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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사망을 기념하며~~~ 칠레 전투 1부
ldk209 2006-12-11 오후 1:58:10 702   [11]

[칠레전투 제1부 : 부르주아지의 봉기] 민중연합과 부르주아지의 혼란 책동

(원제 : The Battle Of Chile Part 1 / La batalla De Chile : La Insurreccion De La Burquesia)


살라도르 아옌데 대통령. 칠레대학 의학부 재학시절부터 사회·정치 운동에 가담, 1933년 칠레사회당 창당에 관여하였으며, 사회당 서기장, 하원의원, 상원의원 등을 거쳐 1970년 좌파단일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돼, 남미 최초의 합법적 사회주의 정권 탄생을 주도했다. 그러나 아옌데 정부가 출범하자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경제 재제로 칠레를 압박하고, 비공식적으로는 CIA 공작을 통해 아옌데 정부의 전복을 꾀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민중과 함께 칠레를 이끌던 아옌데 대통령은 1973년 6월 29일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맞서 대통령궁을 사수하다가 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사살된다.(일부에선 자살했다고도 나오기 때문에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에서는 권총으로 군과 맞서다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원제가 [칠레전투 : 비무장 민중의 투쟁]인 이 다큐멘터리는 아옌데 정부 시기 촬영된 기록(아마 TV 채널 13)을 중심으로 생전 아옌데 대통령의 열정적 연설 장면과 민중연합 정부를 수호하려는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 정부에 대한 부르주아지들의 적개심과 그들이 어떻게 국민이 선출한 정부를 흔들고 무너트리게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 CIA의 비열한 공작을 담고 있다.

1976년 독일 라이프치히 DOK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전혀 없는, 5명의 진보적인 젊은 영화인들이 제작하였다. 16mm 에클레어(Eclair) 카메라와 나그라(Nagra) 녹음기 한 대, 흑백 코닥 필름으로 민중과 반동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이 첨예하던 1973년의 칠레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로 촬영은 중단되고, 필름과 녹음테이프는 6개월에 걸쳐 외국에 밀반출되었다. 쿠바의 영화예술산업원(ICAIC)에서 6년 동안 3부작으로 편집, 완성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1998년 인권운동사랑방 주최,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제1부, 부르주아지의 봉기에는 매판 세력과 합세한 중·상류층의 대중 봉기와,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취했던 정부와 좌파의 행동을 조명하였다. 특히 우익이 대중 매체를 이용하고 부르주아지와 군부의 저항을 선동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는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일 수 있는 쿠데타 군의 모네다 궁(대통령궁) 폭격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다. 군의 폭격에 무너지는 대통령 궁의 첨탑들, 무너지는 민중권력. 그러면서 영화는 6개월 전의 총선 장면으로 돌아간다.

아옌데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초의 선거에서 기독교민주당과 국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연합은 경제 침체에 대한 책임(경제 제재를 주도한 미국의 책임?)과 사회혼란(사실은 보수파가 부추긴), 그리고 자유와 민주 회복을 주장하며 아옌데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2/3 이상의 의석 확보를 자신한다. 부르주아지들은 선거로 뺏긴 권력을 선거로 되찾는 데에 주력한다. 이들의 인터뷰 내용은 정부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다.

보수파가 장악한 언론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보수파의 압승을 보도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중연합이 40%가 넘는 득표를 함으로서 오히려 대통령 선거 때보다 높아진 득표율을 보인다. 선거를 자신하던 부르주아지들은 조작이 있었다며 격렬히 저항하지만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한 채 새로운 국회가 문을 연다.

2/3이상의 국회의석 확보로 대통령을 탄핵하려던 부르주아지들의 계획은 어긋났지만,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한 보수파는 대통령을 무력화시킨다. 장관의 평균 임기는 한 달을 넘지 못하며, 심지어 장관 전원에 대한 해임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또한 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법률안은 국회통과가 거부되는 반면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법안만을 통과시킨다. 대통령의 각종 권한을 제한했으며, 행정조직 개편도 거부한다. 이쯤 되면 사실상 부르주아지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도 부르주아지들은 만족할 수 없다.

정책 차이 정도로 쿠데타를 할 만한 명분을 얻기는 곤란하므로 이들은 의도적으로 사회 혼란을 일으킨다. 부르주아지들은 생필품에 대한 매점매석을 통해 경제적 혼란을 부추긴다. 정부는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강력한 조사와 처벌을 시도하는데, 보수 야당은 이를 주도하는 장관을 공격하고 해임시킨다. 이와 함께 나치를 연상시키는 완장과 헬멧 등을 착용한 청년 파시스트 단체 '조국과 자유'의 거리 시위를 통해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며 교육 개혁안이 발표되자 대학생의 시위를 조직화한다. '조국과 청년' 소속원들은 물론이고 많은 자본가들이 미 CIA로부터 교육과 자금을 지원 받고 있음을 영화는 말해준다.

