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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여우 여우비 천년여우 여우비
hongwar 2007-10-08 오후 8:49:18 1483   [2]
흥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한국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나날이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참 뿌듯한 일이다. 늘 개봉할 때마다 애니메이션, 게다가 국산 애니메이션이라는 꼬리표때문에 관객들의 폭넓은 신망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국산 애니메이션들은 매번 나올 때마다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해왔다. <마리 이야기>, <오세암>, <원더풀 데이즈>, <아치와 씨팍>에 이르기까지, 평론가들의 몇몇 쓴소리도 있었지만 그래도 분명 퇴보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보여준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 감독이었기에 그의 새로운 작품인 <천년여우 여우비>도 매우 기대가 컸다. 파스텔톤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던 전작과는 뭔가 다른, 기존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에 유쾌함까지 더한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운좋게도 확실한 개봉 시점도 정해지지 않은 시기에 모니터링 시사회로 이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번에도 이성강 감독 뭔가 해낸 건 분명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우리나라엔 수많은 구미호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인간이 되려 한다는 이유로 사냥꾼들로부터 마구잡이로 사냥 당한다. 그 과정에서 용케 살아남은 한 아기 구미호(정확하게 말하면 꼬리는 다섯개인 "오미호"다)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요요"들에 의해 발견되고, 외계인들은 지구에 정착하며 이 구미호를 키운다. 그로부터 100년 뒤, 아기였던 구미호 여우비(손예진)는 이제 한창 틱틱거릴 사춘기에 입문했다.(이쪽 세계에선 1000살이 일반적인 수명이므로 100살은 아직 머리에 피도 안마른 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살림꾼이 다 된 외계인들과 숲속에서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이 산골에 수련회를 하러 학생들이 찾아온다. 노총각 인솔교사 강선생(공형진)과 더불어 온 이 아이들은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해 외딴 산골에 따로 합숙 수련회를 온 것. 한편, 우비와 함께 살던 외계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우주선을 완성하고 돌아갈 채비를 하지만 유난히 말썽을 많이 부리는 "말썽요요"의 실수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썽요는 이에 상심해 인간 아이들이 있는 수련장으로 도망치고 만다. 결국 변장기술이 뛰어난 우비가 말썽요를 찾아나서고, 그러는 과정에서 우비는 새로 들어온 수련생으로 위장해 수련회에 끼어든다. 역시나 사람같지 않은 비범한 면모를 보이며 수련회 생활을 하던 중 그곳에 있는 내성적이지만 개그맨이 꿈인 남자 아이 황금이(류덕환)와 함께 애틋한 우정을 키워나가게 된다. 한편, 가업으로 물려받아 구미호 박멸에 온 정성을 쏟아부어 온 노인이 수련장에 나타나서는 구미호가 있는 것 같다면서 찾아나서기 시작하고, 우비의 정체는 조금씩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전작 <마리 이야기>를 통해 마치 투명 수채화 한 폭에 그대로 숨결을 불어넣은 듯 깔끔하기 그지없는 색감과 질감을 보여줬던 이성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놀랄 만한 영상을 구현해냈다. 일단 이번 <천년여우 여우비>의 영상은 전작 <마리 이야기>보다는 그 질감이 보다 강렬하다. 캐릭터나 배경이 그려진 선이 진하고 뚜렷해서 순박하고 투박하기도 한 시골의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는 물론 현실 세계마저도 파스텔톤 색채에 힘입어 환상적으로 느껴졌던 전작과는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어둡고 습한 곳, 먼지 쌓이고 그림자진 곳의 색채도 뚜렷하게 표현되어서 보다 현실과 가까워졌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 점에서 흔히 보아온 2D 애니메이션의 모양새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도 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절대 보통 2D 애니메이션을 따라가고 있지 않기도 하다. 2D 배경과 캐릭터 속에서 유연하게 움직이는 3D로 이루어진 비주얼은 그 자연스런 움직임과 속도감으로 인해 관객을 효과적으로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우비의 친구가 되어주는 세숫대야 요정(?)이 나타나는 순간의 가을나무의 풍성한 정경, 우비가 그림자 탐정을 쫓아가는 장면에서 바닥과 벽, 천장까지 훌으며 따라가는 속도감 넘치는 장면 등 그저 그런 2D 애니메이션이라고 치부하기엔 기술적으로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3D스러운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놀라움을 안겨준다. 거기다 이들 장면들도 3D라고 해서 컴퓨터 그래픽 특유의 인위적이고 차가운 느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서 얘기한 뚜렷하고 인간미 있는 색감과 질감과 어우러져 있어 감성을 자극하는 면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특하고 다채로운 캐릭터의 등장도 눈여겨 볼 만한 요소이다. 구미호 소녀가 100살을 먹게 되면서 사춘기에 접어들었다는 설정부터가 독특하다. 여기 등장하는 구미호라는 동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람 간에 미친", "음흉하고 섬뜩한"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되기 위해선 영혼을 뺏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현재 살아남은 유일한 구미호인 우비만 놓고 보면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유쾌발랄한 보통 소녀와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구미호라는 캐릭터를 대다수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재활용하지 않고 평범한 인간처럼 부담없이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비을 어렸을 적부터 키워 온 외계인 "요요"들도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외계인이라면서도 흔히 생각하기 쉬운 차갑고 사이버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혼동하듯 캐피바라와 같은 포유류 동물처럼 순박하고 정겹게 생겨서 거리감이 훨씬 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거기에 대장요요, 말썽요요 등 각각의 개성도 잘 살아 있어서 양념과 같은 재미를 주었다. 그 외에도 과묵한 성격임에도 코미디언이 꿈이라며 어느 순간 발랄하게 "스핑크스 송"을 부르는 소년 황금이, 만질 수 있는 형체가 없이 언제나 그림자로서 존재하는 그림자 탐정, 아이들의 교육에 충실한 건지 아님 잿밥에 관심 있는건지 알 수 없는 노총각 교사 강선생 등 여러 캐릭터들의 독특한 개성이 살아 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 된 듯 싶다.

