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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매혹시키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ldk209 2008-07-17 오후 2:16:46 24619   [52]
눈을 매혹시키지만,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대학 다닐 때, 술자리에서 가끔 부르던 노래가 있다. ‘북만주 말달리던 고구려 여인아...’ 이렇게 시작되는 노래였는데, 우리에게 만주란 말을 달리는 행위와 연관이 깊은 것 같다. 심지어 만주의 개장수들도 말을 타고 다녔을 것이다. 예전에 한 유력 대통령 후보는 ‘발해 기마족’ 어쩌고 하며 만주에 대한 기상을 자신의 구호로 표방하기도 했었다. 만주에 대한 우리의 지향은 어쩌면 반도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히기 전에 우리 땅이었던 넓은 만주 벌판에 대한 회귀 본능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어릴 적 무수히 봤던 서부 영화들, 나이가 들고 나서야 전통 서부극에 나온 좋은 보안관과 나쁜 인디언의 관계가 사실은 전복되었다는 것과 서부극이 모두 미국 영화도 아니며 심지어 미국에서 촬영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 또는 마카로니 웨스턴. 그렇다면 만주에서 찍는 서부극이 불가능할리도 없다. 오히려 인디언, 보안관과 같은 존재만 제거한다면 1930~40년대 만주는 미국 서부 시대와 너무도 동일하다. 많은 집단들이 통제되지 않고 욕망에 이끌려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던 그 무정부주의적 동거의 시대.

 

제목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영어 제목 : The Good, The Bad, The Ugly)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김지운 감독은 <석양의 무법자>를 보고 추한 놈(The Ugly)의 시각에서 영화를 재구성하면 어떨까 해서 <놈놈놈>을 구상했다고 하며, 처음부터 이상한 놈에 송강호는 고정이었고, 이후에 이병헌과 정우성이라는 환상의 트리오로 캐스팅이 확대되었다.

 

때는 1930년대 일본 식민 지배 하의 만주. 만주는 일본군, 만주군, 독립군, 마적단, 그리고 살기 위해 국경을 넘은 많은 조선 민중들이 잡초처럼 살아가던 공간이었다. 이야기의 도화선은 친일파 조선인 부호와 대한독립군이 동시에 갖고 싶어 하는 정체불명의 지도.(이 지도는 일종의 맥거핀이다. 누구도 이 지도의 보물을 차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지도 없이도 그 장소에 잘 찾아온다) 각기 의뢰를 받은 나쁜 놈 창이(이병헌)와 현상금 사냥꾼 좋은 놈 도원(정우성)은 동시에 표적에 당도하지만, 지도는 영문 모르는 열차강도 이상한 놈 태구(송강호) 손에 떨어진다. 물욕으로 시작된 추격전은 해묵은 원한이 드러나고 일본군까지 가세하며 눈덩이마냥 커진다.

 

영화는 주요 인물 세 명을 각각의 캐릭터에 적합한 방식으로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이상한 새가 기묘하게 날아서 화면을 지나가면 나쁜 새(까마귀)가 죽은 시체를 뜯어 먹고, 좋은 새(독수리)가 공중에서 날아와 까마귀를 공격한다. 영화는 시종일관 화려하면서 속도감 넘치는 화면을 제공한다. 특히 주요한 액션씬 3개는 확실히 엄청난 물량의 투입과 배우, 스텝들의 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시각적 쾌감은 이 영화가 성취한 최고의 경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각적 쾌감은 주로는 좋은 놈에게서 나온다. 열차 지붕을 뛰어다니거나 줄 하나에 의지해 붕붕 날아다니며 공중에서 적을 상대한다. 그리고 말을 달리며 장총을 돌려 상대를 쓰러트리는 장면 등은 정우성의 외모와 결부되면서 정말 한 장의 그림으로 남는다.(그러나 입만 열면 환상이 깨진다. 그래서일까. 정우성의 대사는 의도적으로 제한된 듯하다) 시각적 쾌감을 준다는 것은 이 영화가 오락 영화로서 대단한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을 의미하며, 꽤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짧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매혹시킬지언정 마음까지 움직이는 데에는 힘에 부친다. 왜일까?

 

첫째, 만주 벌판이 주는 광활한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가 서부극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단지 총싸움이 재밌기 때문만은 아니며, 광활한 서부가 주는 스산한 정서, 황폐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놈놈놈>은 언제나 화면 전체가 가득하다. 도대체 빈 공간, 여백을 찾을 수가 없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체적인 조망도 힘들뿐더러, 누가 창이 편이고, 누가 귀시장 패거리들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눈이 휙휙 돌아가는 싸움 장면만 보일 뿐이다. <황야의 무법자>의 마지막을 오마주한 <놈놈놈>의 마지막 장면도 셋을 한꺼번에 담고자 했기 때문인지 간격이 너무 촘촘하다. 그래서 답답하다.

