게 파고든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가 된다는 것, 그것도 복지제도가 부실한 사회에서의 그것은 건강한 삶의 유지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강력한 분노의 표출이 뒤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약자, 그 중에서 실업자라면 그들의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할 것인가? 자본주의 제도 그 자체, 내지는 국가경제의 책임자, 그게 아니라면 자신을 해고한 자본가? 그런데 <디스 이즈 잉글랜드>의 콤보를 중심으로 한 스킨헤드족 또는 정치 집단으로서의 국민전선은 파키스탄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 파키스탄인이 들어옴으로서 자신들이 직업을 잃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영국에서 파키스탄인은 사회적 약자다.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약자가 대립하는 형국이 바로 1980년대 초반의 영국이고, 어쩌면 2009년의 한국이다. 뻔하게도 사회적 약자의 대립을 은밀히 부추기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 세력이 추구하는 건, 사회적 약자의 분노가 자본가, 국가권력, 자본주의 그 자체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고 방해하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손쉬운 먹잇감(이민자, 불법체류자)을 던져준다. ‘이민자 또는 불법체류자로 인해 당신이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이 땅의 순결한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있으며, 마약 등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즉, 쇼비니즘의 발호는 자신들을 피해자(실업, 성폭행, 살인 등 범죄)로 포장하고 민족주의의 탈을 두른 채 사회적 약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편견과 분노의 감정을 흩뿌린다.


그런데, 한국의 다문화는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일까? 아니면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것일까? 어느 한 쪽이 100%이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내의 필요에 의해 다문화가 만들어진 거라는 건 너무 당연하다. 당장 시골에 가보면 몇 집 걸러 한 명씩 외국인 며느리들이 있다. 그래서 일각에선 한국에서 가장 다문화되고, 세계화된 곳이 바로 농촌지역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농촌 총각들이 결혼하기 위해 외국인 여성들이 필요했다면, 공업지대의 외국인들 역시 산업의 유지를 위해 필요했다는 것, 그러니깐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는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인들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우리의 이웃이 된 존재들이다. <반두비>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당국이 불체자 단속을 원칙적으로 강력하게 장시간 밀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 역시 우리 산업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폭력적인 남성성에 대한 해부다. 아버지가 전쟁에서 사망한 어린 숀에게 두 명의 유사 아버지가 나타난다. 한 명은 친절하고 여성성이 가미된 우디이고, 다른 한 명은 거칠고 남성적인 콤보이다. 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 앞에 당당한 남자임을 증명하라는 콤보의 연설은 어린 숀의 마음을 흔들고, 그는 그 동안 자신을 보살펴줬던 우디를 떠나 콤보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다. 사실 초중반부까지 <디스 이즈 잉글랜드>는 한 소년의 성장담을 밝고 경쾌하게 그려내는 데 치중한다. 대게의 비슷한 영화들이 떠올려질 만큼 전형적인 구성을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콤보가 등장하면서부터, 정확하게는 숀이 콤보 진영에 합류하면서부터 영화적 분위기는 급변한다.


숀은 콤보와 함께 그게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반은 장난으로 반은 무리와 함께 어울리기 위해 이웃 파키스탄 상점 아저씨를 공격하고, 거리의 파키스탄 아이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폭력은 어느 정도는 잉글랜드 애국주의의 기치 하에, 어느 정도는 남성성의 과시라는 명분 하에 거행된다. 그 끝에 숀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것들이 폭력으로 파괴되고 무너지는 장면이며, 애국주의,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십자가 깃발을 내던지는 것으로 숀은 아픈 성장의 골을 헤쳐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하나 더 집고 넘어가야 될 게 콤보란 인간의 정체성이다. 그가 진정 백인우월주의자요, 인종차별주의자일까?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어쩌면 그는 단지 사랑에 상처 입은 가련한 영혼일지도 모른다. 그가 밀크(앤드류 심)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도 인종차별주의의 발로가 아닌 박탈감에서 시작된 순간적인 폭력임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러니깐 콤보의 인종차별주의, 광신적 애국주의도 자신의 박탈감이 대상을 잘못 찾아 헤매는 혼돈의 한 표현일 뿐인 것이다. 특정 정치세력이 그걸 증폭하고 이용한다는 건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숀역을 맡은 토마스 터구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빼놓고 이 영화를 얘기하기 힘들 것 같다. <디스 이즈 잉글랜드>를 영국 사회의 한 단면을 쪼개어 보여준다는 사회파 영화로서의 성격을 배제하고서도 이 영화가 반짝반짝 빛나도록 만든 건 무엇보다 토마스 터구스의 연기일 것이며, 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는 연기 초짜에게 마음껏 날개짓을 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준 셰인 메도우스 감독의 역량 또한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다. 토마스 터구스가 계속 연기를 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 녀석(!)이 출연할 두 번째 영화가 기다려진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22 13:52
shelby8318
제목 그대로 영국에 대해서 그린 영화인 듯.   
2009-09-15 12:36
jhee65
쉬운 영화가 아닌가 보네요   
2009-08-26 20:57
boksh2
잘봤음다   
2009-08-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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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잉글랜드(2006, This Is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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