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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갈릴 건 이미 알았다 <하루> 조선호 감독
2017년 6월 22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어떤 수를 써도 가족을 잃게 되고야 마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하루가 수도 없이 반복된다. 90분의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보는 내내 심리적 고통이 극대화되는 타임루프 영화가 <하루>다. 제작단계부터 호불호가 갈렸지만, 조선호 감독은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고통스러운 하루가 왜 계속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하면 그날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말하고 싶었다. 힌트? ‘결자해지’다.

대중에겐 아직 당신 이름이 낯설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아마 영화 하는 분들도 날 잘 모를 거다. 인맥이 넓은 스타일이 아니다.(웃음) 무엇부터 소개해야 하나… 일단 나이는 마흔한 살이다.

전형적인 한국식 자기소개!(웃음)
(하하하) 그리고 인천 사람이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2000년대 중, 후반부터 현장으로 나와 연출부 조감독 생활을 했다. 틈틈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작년에 들어서야 <하루> 촬영을 시작했다. 가을, 겨울, 봄 세 계절 동안 후반 작업을 했고 드디어 6월 15일 개봉까지 하게 된, 감독 조선호다.(웃음)

이시영, 엄기준 주연 스릴러 <더 웹툰: 예고살인>(2013)의 각색으로 참여했던 이력이 있다.
비중 있는 작업에 참여한 건 아니다. 메인 작가가 따로 있었고 나는 일정 부분만 도왔으니 핵심적인 경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격적으로 대중의 평가를 받게 될 작품은 역시 <하루>겠다.
그렇다.
배급이 CGV아트하우스다. 독립영화를 주로 배급하는 곳인데.
배급 정보만 보면 <하루>가 상업영화인지, 독립영화인지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하루>는 상업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좋게 본 CGV아트하우스가 긍정적인 의사를 밝혀온 덕분에 함께 작업하게 됐다.

<하루>는 특정 시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타임루프물이다.
타임루프라는 소재 자체가 장점이자 단점이다. 분명 특이하지만, 여러 번 활용된 소재라 식상한 느낌도 든다. 당연히 제작 단계에서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아마 개봉 후에도 관객 반응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만의 차별점을 꼽는다면.
유재명 배우가 연기한 ‘강식’이라는 존재다.

드라마 <응답하라1988>(이하 ‘응팔’)에서 ‘학주’역으로 유쾌 발랄한 이미지를 선보인 배우다.
‘응팔’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일반인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이다.(웃음) 연극 생활을 워낙 오래 했고 인생과 연기에 대한 고민도 깊으시다. ‘강식’의 나이를 42살로 설정했는데 그 나이의 깊이감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미스터리한 ‘강식’ 역의 그와 함께 주연배우 김명민, 변요한이 극을 이끌어나간다.
김명민 선배는 워낙 표현력이 좋은 분이다. 작품이나 캐릭터에 따라 그의 연기에 대한 좋고 나쁨이 갈릴 수는 있을지언정 연기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배우 중 하나라고 본다.
워낙 헌신적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다.
조금의 거짓말도 보태지 않고, 나는 현장에서 그의 연기에 ‘오케이’만 했다. 자신이 보여줄 연기의 90% 정도를 미리 준비해온다. 감독조차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용을 재빠르게 파악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변요한은 시간을 이동하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때와 비슷한 역할을 소화했다.
배우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비슷한 역할을 연달아 소화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나. <하루> 촬영은 이미 시작됐고, 버스는 출발했는데.(웃음) 다행히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이라 자기 캐릭터에 완전히 빠져들어 연기하더라. 동물적인 연기 감각을 보여줬다.

아무리 애써도 가족을 잃고야 마는 설정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게 <하루>의 특징이다.
고민이 상당히 컸다. 세 배우의 반복되는 하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이야기 범위를 상당히 좁혀놓다보니, 이렇게 관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괜찮을까? 싶더라. 상업영화는 어쨌든 오락성이 중요하다.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가 필요한 타이밍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관객이 원하는 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점을 영화의 한계로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충분히 알고 있던 약점이다. 고통을 반복적으로 느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피로한가. 그래서 애초부터 러닝타임을 짧게 정했다. 현장 편집본을 순서대로 쭉 붙여 놨을 때도 105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다. 편집과 후반 작업을 마치니 딱 90분 1초가 나오더라. 너무 짧은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2시간을 넘기면 관객이 더 힘들어 할 것 같았다. 러닝타임을 늘린다고 더 몰입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니까.

