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는 내고 싶지만 전혀 티가 나지 않는 음지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바로 그들을 위한 자리’ 취중 인터뷰, 어느 덧 이 기획기사의 대장정의 포문을 열어제낀 지도 무릇 4개월이 지났다. 그간 말도 적고 탈도 없었지만 여차저차 하다 보니 ‘얘개~ 이제 겨우 두 번째야’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노짱 정권의 개혁이 유명무실해지고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는 작금의 지난한 현실, 우리 무비스트라도 앞으로는 여러분들의 사기를 앙양하고자 빠닥빠닥 똑 소리 나게 일 처리할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공표한다.
박 평론가에 이어 오늘 우리가 접선한 분은 바로 이 분이시다.
“어머! 최민식 씨네” 내 그럴 줄 알았다. 오바하지 마시라! 최민식 같은 명실공히 탑스러운 배우는 무비스트가 아니라도 인터뷰 할 매체들 쌔고 쌨다. 웬간해서는 목격하기 힘든 빨간 기지바지에 짝다리 짚고 최민식을 꼴아 보는 저 위풍당당한 인물, 이 배우가 바로 이 지면을 묵직하게 채울 알현 대상이다.
대관절 누구인지 알 듯 모를 듯 긴가민가하실 게다. 하지만 기억을 잘 더듬어 보길 바란다. <파이란>에서 강재에게 연탄재로 사정없이 뒤통수를 가격 당한 조폭의 똘마니. 이제 좀 감이 오시는가? 이 외에도 <챔피언>에서 유오성의 동료로 그리고 <두사부일체>, <박하사탕>, <복수는 나의 것> 등등 많은 작품에서 그는, 얼굴을 내민 이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에는 물론 한창 촬영 중인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캐스팅 된 상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90년대 중반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프로 <경찰청 사람들>에서 나쁜 놈 캐릭터로 숱하게 출연, 부지불식간에 많은 이들의 대뇌 좌반구에 인지돼 있는 연기자이다.
단지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가방 하나 질끈 메고 혈혈단신의 몸으로 서울로 상경해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 길을 걸어온, 시시각각 시류에 맞게끔 변신하는 것이 미덕인 현 시대에서는 참 미련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 배우의 존함은 지/대/한(이름에 관한 자초지종은 인터뷰에 나온다)이다.
아마도 적잖은 네티즌들이 지금 그의 사진을 보면서 ‘영화배우스럽지 않은 마스크’가 아니냐?, ‘소재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아니냐?며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억측은 아니다. 다만, 송강호나 유오성, 그리고 천차만별의 조연들을 생각해봐라! 시대는 변했고, 외모로서 한 배우의 틀을 가두는 지배적 사고방식은 이미 힘을 잃은 지 오래다. 소재 역시 이 같은 패러다임과 맞물려 성역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그 스펙트럼은 가속도를 붙이며 무한히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그의 외양에 대한 평가는 일단 유보하길 신신당부한다.
맨 땅에 헤딩했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달리 없는 지대한의 배우로서의 인생 역정을 생각해보자면,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는 분명 입지전적인 인물임이 틀림없다. 또한 그와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내내 느꼈던 점은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동네 형 같은 큼지막한 여유로움과 소탈한 호탕함이 몸과 정신에 다닥다닥 들러붙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눈에 띄게 쌓아올리진 못했지만, 그가 지금까지 차근차근 튼실하게 시공해온 밑바탕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리라는 믿음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기에 부실한 지반은 생각도 안 하고 더 높이 치달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젊은 그들 열 명보다 지대한이라는 배우 한 명에 거는 기대감이 더욱 많으며 절실한 것이다.
부디 이 인터뷰 글을 읽고,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배우라는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행스런 선택인지 다시 한번 인지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비단 지대한이라는 배우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 영화판에 관한 글로써도 읽힐 수 있다는 점 역시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참고로 이날 인터뷰는 신사동에 위치한 아구찜 전문 식당 야외에서 진행됐으며, 지난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조명설치 등 갖가지 부대시설 완비를 협찬 전혀 없이 우리가 자급자족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뷰는 아구찜 大자가 나와서야 진행됐다.
