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백 있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달라도 한참 다른 소도시 뒷골목 퇴물 깡패 강재와 희대의 영웅 역도산이라는 두 인물의 주름 많은 인생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그려낸 송해성 감독은, 분명 다른 노선으로 갈리는 두 영화지만 결국은 허망한 삶으로 마감한 사내들, 그러니까 그러한 남자들의 이야기만큼은 자신 있노라고,
<역도산>은 다르다 한다. 순간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파이란>과도 감정에 직접적인 호소를 가하는 기왕의 블록버스터와도 기실, <역도산>은 그것들과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음을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송해성 감독은 자신이 관장한 <역도산>, 인물 역도산을 관장한 설경구, 그리고 그의 조력자이자 파트너인 일본 스텝들에 대한 속내를 별다른 필터링 없이 시원하게 드러냈다
<역도산> 개봉일이 얼마 안 남았다. 요즘 어떠신가?
아~~~~정신없다. 영화들 보고 하도 의견들이 분분해서...
사실 그렇다. 기자시사가 끝난 후 반응이 두 갈래로 갈리더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뚝심 있게 한 인간으로서의 역도산을 그린 점이 좋다는 쪽과 그래도 정서적 울림이 있는 드라마틱한 부분이 있어야 되지 않았느냐...그러니까 좀 임팩트가 약하지 않냐?는 의견.
사실, 감독들도 의견이 나뉘고 있다. 임상필 감독이나 장준하 감독 등 내 주변에 있는 감독들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 상업적인 경계에 자리한 감독들은 아쉬워하는 측면이 강하다. 영화를 좀 더 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게 좋지 않았느냐? 뭐 그런 아쉬움이 있더라.
그렇다면 심정이 아주 복잡하겠다.
뭐 그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고, 어쨌든,
난 <역도산>에 만족한다.
솔직히 시나리오 11고까지 쓰면서 이거저것 안 해 봤겠는가? 다 해봤다. 극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도 있었지만 그건 이 영화가 갈 길이 아니다. 지금 이 상태에 흡족 한다.
<파이란>의 강재가 오열할 때 확 밀려오는 그런 정서와 비스무리 한 것들을 적잖이 기대 했던 거 같다.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계보를 잇는 영화라는 소문도 오히려 본의 아니게 영화에 민폐를 끼친 것 같고.
그런 거 같다. <역도산>를 보러오면서 찡한 무언가가 분명 있는 영화라 생각들 했던 거 같다. 그런데 난 그 반대지점으로 향하는 영화를 원했다. 역도산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그런 작품 말이다. 그게 내 입장이기도 하고 차대표의 입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관객의 감정을 어느 순간 흔드는 <파이란>과 달리 <역도산>은 처음부터 슬픈 영화고 나 역시 그러한 느낌을 확연히 갖고 촬영에 몰입했다. 끊임없이 어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이길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어가다 도중에 죽어버리는, 결국 인간의 삶의 허망하다는 걸 역도산은 보여준다.
음..........그러니까 처음에 난 역도산이 시민케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케인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를 버리게 되고 결국엔 쓸쓸히 혼자 죽게 될 때 부르짖은 말이 로즈 버드다. 모든 걸 이뤘던 사람에게도 가장 소중한 게 어릴 때 엄마가 사줬던 썰매였던 거다.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자체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게 역도산의 마지막 장면과 통한다 볼 수 있다. 또 <스카페이스>의 알 파치노 스타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남자를 다룬 영화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굉장히 화려한 영화를 잘 찍을 자신은 없지만 진중한 남자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 내가 제일 잘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정도로 그쪽에 상당한 호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파이란>의 강재도 그렇지만 굴곡 심한 남자의 인생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그런 쪽에 관심이 많다. <파이란>할 때만 해도 비관적인 세계관이 강했다. 긴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만 남자들의 세계는 꽤나 허망한 구석이 많다. 역도산이나 강재나 어느 한 시기를 살았던 특정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들처럼 뭔가를 이겨나가고자 싸우고 좌절하고 끊임없이 뭔가 부딪히는 그러 한 소재에 늘 끌린다. 상업영화 감독이 그런 마인드를 가지면 좀 그렇지만...
그나저나, 100억이 넘는 장난 아닌 제작비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거 같은데...
말마라! 아주 엄청났다. 사실 <파이란>은 내가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역도산>의 경우는 남자 이야기고 해서 자신감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돈 걱정이 들기는 했다. 또 <역도산>의 경우는 욕심을 부려 감독의 생각과 의견을 영화에 많이 반영했지만, 제작비가 올라갈수록 감독의 영화만은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측면을 이번에 촬영하면서 깨달았다.
역도산의 감정을 사각의 링에서 보여주는 레스링 경기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그게 좀 그렇다. 요즘 한창 인기인 이종 격투기에 사람들이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그걸 떠올리며 비교하는 친구들도 있더라... 사실 이 정도의 레스링 장면 대한민국엔 없다. 개인적으로 최고라 생각한다.
좀더 부연설명을 해달라!
