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과의 만남은 농도 짙은 소싯적 아련한 향수에서 끄집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가 바로 그 출발점이었다. 롤러장과 헤비메탈과 삼류극장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중딩 시절, 교문대신 극장의 시뻘건 문을 열어제끼고 어둠 속에서 조우한 그녀의 관능적 육체는 교과서 대신 무언가 잡아보려는 암중모색 속에 자리한 질풍노도의 소년들을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남음이었다. 이글거리는 불꽃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애마부인3>의 그녀의 황홀한 육체는, 이렇게 어린 사내들의 가슴에 내리 앉아 20년을 통과했다.
그러나 세월은 집어 삼켜 유보시키지 못했는지 김부선은 스스로 말하듯 “가슴도 쳐지고, 목주름도 생긴” 어느덧 불혹을 넘긴 원숙한 중년의 여인으로 지금 여기에 서 있다. 매혹의 여신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머리 굵은 소년들의 마음은 아랑곳 않고 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욕정을 조카뻘에게 서슴없이 드러내는 남루한 차림의 아줌마는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세월의 아이러니를 물리치고 김부선이 눈물나게 반가운 것은 추락한 이미지로서의 여신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다가설 수 있는 좀더 인간적인 모습을 한 여신으로서 이내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네 이모와 고모처럼.
어두운 시간을 지나며 청(소)년들의 해방구?로 소용되며 영화가 아닌 한 시대의 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고유명사로 거론돼왔던 <애마부인> 시리즈의 세 번째 애마 김부선. 그녀는 아주 오래전부터 더 이상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성녀(性女)가 아닌 격의 없는 성녀(聖女)로 바라봐지기를 원하며 거듭나고자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래서 “절박한 입장에 처해 있는 철거민 같은 배역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김부선의 바람은 여타 배우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절실하게 와 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몸의 늙어감에 따른 거부할 수 없는 투항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지난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성숙한 여인의 선택인 셈이다.
인터뷰가 끝난 후 짐을 싸고 나서는 취재진을 문밖까지 나와 배웅해주는 그녀의 사려 깊은 모습을 끝으로, 너무나 황홀했던 또는 인생의 배움의 순간이었던 김부선 누님과의 만남은 매듭 지어졌다.
김부선: 글쎄다. 요즘 영화(말죽거리 잔혹사)도 잘 되고해서 단역이 들어올 거 같은데 아직은 그렇지가 않다. 조만간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 시대의 젊은 친구들은 당신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 뭐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든가, <애마부인3(1985)>나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1983)> 등 80년대 스크린을 화려하게 누빈 주연배우 배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그들을 위하여 김부선 당신의 소개를 해주길 부탁한다.
김: 미스코리아 출신은 아니다. 하려고 했을 뿐이다. 어깨에 있는 우두자극이 커 포기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생활하다가 패션모델을 하게 됐는데 극중 연기가 패션모델이니 한번 해보라고 해서 배우생활을 하게 됐다. 연기를 몰라도 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거기에 속았다.ㅋㅋㅋ
냄비부인, 염소부인 등 16미리 배우가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부끄럽긴 하지만 대형극장에서 제대로 간판 올린 <애마부인3>의 주인공이었다.
전혀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연기를 너무 못했다. 그게 부끄러울 뿐이지, 에로를 했다고 해서 창피하고 그런 건 전혀 없다. 당시, 한국 영화의 물꼬를 터준 게 에로라고 하기도 하고 또 관객에게 어느 정도는 사랑도 받았고.....
어떤 분은 나를 너무 좋게 봤는지 “시대의 희생자가 아니냐! 그 시대가 지나가서 버린 게 아니냐” 하더라... 그렇지만 그런 거 같지는 않다. 나름대로 좋은 여건에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 출신이라 말씨도 다르고 환경이 바뀌다 보니 지레 겁을 먹고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되면서 의지와 상관없는 길을 잠깐 걸었다. 너무너무 후회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간 거 같다. 최선을 다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살아 있는 생전동안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
말죽거리에 캐스팅 된 경위가 알고 싶다
김:감독님이 내 팬이라고 하더라. 당시 학생이었는데 나의 데뷔작(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을 세 번이나 봤단다. 그 기억이 깊게 남아 단역이긴 하지만 나를 고집했다고 한다. 솔직히, 그 말을 들었을 때 혹 유하 감독이 김부선의 20대 모습을 아직까지 갖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지금보면 실망할 텐데...해서 보톡스도 맞았다.