Q: 배우라는 직업이 상당한 고생을 요구한다는 건 다 알고 있긴 하다. 헌데, 특히나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그 경위 좀 말해 달라 (이후 지대한이 풀어놓은 1차 상경기 2차 상경기는 거짓말 안 보태고 ‘의지의 한국인’과 같은 다큐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리얼한 대서사극에 다름 아니었다)
지대한: 그러니까 한 십여 년 전, 20살 때 배를 탔다. 그러다가 얼굴도 잘생겼는데 영화배우나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당연히 탤런트 시험에서 떨어지고, 다시 집에 가자니 쪽팔리고 해서 충무로와 여의도 방송국 앞에서 얼쩡거렸다. 그러다 엑스트라 모집한다는 벽보를 보고 <지리산>이라는 TV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 아르바이트 나온 대학생들과 함께 “대한 독립만세”라는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찍었는데, 다들 피식피식 웃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혹 눈에 띄지 않을까 정말이지 뭐 빠지게 열심히 외쳐댔다. 아니나 다를까, 감독이 그러한 나를 잘 봐줘 연기학원을 소개시켜줬고, 그 후 <전설의 고향>,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등 각종 프로에 엑스트라로 나가기 시작했다.
Q: 생계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충무로에서 엑스트라로 일하다가 우연하게 구두 닦는 형들을 알게 돼, 낮에는 구두 닦고, 밤에는 암표팔고 그랬다. 학원비는 형들이 보태줘 일주일에 세 번은 나갔다. 그러면서 서서히 사투리도 고치고 그랬는데 갑자기 결핵이 걸렸다. 그래서 형들이 금반지 팔아 준 돈으로 병원 다니고 그러다가 누가 군대가면 좋은 약이 많다고 해 군에 지원하게 됐다. 여기까지가 1차 상경기다. (그는 이처럼 신산한 시기를 지난 시절의 추억이라 그런지 가끔은 하늘을 보며 땅을 보며 회상하면서도 예의 그만의 힘찬 모드로 술술 풀어냈다)
Q: 이왕 말 나온 김에 2차 상경기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군대에 가니 좀더 절박하게 생존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해서, 가만 생각해보니 이 얼굴과 멜로는 안 맞는 것이다. 그럼 액션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특공무술과 태권도를 배울 겸해서 공수부대에 지원하게 됐다. 물론, 한 달 만에 후회했다.
Q: 결핵은 어떻게 됐나
거 참 희한한 게, 군대가서 진찰받았더니 다 낫다고 하더라. 그래서 빼도 박도 못하고 30개월 만땅 채우고 제대했다. 그 후 공수부대 선배 중 한 분이 서울에서 유명한 스턴맨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선배에게 연락해 따블백(군대용 여행가방이라 생각하면 된다) 싸고 다시 상경해 스턴트맨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Q: 그럼 이쯤에서 서울 왔다리갔다리한 이야기는 접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청 사람들>은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됐나
그 당시 만해도 다찌마와리(맞장 뜨는 장면)는 스턴트맨들이 다 했다. 그러니 쌈박질 신이 많은 <경찰청 사람들>은 우리가 필요했고, 그래서 누구 소개를 통해 하게 됐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해 스턴트맨들이 연기가 좀 안 된다. 그런데 난 좀 괜찮었거덩.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정도 주인공을 할 정도로 자주 출연했다. <이야기 속으로> <사건 25시> 등 당시 ‘재연프로의 황제’였다. 물론, 신창원 배역처럼 대부분이 나쁜 놈 역할이었지만.
Q: 그럼 <경찰청 사람들>을 통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무방한가.