총선 이후 부르주아지의 봉기를 지켜본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부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독교민주당사 앞을 지나가던 노동자를 향해 총이 발사되고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수 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검찰과 법원은 단 한명도 처벌하지 못한다.

부르주아지들의 본격적인 봉기가 시작된다. 운송 업체 부르주아지들은 의도적 휴업 또는 파업을 강행하고, 이에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트럭을 교통수단으로 제공하며 정부에 대한 조력에 앞장선다. 노조는 이 외에도 경찰과 함께 보수파 시위 현장의 바리케이드를 치우는 등 노동자 정부 수호에 전력을 기울인다. 수십만의 지지 군중이 모인 가운데, 아옌데 대통령이 연설한다. "나는 사회주의 전사로서 그리고 칠레 대통령으로서 명예를 걸고 국민의 충정에 답하겠습니다. 나는 민중연합의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수행하겠습니다."

서서히 군의 움직임이 보인다. 정부 정책에 반대를 표시하는 일부 장교들, 이들은 미국으로부터 훈련받았으며, 아옌데 정부 출범 이후 4,500만 달러 이상이 미국으로부터 이들에게 건네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영기업인 광산 노조의 파업이 발생한다. 칠레 산업의 중심이라는 이유로 구리 광산 노조는 대표적 귀족노조다. 광산노조의 파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파와 야당의 지지와 후원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이들의 파업 현장에 민중연합 관계자가 참석, 노동자의 단결을 저해하는 파업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분열 정책에 경고를 내리지만, 부유층을 중심으로 파업 광부에 대한 지지와 후원은 확산되며, 카톨릭 대학교 학생들은 동맹 휴업과 지지 시위를 벌인다.

그러나 50% 정도의 노동자들은 정부 수호를 위해 잔업과 야근을 가리지 않고 업무에 참여하였으며, 다른 광산으로의 파업 확산은 저지된다. 보수파는 라디오 방송국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기독교민주당사를 중심으로 거리 시위를 전개하는 등 사실상의 내전 상황으로 몰아간다. 수십만의 노동자들은 모네다 궁 앞에 집결, 정부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며 어께를 걸고 같이 뛴다. "이렇게 뛸 수 없다면 너는 멍청한 파시스트!!!!"

대부분의 광산 노동자들이 작업에 복귀하는 가운데, 78일 간의 파업으로 국가에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발생시킨 광산노조의 파업이 6월28일 종료된다.

파업이 종료된 바로 다음날인 1974년 6월 29일 오전 9시 10분, 제2연대 소속 군인들과 탱크6대가 모네다 궁을 공격함으로서 쿠데타가 발생한다. 군 병력이 트럭에서 내리고 궁을 향해 발포하는 장면을 멀리서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한 군 장교가 카메라를 발견하고 권총을 카메라를 향해 뻗는다. 얼마 후 카메라가 흔들리며 땅에 떨어지면서 칠레전투 제1부, 부르주아지의 봉기가 막을 내린다.(아르헨티나의 레오나르도 헨릭슨 기자는 유작으로 이 필름을 남긴다)

※ 군부 쿠데타를 주도하고 1990년까지 칠레를 통치한 아우구스트 피노체트는 1998년 병 치료차 영국에 방문했다가 발타자르 가르손 판사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구속된다. 이와 함께 세계 언론은 군정기간 동안 피노체트가 벌인 잔혹한 인권탄압의 실상들을 보도하고, 쿠데타의 배경과 배후에 미 CIA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기사를 연일 내보낸다. 미국 내에서도 정보공개법에 의해 공개된 비밀문서를 통해 1973년 칠레 쿠데타에 미 CIA가 깊숙히 개입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

피노체트는 2006년 12월 10일 고령에 따른 심장질환 등 합병증으로 칠레 군 병원에서 사망했다.(쿠데타를 주도하고 수 천 명을 죽인 학살자가 고령에 의한 자연사라니!!!) 피노체트 집권 시절, 피노체트 정권으로부터 고문을 당한 현 바첼라트 대통령은 피노체트의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싶지 않으며, 조기가 걸리는 국장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한편, 독립적 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피노체트 집권 기간 동안 정치적 이유로 3,190명이 사망했고, 1,000 여 명은 체포 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수 만 명이 칠레를 떠나 망명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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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k209
반 인륜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를 위해~~~   
2007-04-1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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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전투 1부(1975, The Battle Of Chile Part 1 / La batalla De Chile : La Insurreccion De La Burqu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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