그후 "제가 너무 늙어 보이면 안 쓰셔도 된다"고 했더니 "무슨 말씀이냐 제가 김부선씨 팬이다. 중요한 신이니 잘 부탁드린다." 그래서 무척 감동받았다.
김: 전혀 기분이 상한다거나 나쁘지 않았다.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존심에 사로잡힌 배우들을 적잖이 봤는데 다행히 그런 면에서 난 좀 깨 있는 거 같다. 그간 남대문에서 장사도 하고 거친 일을 겪으면서 많은 걸 느꼈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주변의 그런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런 마음을 버렸으면 한다.
영화를 보면 더 아줌마스럽고 더 글래머스하게 보이려고 분장을 한 거 같던데...
김: 개인적으로 최대한 내츄럴하게 가고 싶었다. 마침 유하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 최소한의 분장만 한 채 자연스럽게 갔다. 가슴도 쳐졌고, 배도 나왔고 목주름도 있고 흉터도 있고 뭐 이런 걸 굳이 꾸미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가? 아직 쌩쌩하시다)
권상우와의 그 신을 촬영하면서 재미난 일도 있었을 거 같다
김: 예정된 촬영날보다 연락이 일찍왔다. 속으로 걱정되기도 하면서 욕심이 났다. 어떻게 하면 좀더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레디~ 고!” 만하면 리얼하게 내판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임했는데, 그래서 일단 맛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세상에나 그게 됐다고 감독이 오케이 하더라. 한번 더 찍자고 그렇게 사정하긴 처음일 정도로 졸랐지만 그걸로 그냥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감독의 말을 따르길 잘했다고 판단되더라...
(리얼하게 답해주고자 필자를 권상우 삼아 제스처를 취하시며 말씀하셨더랬다. 아 정말 심정이 멎어 죽는 줄 알았다)
80년대 전성기를 지나 90년대엔 <너에게 나를 보낸다> <게임의 법칙> <비트> <리허설> < H > 등 주로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술집 마담이나 작부 역으로 많이 출연했다. 한창 연기가 물이 오를 때 이 같은 고정된 이미지의 역할만을 떠 안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을 텐데..
김:젊은 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 관리를 못한 탓에 낭떠러지까지 가봤다. 연기에 대한 욕심, 물론 있다. 그리고 우리 딸이 내가 출연섭외 들어왔다고 하면 또 술집마담이야 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다. 물론, 이러다 다른 캐릭터도 들어오겠지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비슷한 역할만 온다.
그러한 배경에는 어쩔 수 없이 <애마부임3>의 인상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본다..
김: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거 같다. .하지만 또 누가 그러더라. “당신이 아직까지 이쁘고 괜찮으니 술집마담을 시키지, 아니다 싶으면 시키겠냐?” 라고. 뭐 한편으론 이거 역시 맞는 말 같다.
그럼에도 당신은 꾸준히 작은 역을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떠 안는다. 거기에는 당신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김: 글쎄다. 난 좋은 영화에 한 신이라도 나가는 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사람들이 자존심도 없이 왜 작은 역에 연연하냐 그러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게 좋아서 하는 거지 돈을 벌고자 하는 게 아니다. 처절하게 잔혹하게 이 동네를 떠나면서 느꼈던게 연기를 잘해야 한다. 난 스타가 아니라 배우가 되야 한다. 그게 정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20년이 걸려도 좋으니 큰 것을 이루자고 마음먹었다.
