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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시선으로 본 이해와 화해, 그리고 돌아감 귀향
mansoledam 2007-02-28 오후 5:40:43 1243   [6]

 이번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 ‘귀향’을 보았다. 칸 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고 페넬로페 크루즈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영화라고 해서 보게 되었다. 짙은 화장을 한 페넬로페 크루즈와 밝은 빨강으로 채색된 포스터만 기억할 뿐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였다.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고 여성 위주로 그려지는 따뜻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무척 지루해지기 쉬운 영화다. 초반부에 딸 파울라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섬뜩한 분위기의 장면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저 그렇지만 잔잔하게 그들의 일상을 뒤쫓아 가는 시선으로 그려진 영화다. 그것도 등장인물들이 모두 여성으로만 채워진 편향되기 쉬운 인물배합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꾸준히 이어지는 긴장감의 조성이다. 감독은 영화가 진행되어가면서 두 가지의 요소를 잘 조정해나가면서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깔리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주인공 라이문다와 쏠레 자매가 각자 갖고 있는 비밀들이다.

 

 라이문다는 딸이 죽인 남편을 아무도 몰래 처리하며 그들만의 비밀로 감추려 하고, 쏠레는 죽은 어머니의 유령이 자신을 찾아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언니에게 숨긴다. 그런 와중에 그들의 만남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약간의 코미디적인 요소를 갖는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비밀에 대한 긴장감이 그것이다. 그런 두 가지 이야기를 비춰주며 영화의 중반부가 진행되고 어머니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며 모두가 화합되는 후반부 이야기의 밑바탕으로 작용하게 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별로 심각하거나 중요한 일들이 아님에도 그들의 뒷얘기가 자꾸 궁금해지게 된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 자매가 갖는 비밀에 근거를 둔 긴장감 탓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영화를 보며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영화를 보며 모든 것에 의미를 두며 감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나중에 모두 연결되어지거나 감독 특유의 특성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대부분의 것들을 별 의미 없이 영화의 장치로 배치되어 눈길을 끈다. 라이문다가 식당의 열쇠를 우연히 맡게 되어 잠시 식당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그것들 중 하나인데 내용 중에선 큰 의미가 없는 장면이지만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결국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일조한다. 이렇듯 영화에 산재되어 있는 모든 장치들은 언뜻 관계없어 보이지만, 중심 이야기에 모두 맥락을 같이하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눈에 띄지 않게 이야기에 힘을 잔뜩 실어주고 있고, 이야기를 더 다양하고 재미있게 해준다. 감독이 갖고 있는 이야기꾼으로써의 특별한 능력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것들이 결합된 영화의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고 짜임새도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중심인물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례식장에서도 그렇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할 때도 굳이 이웃 여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여자들만을 등장시킨다. 그 때문에 영화 자체가 여성들로 만들어진 여성을 위한 영화라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여성들로 이루어져서 그들을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여성들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록 초라하게 비춰지지만 주인공의 여성들이 갖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의 원인들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3대에 걸쳐 겪게 되는 여성들의 고통이 남성의 동물성에 의한 것이라는 부분은 분명 남성에 대한 모진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맞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남성이 배제된 영화가 아니다. 여성들만의 그 어떤 것이 아닌 남성과 섞이면서 겪게 되는 문제를 그렸기에 사람이 사는 삶을 여성의 시선에서 그렸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 영화가 결국 말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여성들의 유대감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은 남성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것의 고통을 안고 세상에 남아 살아가는 것은 여성들이고 해결하고 화해하며 결론짓는 것도 여성들이다. 그런 와중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모습을 영화는 기막히게 잘 잡아내고 있다. 여자들의 마음을 어찌 그렇게 잘 아느냐고 극찬 받았다는 감독답게 이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논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라이문다가 어머니와 화해하며 ‘여지껏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라고 내뱉는 장면은 그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잘 드러낸 영화의 명장면이다. 또 영화의 초반에 아빠를 찔러 죽이고는 초조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딸에게 침착하게 괜찮다며 뒤처리를 하는 라이문다에 모습에서 그녀가 과거에 겪었던 고통이 딸에게 전달되길 바라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냉장고의 처리를 도와주는 이웃과 비밀을 공유하며 맺어지는 그들만의 유대감이나 원수의 자식을 돌보는 것도 자신 때문에 생긴 문제라며 끝까지 책임지려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에서도 그녀들만이 갖는 유대감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코미디와 드라마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그것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화는 지루하지 않음과 동시에 물 흐르듯 흘러가는데 그런 자연스러움이 존재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수많은 장치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아우구스티나의 존재는 영화의 내용 진행에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녀가 있기에 라이문다는 어머니의 유령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쏠레에게 어머니의 존재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또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회귀 본능을 일깨워 그녀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흐름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마드리드에 정착하고는 딸 하나만을 바라보며 억척스럽고 강하게 살아온 그녀를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는 충격적이지만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 안으며 모든 것을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식당을 잠시 운영하는 동안 보여준 라이문다의 활발하고 능력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좋았다.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기력이 잘 나타난 부분이기도 한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라이문다의 모습으로 녹아있는 연기를 보고 그녀의 연기력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식당을 운영하면서 딸과 함께 자연스럽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잠시나마 행복한 모습을 보였고 그녀가 영화 촬영 팀의 남자와 엮이는 장면도 쉽게 상상되었다. 그 중에서 마지막 쫑파티 날 보여준 그녀의 노래는 특히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스페인 특유의 서정적인 정서를 듬뿍 느낄 수 있었고 그녀와 어머니의 눈에서 동시에 흐르는 눈물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무언가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을 담은 노랫말의 의미를 통해 그녀가 말 못하는 잊지 못할 과거가 있다는 사실과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 연결된 무언가를 살짝 내비치는 장면이었다. 어머니와의 화해가 가장 절정이라면 그 장면은 영화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갈림길 같은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밖에 영화를 보며 두 가지 부분을 주목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하나는 빨간색의 색채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감독이 갖고 있는 특유의 코드 같은 것이라는데, 중요한 장면마다 다양한 곳에서 빨강색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것들을 찾아내며 연출의 세심함을 느끼는 것도 재미있었다. 자동차의 색깔이나 인물들의 옷, 그리고 냉장고의 색이나 그밖에 다양한 구도로 빨강색이 존재감 있게 배치되어 비쳐지는 등 온통 빨강을 강조해대며 여성성의 일부분으로 부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 가지는 다양한 카메라의 앵글과 구도를 통해 비춰지는 여성의 모습들이다. 은근히 페넬로페 크루즈의 몸을 훑어나가듯 비추는 카메라 액션이 많았는데 나중에 가서야 그것이 의도적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말했듯 그것은 영화 내내 여성들만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이 반대로 남성적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영화는 내내 여성들만을 비추지만 페넬로페 크루즈의 가슴을 유난히 강조하는 시선들 때문에 영화 어딘가 남성이 숨어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게 만든다.

 

 감독의 강한 스토리텔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영화적 감각도 맛 볼 수 있었다. 그의 말처럼 등장하는 모든 여자배우들의 연기가 완벽하게 뒷받침 되었고 이야기 속에 자연스러움이 녹아있어 그것을 전달하면서도 무척 힘있고 재미있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처음 보았는데 그의 작품세계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느낌보다는 먼저 스페인 특유의 이국적인 정서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 보여주는 방식이나 이야기의 진행, 그리고 장면의 넘어감이나 감정의 표현 등이 다른 국가라서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주로 여자들이 등장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따뜻함을 담은 영화 ‘귀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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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2006, Return / Vol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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