그러니까 우리가 어렸을 때 열광했던, TV로 봐왔던 그 사이즈에 맞춰 촬영한 세 번의 경기는 액션으로서 작용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감정을 보여주는 측면이 중요하다. 첫 경기는 역도산의 비열한 처세술. 두 번째는 강자가 되기 위한 야비함. 마지막 세 번째는 삶의 대한 갈등과 허망함을 보여주는 거다. 액션이 아니라 역도산이 살아왔던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던 만큼 거기에 맞춰 봐줬으면 좋겠는데 ‘경기는 무조건 액션’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한 거 같다. 어쨌든, 레스링 장면만큼은 자부한다.
그렇진 않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마지막 병실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한국어가 워낙 잘 안나오다 보니까. 좀 뜬금없이 보일 수 있는데. 결국은 그 엔딩 신에서 역도산이 한국어로 한 마디 하는 부분을 보여주고자 그렇게 수많은 배우와 스텝들이 고생하며 여기까지 온 거 같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보아하니 많은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낸 거 같더라. 그중 가장 버리기 아까웠던 장면이 있다면.
역도산이 훈장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 자기 얼굴이 TV에 안 나온다고 갱판을 치는 신이 있다. 돈도 많이 들어갔고, 그의 강박이 잘 표현 데는 부분인데 너무 극적으로 가다 보니까 역도산이 왠지 모르게 똘아이 된 것처럼 보였다. 영화의 진중한 흐름을 보는 사람에게는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역으로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분들에겐 너무 오바스럽게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뺐다.
설경구가 아쉬워 했겠다.
아마 그랬을 거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설경구라는 배우에게 절대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친구가 고생한 만큼 보답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까봐 은근히 걱정된다.
말 나온 김에 설경구라는 배우에 대해 한 마디 부탁한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설경구의 연기에 대해 생각보다 덜 물어 보길래 좀 실망했다. 정말 대단한 열연을 펼쳤는데.....
처음 볼 땐 자막도 있고 해서 설경구의 연기와 감정에 집중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영환데 말이다. 뭐, 말하기 좀 그렇지만 세 번 정도 <역도산>을 보면 정말 알게 될 거다. 설경구의 대단한 능력과 영화의 진정성을.
한.일 공동 프로젝트니만큼 일본 시장 역시 염두에 두고 진행시켰을 텐데. 그러한 점을 특별히 의식했나
아니 그런 건 없었다. 별로 신경 안 썼다. 오히려 한국관객을 의식한 부분은 있다. 또 재밌는 건 평이 갈리는 한국 기자들과는 다르게 일본 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좋아했다는 거다. 거참 기분이 묘해지더라.
나카타니 미키, 후지 타츠야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캐스팅은 일본쪽 프로듀서가 진행한 건가.
미키 같은 경우는 자기 혼자 나오는 영화의 펀딩도 조성할 수 있을 만큼 일본에서 인지도가 상당한 배우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자면 전도연 급이다.
<역도산>에 출연하고 하고 싶다고 혼자 지지난 부산영화제 때 한국을 방문해 처음 만났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인지 알았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길래 그래 하자 그랬다. 그러고 나서 일본에 갔더니 유명세와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안성기 선배 정도의 인지도가 있는 후지 타츠야는 일본 프로듀서들이 일을 잘 진행시켜 같이 작업 하게 된 케이스다.
그들과 작업한 소감을 듣고 싶다.
처음엔 그런 게 힘들었다. 우리나라는 일할 때 번번이 먼저 저질러 놓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일본은 그게 안 된다. 열중에 아홉까지 안 되면 절대 안 움직인다. 아주 미치는 줄 알았다. 처음엔 그렇게 엇갈리다가 나중엔 잘 풀렸다. 그들이 공동스텝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좀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일본측도 메인이 한국이니까 그쪽에 맞춰주자. 뭐 이렇게 일이 진행돼 별 문제없이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래서 묻는데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의 촬영시스템은 일정이 엄격한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말이다. 오래 기간 세심하게 공들여 찍는 게 마냥 좋은 작품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며 우리도 변해야 된다고 하는 주장도 있는데 이런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다. 난 우리의 그런 방식이 한국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본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한 달반 이상을 안 찍는다. 왜냐하면 돈 문제가 걸려있고 인력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조감독도 한달에 월급이 750만 원이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걔들은 워낙이 빨리빨리 찍는 스타일이다.
연기자들 감정 잡으라고 3시간 이상 마다하지 않고 기다리는 우리를 일본은 이해하지 못 한다. 거기엔 없는 시스템이니까. 물론, 미키를 비롯해 일본 배우들이야 고마워하고 좋아한다. 자기 연기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하니까.
나중에야 “아 한국은 이렇게 찍는구나”하면서 공감하지만 일본은 사실 그렇게 찍을 수 없는 환경이다. 뭐 우리도 점점 변화겠지만 어쨌든, 프로듀서의 입김보다는 감독의 창의력과 연출력을 신뢰하고 비중을 실어주는 현재의 시스템이 한국영화의 힘이라 난 본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예비관객을 위해 한 멘트 해주길 바란다.
<역도산>은 설경구라는 배우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감정에 직접적인 호소를 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설경구가 표현하는 역도산이 치열하게 살았던 삶, 그거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가지고 그를 바라본다면 아주 흡족할 만한 만족을 느낄 거다.
인터뷰: 서대원 기자
사 진: 이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