주변 지인들의 평가는 어떻던가.
지인이니까 다들 좋은 말만 하지 뭐.(웃음) 사실 내가 먼저 “돌직구는 나중에 해달라”고 부탁했다.(웃음)
역시 마음이 아프기 때문인가.(웃음)
그렇기도 하지만, <하루>를 만들기 위해 도움을 준 많은 분이 속상할 것 같았다. 글도 내가 썼고 연출도 내가 했으니, 나중에 나만 욕먹으면 된다. (웃음)

첫 연출인 만큼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어휴, 정말 많았다. 조감독 생활을 오래 했지만 감독의 업무와 큰 틀만 비슷할 뿐, 구체적인 역할은 너무나 다르다. 프리프로덕션 기간부터 촬영 기간, 후반 작업과정까지 모든 게 어려웠다. 선배들의 조언도 많이 듣기도 했고, 머리로는 전부 알아들은 것 같은데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하니 낯설더라. 조금 더 치밀하고 치열하게 작업할 걸 하는 후회도 한다. 다음 번엔 더 잘 할 거다.(하하하)

유재명과 변요한이 벌이는 ‘택시 액션’이 기억에 남는다. 은근히 잔인하더라.
요즘 하도 잔인하고 수위 높은 영화가 많이 나와 그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다.(웃음) <하루>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사람이 ‘왜’ 고통스러워지는지다. 잔인한 표현법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강도 높은 방법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다면 사과드린다.(하하하)

<하루>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분명한가 보다.
고통의 매듭을 풀 수 있는 건 결국 그 세 사람, 즉 사건의 당사자뿐이라는 거다. 인과율에 묶여있는 이들이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하루를 끝내려면, 결국 모두 변화된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영화 막바지 세 인물을 화해시키는 건가.
그런 셈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상황에 따라 잘못된 선택도 한다. 되돌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중요한 건 ‘지금’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다. 상처받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좀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이미 충분히 고통스러웠으니 이제 그만 괴로워지자는 거다.

‘결자해지’인가보다.(웃음) 의도는 동의하지만 급작스러운 화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소 급하게 화해해버린다는 지적은 충분히 받아들인다. 좀 더 치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웃음)

당신에게도 기억에 남는 크고 작은 실수가 있을 것이다.
영화처럼 극단적인 실수를 저지른 적은 없지만, 일상적인 실수는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특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랜만에 술 한잔하자고 불러내는 친구에게 피곤해서 못 가겠다고 거절한다거나…(웃음)
실수라기보다는, 아쉽고 미안한 부분들이겠다.
아버지에게 식사하셨냐고 한마디 묻는 것조차 자주 하지 못할 때, 그럴 때도 참 죄송하다. 우리 집이 아들만 둘이다. 내가 둘째라 늘 ‘딸 역할’을 한다. 어릴 땐 그 역할이 참 싫었는데 이제는 좋더라. 사소한 걸 챙겨드리면 부모님도 좋아하신다.

부모님이 ‘둘째 아들’의 영화감독 데뷔를 아주 뿌듯해 하셨을 것 같다.(웃음)
VIP시사회 때 부모님을 초대했다. 잘 봤냐고 여쭤보니 “응”하고 마시더라.(웃음) 말은 그렇게 하셔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20년 가까이 몸담은 영화계에서 아들이 꿈을 이룬 셈이니 속으로는 나보다 더 좋아하실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이나 작품, 장르가 있다면.
봉준호 감독, 박찬호 감독 영화를 당연히 좋아한다.(웃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도 좋다. 각종 히어로물도 섭렵한 편이고, <미드나잇 인 파리>(2011)도 인상적으로 봤다. 영화 연출가라는 인생의 2/3가 백수 시절이기 때문에(웃음) 시간이 날 때마다 아트하우스 같은 곳에서 개봉하는 좋은 영화를 찾아본다.

보통 다들 좋아하는 영화를 좋아하는군.(웃음)
보통사람이니까.(웃음) 전경린, 은희경, 공지영 작가의 소설도 좋아한다.

세 작가 모두 염세적인 느낌을 풍기는 데가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은 늘 품고 있는 스타일이다. 그게 마음에 든다.

시나리오를 쓸 때도 당신의 그런 취향이 반영된다고 느끼는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쓴 시나리오를 보면 건조하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꽤 있다.
규칙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편인가.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글 쓰는 일도 페이스라는 게 있다. 쓸 때는, 하루에 한 장이라도 꼭 써야 한다.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게 시간 아닌가. 지금도 인생의 남은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웃음)

에? 벌써?(웃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끝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다. 40년 뒤에는 죽을 수도 있다.(웃음)

그런 생각이라면, 어서 빨리 다음 작품을 만들고 싶겠다.(웃음)
그건 또 다른 문제다.(웃음) 준비가 돼야 한다.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면 구멍이 많이 생긴다. 관객 입장에서는 하도 많은 영화가 개봉하니 한 감독이 자주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개 영화를 준비하는 사람은 3년에서 4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나는 첫 작품을 개봉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인터뷰를 비롯한 모든 과정이 낯설다. 나에게도 이 과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뭐, 이러다가 다음 작품이 정 안될 것 같으면 배추장사라도 해야지.(웃음)

장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웃음) <하루>를 보고 당신에게 관심 두게 될 관객에게 앞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미리 힌트를 준다면.
아직은 장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고리타분한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태다.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사람 얘기니까, 소재에 따라 가장 적합한 장르를 선택할 것이다. 다만 큰 역사의 흐름 안에 존재하는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내공이 좀 쌓이면 시대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제2차 세계대전이나, 구한말 이후 6.25까지의 우리나라 역사가 좋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삶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또 신념이 쌓이기도 하고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나.

기대하겠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음… 잡생각 없이 멍할 때. 인터뷰니, 홍보니, 무대인사니 하는 낯선 경험을 연달아 하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웃음)


2017년 6월 22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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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박꽃 기자,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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