마음속으로 사람들이 기억하든 안 하든 마음 속에 항상 영화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불러주든 안 불러주든 이 끈을 놓지 않을 거다. 나름대로 몸매 관리도 하고 영화보고 책보고 연극도 보고 호심탐탐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거 외에 다른 바람은 나에겐 사치고 허상이다.
김: 원래 본명은 김근희다. 근데 어릴 때 그게 기생 이름이라 해서 김부선으로 바꿨다. 염해리로 예명을 쓴 것은 감독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주연 따고 싶어서 감독이 시키면 다 했다. 감독이 김부선이라는 이름의 이미지가 안 좋다고 해 마케팅 차원에서 교체한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이름이 마음에 안 들고 정도 안 가 다시 김부선으로 바꿨다.
80년대의 그런 이미지가 끼친 부정적 영향이 있다면
김: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고 할까...늘 섹시해야 될 거 같고 무조간 영화 속의 이미지처럼 보여지길 많은 사람들이 원했다. 어처구니없이 외로웠다. 그건 연기일 뿐이고 사실 난 여성스럽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고 남자 같은데..그걸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었다.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김: 모르겠다. 내가 미련해서 그런지 몰라도 도움이 된 거 같지는 않다.
데뷔한 지가 20년이 지났다. 격세지감 같은 걸 많이 느낄 텐데..
김; 감독부터 전스텝이 젊어졌더라. 좋기도 하면서 그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 얘기도 다룰 만큼 소재의 폭도 넓어졌고...
그리고 젊은 날 내가 땀흘려 잘했으면 지금 이렇게 고생 안 하고 잘 살고 있을 텐데 하는 후회스런 마음도 든다. 뭐, 물론 내가 대가를 치루고 있다고 늘 생각하지만....
80년대는 에로가 넘쳐날 정도로 많았고, 흥행이 된 영화들도 많았다. 물론, 알게 모르게 국가 정책이 뒷받침 되긴 했지만, 어찌됐든 그 당시에 비하면 현재는 새발의 피라 할 정도로 극장용 에로는 거의 아사 상태다. 이러한 현재의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김: 에로를 편애하는 경향이 아직까지도 있는 거 같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저질 배우라 하고....에로는 어른들의 평생놀이고 영원한 테마인데 좀 안타깝다. 충무로 파워 1인자인 강우석 감독도 <애마부인> 조감독의 지낸 바 있는 데 말이다.
김: 요즘은 없고, 옛날에 대마초로 구속 됐을 때 뭐 그룹섹스를 한다고 하질 않나...아무 것도 아닌데 충격고백이라고 하고......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자기마음대로 추측해 과장하는 그런 기사들이 너무 싫다. 요즘은 가끔 그러한 경우에 고소하는 연예인들이 있던데 너무 좋다.
기억에 남는 작품
김: 워낙이 젊었을 적에는 연기를 못 해서 그런지 단역할 때의 작품이 기억난다. 특히, < H >가 기억난다..그 외에도 <너에게 나를 보낸다> <삼인조> <비트> <말죽거리 잔혹사> 등 많은 작품들이 기억에 남는다.
향후 계획이 있을 것이다.
김: 계획이라보다 그냥 살아가는 거다. 아이 학교 보내고. 그리고 짬짬이 새로운 내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 것뿐이다. 아 그리고 어제 전도연이 주연으로 나오는 <인어공주>에서 연락이 왔다. 전도연의 우체국 선배 언니로 출연해달라고 물론 단역으로...
기존의 역할을 탈피해 특별하게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김: 화려함과 섹시함과는 사실 난 거리가 멀다. 굉장히 거칠고 밑바닥을 살고 있으니까...그래서 밑바닥 인생의 애환이 그려진 영화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철거민 역할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
김: 연기 잘하는 배우로 남고 싶다. 오바하지 않고 튀지 않는 배우. 많은 사람들이 “어 저 배우 연기 잘~하네”라는 말을 너무 듣고 싶을 뿐이다.
*김부선 누님의 자태함을 생생하게 보고 싶으시면
누르시라 그러면 나온다
인터뷰: 서 대원 기자
촬영: 이 기성, 이 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