그렇다. 그 프로가 나간 후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Q: 그렇다면 안방극장을 벗어나 영화배우로 입문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박하사탕>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3000명 정도 왔었다. 물론, 물먹었다. 하지만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뒤 <박하사탕> 측에서 좀더 작은 역할을 할 생각이 있냐고 연락이 왔다. 고민하다가 <중독>의 감독인 박영훈에게 조언을 구했다. “해!”. 그래서 그 계기를 통해 <박하사탕>의 조감독이랑 친분을 갖게 됐고, 그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게 됐다. “넌 말이야, <경찰청 사람들>의 이미지 때문에 큰 역을 주기가 좀 힘들어, 미안하다” 그 후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Q: 그럼 <경찰청 사람들> 때의 시절을 잊고 싶은가
아니다, 잊을 수는 없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기다. <경찰청 사람들>이 배출한 대스타도 현재 2명이 있고.....(순간, 기자라는 직업의 동물적인 본능을 발휘해 카메라를 끄네 마네하며 집요하게 그를 추궁했지만, 끝내 지대한은 누군지 불지 않았다.)
Q: 그럼 다시 대화모드로 돌려 묻겠다. 그래서 그 후, 좀 잘 풀렸나
그런대로 성과가 있었다. <쉬리>에 특공대로 출연도 하고, 물론, 38회 출연에 한 커트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 뒤로 (최)민식이 형과 (김)수로가 극단에 가 연기 공부를 하길 권하기에 그렇게 했고,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쳐 <파이란>에 캐스팅 됐다.
Q: 정말이지 미장원에 가서도 최소 다섯 번 가면 한 번 정도는 커트가 잘 나오는데 38회 출연에 한 커트라니...그나저나 지대한 이라는 이름 어떻게 지은 건가?
아버지가 공수부대 창설 멤버시다. 월남전을 가실 때 비행기에 쓰여 있는 ‘대한민국 공군’기를 보시고 급하신 마음에 ‘대한’을 이름으로 정하셨다. 귀환하셔서 “이름이 대한이가 뭐꼬” 그래서 다시 본명을 썼다. 한마디로 제2의 본명이다. (역시나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Q: <파이란>에서 강재(최민식)에게 연탄으로 맞을 때 아프지 않았나.
그걸 말이라고 하나! 장난 아니었다. 진짜 아팠다. 테이크가 세 번 가서 끝났는데. 원래는 한 번에도 끝낼 수 있었다. 근데, 감독이 처음에 오케이 사인을 냈는데 민식이 형이 리얼리티를 추구하다 보니 ”아! 감정이 제대로 안 나와서 그런데, 한번만 다시 가자“해서 또 찍게 됐다. (역시나, 한국 사람은 삼세번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배우라는 게 참 희한하다. 카메라 돌아갈 때는 물론 촬영 당일까지고 괜찮더만, 다음날 되니 목이 안 돌아갈 정도로 통증이 와 아주 혼났다.
Q: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많이들 그 장면 기억하더라. 알고 있는가
뭐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그 이후로 많이 인지도가 생긴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동영상을 보다보면 리얼하게 그 신이 전면 노출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Q: 인맥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어리버리 이 바닥 10년인데 그것도 안 깔아서 되겠나! 다른 거 없고 그냥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의 있게 행동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친하게 되더라.
Q: 영화 작업하다가 배신감을 느낀 사람은 있나
있지 왜 없겠나. 다만, 누구라고 말은 못하지. (좀만 꼬실링하면 넘어올 거 같아 술잔을 부딪쳤지만, 반가운 화답은 없고, 엄한 안주만 작살났다)
Q: 그럴 때 느낌은 어떠한가
응, 정말 쓰게 울어본 적이 있다. <꼬리치는 남자>에서 단역으로 출연할 때 “얘! 누가 데려왔어!”하며 호되게 야단치는데 미치겠더라. 배우고 뭐고 다 때려 치고 배추 장사하려고까지 했다. 그때부터 배우로서의 근성이 생기더라. 일명 ‘잡초 근성’. 배우는 그런 게 필요하다. 그런 게 없으면 이 바닥에서 일찌감치 떠나는 게 좋다.
Q: 그렇다면 결국 <꼬리치는 남자>가 전화위복이 된 셈인가
그렇다.