 

애니메이션으로선 없어서는 안될 상상력이라는 요소도 이 영화에서는 기가 막힌 수준으로 펼쳐졌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미호라는 동물에 대한 개념과 그들의 생리를 아예 바꿔버린 것부터 시작해서, 구미호를 외계인들이 기른다는 동서양 퓨전적인 설정, 생명을 잃은 영혼이 머무는 중간계인 카나바, 후반부 연못 아래 펼쳐지는 또 다른 삶과 죽음의 세계의 풍경 등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이 이렇게도 무한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2D와 3D가 어우러진 서정적이면서도 박진감 있는 비주얼, 그리고 꿈을 날아다니는 듯한 양방언 씨의 몽환적인 음악과 더불어 이런 상상 속 세계도 더욱 잘 살아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우비 역을 맡은 손예진의 목소리 연기는 생각보다 꽤 자연스러웠다. 예의 청순가련형 이미지에서 벗어나 활달한 성격의 사춘기 소녀로서의 남자처럼 털털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를 꾸밈없이 들려주었다. 내성적이지만 사려깊은 소년 황금이 역의 류덕환도 예의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목소리 톤이 잘 어울렸고, 강선생 역의 공형진 역시 예의 능글맞고 유머러스한 이미지와 목소리가 강선생과 딱 맞아떨어진 듯 싶다. 간혹 스타 배우들의 목소리 캐스팅에 있어서 논란이 있어오기도 했지만, 이렇게 차츰 역할에 맞는 배우들을 적절히 캐스팅하고, 배우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빌려주는 걸 넘어서 캐릭터에 최대한 들어맞게 목소리를 변형할 수만 있다면 그런 논란도 점점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 면에서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구미호 소녀가 인간인 척 캠프에 들어가 좌충우돌을 겪고, 그 속에서 애틋한 감정을 느끼다가 위기에 빠져들고, 그 위기 속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기까지의 모험이 비교적 탄탄한 스토리 라인 속에 전개한다. 그동안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스토리가 부실하다"는 뻔하디 뻔한 평가를 늘 받아온 걸 생각하면, 이 정도의 유쾌발랄하면서도 감성적인 스토리 라인은 칭찬해 줄 만한 성과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후반부에 가서 우비와 황금이 사이의 감정이 갑자기 발전된다거나 하는 지적사항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감성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우비의 나이 때 느낄 그런 감정과 같다. 아직 진득허니 가라앉지 못한 채 들뜬 분위기에서 느끼는 설렘이라고나 할까. 밝고 활달한 캐릭터들과 아름답고 서정적이면서 박진감도 두루 갖춘 비주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춘기 구미호 소녀의 모험담을 지나고 나니 어느덧 나의 마음도 싱숭생숭한 사춘기 시절의 설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하지만 대책없이 휘몰아치는 감정이 아니라 어디든 다니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그런 들뜬 마음 말이다. 따뜻하고 친밀한 느낌의 영상미와 더불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비와 같은 사춘기 소녀가 지을 것만 같은 즐겁고 애띤 미소를 늘 머금고 있다. 놀라운 상상력과 이를 받쳐주는 놀라운 영상 기술의 발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설렘의 감정까지. 이 영화로 인해 한국 애니메이션은 또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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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쿤요   
2010-03-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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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여우 여우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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