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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걸고 열연한 한 남자의 영화같은 삶 손님은 왕이다
kharismania 2006-02-11 오전 1:54:37 908   [3]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각자 주연배우를 맡아서 세상이라는 세트안에서 매일같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관객은 없다. 자신스스로만이 보고 평가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고독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시나리오도 없다. 각본도 없고 카메라도 없다. 단지 본인만이 존재할 뿐..

 

 손님은 왕이다. 어떤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던 간에 장사를 한다는 가게의 우선 조건은 친절함이 아닐까. 어쨌든 손님이 왕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주인과 손님이라는 상호관계하에서의 관계적 성립의 우위는 주인보다는 손님이 차지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주인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손님에게도 한없이 친절할 수 있을까. 그것은 주인만이 지니는 비애이자 고독한 고민일 수 밖에.

 

 이 영화는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교차와 함께 출발하는 시작씬에서부터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준다. 흑백으로 출발하는 영화의 자극적인 시작은 영화에 대한 낯선 모호함이 떠돌던 객석에 묘한 기대감으로 환기되며 관객에게 영화로의 몰입을 종용한다.

 

 일단 이영화는 미장셴이 탄탄하다.

 

 우선 색감에서 영화의 깔끔한 세련미가 느껴진다. 흑백의 콘트라스트(contrast), 즉 명도의 극단적인 대비감을 통한 보색 효과가 드러내는 깔끔하면서도 위태로워 보이는 단조로움이 이 영화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흑과 백은 가장 극단적인 순수를 지닌 색이면서도 가장 더럽혀지기 쉬운 색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의도적인 차용이 명백한 의도로 다가온다. 특히 영화의 전반적인 축을 담당하는 두 인물의 대비적인 구도를 색감의 이미지로 대변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4명의 주인공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순한 양 같은 어리버리한 이발사 안창진(성지루 역)과 그의 요부 마누라 전연옥(성현아 역),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손님 김양길(명계남 역), 흥신소의 교활한 해결사 이장길(이선균 역)까지 이 4명의 캐릭터가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영화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캐릭터의 설정과 배우들의 연기로 다진 설정의 완성은 영화의 가장 큰 흥미요소로 자리잡는다. 이 4명의 다부진 캐릭터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이자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승화된다.

 

 또한 영화에서 사용되는 배경음과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차용되는 음악들은 다채로우면서도 영화의 장면에서 우러나는 분위기를 경이롭게 대변하는 섬세함이다. 영화의 투박함과 무미건조함을 한층 더 여유롭고 부드럽게 다듬어주는 클래식과 탱고의 선율이 인상깊은 영화의 영상위로 윤활유처럼 스며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면은 이야기 그 자체에 있다. 사실 이 영화의 기본 소재는 단순하다. 하지만 그러한 단순함에서 뽑아내는 내러티브의 다채로운 발상은 가히 대단하다. 시작부터 관객에게 의문을 심어놓고 출발하는 영화는 시종일관 그러한 모호함을 유지하며 관객에게 적당한 긴장감과 기대감을 양손에 쥐어준다. 허나 이야기는 뾰족하지 않고 나름대로 둥근 여유를 머금고 있어서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관객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안도감있게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배려가 영화에서 느껴진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상당히 독특하다. 특히나 영화의 초반에서 중반으로 접어들며 보여지는 무성영화 방식의 연출은 상당히 유쾌하면서도 흥미로운 방식의 화법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메라의 일반적인 시선의 탈피에서 독특한 질감의 영상미가 형성된다. 특히나 초반과 중후반에 등장하는 양길의 눈에 비친 면도날의 자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밖에도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독특한 시선이 보여주는 구도적 특징은 또하나의 흥미거리로 여겨진다.

 

 그리고 시작의 사연으로 끝맺음할 것 같던 이야기의 뉘앙스는 영화의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로 옷을 갈아입어버린다. 단순하게 영화에서 보여주던 일련의 잘 짜여진 허구성위에 현실을 끼워넣고 오히려 그러한 현실이 허구를 잠식해버리는 사태의 발생에서 혼란보다는 경이로운 탄성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영화의 수많은 장점들은 명계남이라는 배우의 부재라는 가정위에서는 아무런 구실도 못한다. 사실 이 영화는 마치 명계남이라는 배우의 연기인생에 대한 헌사와도 같다.

 

 이 영화는 애초에 명계남이라는 배우를 선상에 올려놓고 제작된 영화다. 오기현 감독이 고등학교 시절에 파트리크 쥐스킨트 원작 소설인 '콘트라베이스'를 각색하여 모노드라마로 연출한 명계남의 공연을 보고 감명받아서 수차례나 더 봤다는 일화만 보더라도 감독이 애초에 이 영화를 만든 의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명계남의 실명을 거론하진 않지만 영화의 후반부의 내용에서 노골적으로 그의 삶을 조명하는 것은 그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이다. 아니, 이미 그때는 단서라고 말할 수 없는 확신이다.

 

 하지만 필자 본인은 이 영화를 명계남이라는 한 배우에 대한 헌사를 뛰어넘은 빛나는 조연들에 대한 헌사라고 보고 싶다. 사실 일반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할때 주연배우들의 이름값에 투자가치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주연보다도 영화를 맛깔나게 만드는 조연들이 눈에 띄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조연들은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밝아지는 불빛에 흩어지는 어둠의 잔상처럼 사라지곤 한다. 이 영화는 그러한 조연들에 대한 헌사다. 남들에게는 3류 배우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한컷에 피나는 연습으로 1류를 꿈꾸는 그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 자체는 명계남이라는 배우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는 이들을 반박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되어준다. 영화를 본 이들은 100%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것. 완벽하게 김양길을 연기하는 명배우의 인생을 건 연기는 정말이지 가슴속에 앙금처럼 남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연기를 보여주는 명계남이라는 배우의 연기는 숙연한 경외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4명의 독창적인 캐릭터에서도 그만의 강한 영역을 보여주는 것은 명계남이라는 배우가 지니는 연기의 아우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완벽하다. 후반부에서 살짝 구조적인 내러티브의 느슨함은 느껴지지만 이 정도 영화라면 최근 몇년간 국내 영화에서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영화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여겨진다.

 

 또한 스릴러의 긴장감과 느와르의 비정성, 해학적인 블랙코미디를 두루 갖춘 영화의 다양한 매력도 관객에게 다채로운 재미를 줄 법 하다.

 

 물론 대중적으로 대흥행을 할만한 친절한 영화는 아니라더라도 이 영화를 찾은 관객의 뇌리에 상당한 인상을 심어줄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효과를 극한으로 끌어낸 수작이 아닐까.

 

 한사람의 일생이 영화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일생이 빛났다는 것 아닐까.

 

 저 넓은 우주에는 많은 별들이 있다. 사실 우리는 그많은 별들을 모두 알아주지는 않는다. 다만 수많은 별들이 있을 뿐. 하지만 별은 빛이 나는 스스로의 존재감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이 넓은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많은 사람들 중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재감만으로도 자기 스스로에게 큰 가치가 된다. 나의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관객없는 혼자만의 공연이라 해도 나 자신의 삶은 나에겐 걸작같은 영화가 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우리자신 스스로 간과하는 삶의 가치의 무게를 말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의 무게는 스스로 책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3류같은 삶도 자신의 인생안에서는 주인공이다. 적어도 주인공이라면 인생을 걸고 열연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신만의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 것인지 졸작으로 만들 것인지는 자신의 재량일테니까.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 스스로라는 것을 영화는 또렷한 어조로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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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2006, The Customer Is Always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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