Q: 정말 배우의 길로 들어선 게 잘한 일이라 생각한 적은 언제인가
<파이란>에서 연기할 때였다. 민식이 형을 상대로 연기한다는 자체가 무척 떨렸다. “강재씨 참 재밌게 살아!” 요 한 마디가 잘 안돼 화장실에 가 연습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송해성 감독이 들은 거다. 그 뒤로 계속해서 감독이 칭찬해줬다. <복수는 나의 것>에 잠깐 출연하면서도 박찬욱 감독이 많이 북돋워주고 그래서 <올드보이>까지 캐스팅 되고. 하여튼, 배우는 칭찬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Q: 홀로 지내다가 매니지먼트사랑 같이 일하게 됐는데 어떤가
한 한달 정도 됐는데, 뭐 돈도 받고 괜찮다. 하지만 안 맞는 양복을 입은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격세지감을 많이 느낀다.
Q: 오래전부터 동고동락한 주변 영화인들과 자주 만나나
전에는 자주 보는 편이었는데 요즘엔 서로들 바쁘다 보니 얼굴 맞대고 술 한 잔 기울이기가 사실 힘들다.
Q: 18개월 된 아기가 있는 아빠인데, 배우를 전업 삼으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힘든 점은 무엇인가
우유 값 기저귀 값이다. 물론, 출연료는 전보다 많이 올랐다. 하지만 전이나 지금이나 벌이는 안 된다. 전에는 국방부 영화니 뭐니 안 가리고 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니까, 일년에 두세 작품밖에 못하니까 들어오는 수입은 별반 차이 없다. 어차피 성공하기 전까진 약자입장이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 일할 사람은 많고 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경우 부지기수다.
Q: 속이 상하겠다.
속이 상해도 어떡하겠는가? “꼬우면 출세하라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근데, 또 웃긴 건 조금 알려지고 나서 내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내면 또 “야! 너 조금 유명해지더니 건방져 졌다”한다.
Q: 요즘 젊은 배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때깔도 좋고 다 좋은데 근성이 부족하다. 어린 친구들이 기본을 무시하고 큰 역부터 하려고 한다. 외모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작은 역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나한테 못나가니까 그런 말 한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너무 쉽게 가려고 하는 모습이 잘못됐다기보다 무척 안타깝다. 하지만 부러운 것도 있다. 집에서 밀어주잖아! 달러 빛을 내서도 말이야. 나 때만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왜! 돈 잘 버는 배 안타고 그런 거 하려고 하냐” 하며 부모들이 야단쳤는데, 지금은 안 그러니 좋은 거 같다.
Q: 영화인 중에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배우가 있나
<패밀리>에서 칼잡이로 나왔던 조덕현과 민식이 형.
Q: 왜?
<쉬리>할 때 민식이 형을 처음 봤는데. 현장스텝 막내까지 이름을 다 외워 일일이 밥 먹을 때 부르더라. 내가 알고 스타들은 안 그런데. 거기서 많이 배웠다. 배우로서 영화에 임하는 자세 또한 남다르고. 하여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장난이 아니고 늘 인간적이다.
Q: 그렇다면 역으로 과대평가 받는 배우는
있~~~~~~~~~이 쥐~~이, 허나 내가 또 누구라고는 말 못하지. (역시나 싸다만 느낌의 답변으로 본 기자를 무지하게 찜찜하게 했다)
Q: 무비스트를 포함 영화 매체들에게 바라고 싶은 점이 있을 텐데
한번은 <파이란> 끝내고 스포츠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배우 생활에 대해 가감 없이 얘기해달라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 기사 제목이 ‘엑스트라 10년 지금도 얼마얼마’이더라. 아쉬운 건 이건만 부각이 됐다는 거다. 제발 좀 공평성 있고 내가 한 이야기들을 그대로 실어줬으면 한다.
Q: 배우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한 마디.
매순간 연기할 때마다 백지 도화지가 됐으면 한다. 자신을 확 버리긴 물로 쉽지 않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몰입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성공할 거라는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자신감이라 생각해도 된다. 또 기본적으로 모든 것에 있어서 ‘순수’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 아내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늦은 새벽까지 오래 동안 알고 지낸 형처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성심성의껏 답변해준 배우 지대한에게 재차 감사드린다. 부디, 앞으로 해피한 나날들만 즐비하게 대기하기를 바란다.
취재: 서대원 임지은
촬영: 이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