 

둘째, 이 영화엔 여기저기 의문 부호가 난무한다.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 치지만, 끝끝내 좋은 놈의 의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단순히 돈 때문이라기엔 도원의 집착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 처음 ‘창이’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가 보였던 묘한 표정의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제일 큰돈이 될 지명수배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목숨을 걸고 일본군 속을 질주해 들어가고 죽을지도 모를 삼각 대결에 응했다고 보기엔 미심쩍다. 캐릭터상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태구의 친구인 만길(류승수)이 창이에게 화려한 말빨이 아닌 칼로 맞선다는 것도 캐릭터의 부조화다. 물론 하나의 캐릭터가 너무 일목요연하게 논리적으로 일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변화엔 변화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쁜 놈인 창이가 태구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그러나 도원의 행동도, 만길의 만용도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창이가 친일파 조선인 부호를 죽이는 장면도 영화만 보면 도대체 왜 죽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극장에 비치해 놓은 영화 팸플릿에 보면 친일파 부호에 대해 ‘창이를 죽이려다 오히려 자신이 죽는다’라고 해 놓았다. 즉, 창이가 꺼내든 편지엔 아마도 대부호가 창이를 죽이라고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있을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건 좋지만 여기저기 의문투성이를 남겨 놓는 것도 예술영화가 아닌 오락영화에선 시나리오의 부실, 내러티브의 부실로 여겨질 뿐이다. 거기에 마지막 대평원의 추격 장면이 갑자기 태구의 단독 질주씬으로 건너 뛴 것은 시간의 문제 내지는 편집의 문제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중간도 아닌 클라이맥스에서 그런 건너뜀은 고양되던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게 했다.

 

셋째, 이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인물들을 너무 소모적으로 활용한다. 주인공인 세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꽤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등장과 퇴장에 아무런 고심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만길이라든가 창이 패거리의 핵심 인물들이 사라지는 과정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일회용 컵을 버리듯 그렇게 버려진다. 엄지원이나 이청아는 대체 왜 이런 캐릭터가 필요했을지 조차 의문인 인물들이다. 단지 도원의 배경을 만들기 위한 정도의 목적이라고 봐진다. 혹시나 엄지원이 독립군을 동원, 대포를 쏴대는 일본군을 급습함으로서 주요한 인물들이 격렬한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을 마련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어쨌거나 그 부분은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마지막 추격전 과정에서 빠지는 마적단도 영화 내내 그들이 차지했던 비중으로 보면 허무할 정도의 마지막이다. 최소한 옆으로 빠진 마적단이 언덕 위에서 추격전을 바라보며 한마디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니들끼리 잘 해봐라. 우리는 일단 살련다’ 뭐 이런 식으로) 창이의 부하가 창이에게 태구와의 관계를 물어보다가 죽는 장면은 인물을 소모적으로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 사례라 할만하다. 이 에피소드가 필요했던 건 창이가 부하들에게도 아주 냉정하며 태구와의 관계에 콤플렉스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물어보는 말투라든가 내용은 평소 창이의 악함을 알고 있을 부하의 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내가 창이 입장이라도 얄미워서 한 대 패주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약 올리는 듯한 대화.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에피소드를 위해 죽는 부하.

 

이렇게 정리하다 보니깐, 마치 이 영화에 단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아쉬움도 크고, 단점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여러 단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분명 <놈놈놈>은 오락영화로서 기대감을 충족시켜 준다. 한 인터뷰에서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을 보고 관객이 시각적 만족을 느꼈으면 한다고 했는데, 이런 의도라면 영화는 분명 목적에 120% 초과 달성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만주 벌판의 추격전은 <황야의 무법자>를 연상시키는 음악에 말발굽 소리, 오토바이 엔진 소리, 일본군이 쏘는 포탄 소리가 뒤엉키면서 근래 보기 드문 시각적 쾌감을 만끾할 수 있다. 거기에 세 명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연기는 영화를 끌고 가는 핵심 축이다. 정우성의 타고난 외모는 그렇다 치고, 소름끼치는 악역으로 변신한 이병헌과 내내 웃음과 함께 잡초처럼 질긴 조선인의 근성을 보여준 송강호. 언제 이들의 조화를 다시 볼 수 있겠는가. 특히 만주 벌판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래가 맴돈다. ‘북만주 말달리던 고구려 여인아......’


(총 0명 참여)
icextra
영상은 볼만하네요   
2008-07-29 03:56
neveri2727
지루한감이 없지 않았지만..그래도 극중 캐릭터들이 넘 맘에 들더군요..저도 돈주고 봤지만..아깝단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2008-07-28 11:31
cool3534
그래도...아쉬운 구석이 없진 않지만...돈내고 보기에 아깝진 않았던 영화 같습니다..   
2008-07-24 22:55
ssungkeun
난 왜 영화볼때 단순 비쥬얼적인 것에 끌리는 것을까...
남자라서 그런가   
2008-07-20 11:13
kndangbaby
와... 정말 분석잘해놓으셨네요.. 세번째 부분, 뭔가 아쉬운구석이 없지 않았는데 저거때문이였던것 같네요. 잘보고 갑니다~   
2008-07-20 02:12
gtgta
둘째 셋째 부분에 공감합니다 잘 봤습니다.   
2008-07-19 09:10
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The Good, The Bad, The We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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