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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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정말 치유가 되는지 궁금했어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을 내리기보다 옥실이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될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 만에 복수에 나선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이다.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는 경주의 죽음과 관련된 ‘백상현’(변요한)을 봉고차 트렁크에 싣고 경주로 향한다. 납치를 둘러싼 소동극으로 출발한 영화는 범죄 스릴러와 가족극을 넘나들며 한 엄마의 처절한 복수로 나아간다. 김미조 감독은 사적 제재를 통쾌한 응징으로 소비하는 대신, 용서가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질문한다. 옥실이 가슴속 ‘불덩이’를 꺼뜨리기 위해 끝까지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복수 이후의 회복과 가족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2014년 한 장의 가족사진에서 시작해 10여 년 만에 <경주기행>을 완성한 김미조 감독을 만났다. 영화의 시작과 복수와 용서에 대한 고민, 첫 상업영화를 완성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넘게 품어온 <경주기행>을 관객에게 선보이게 됐다. 이 독특한 이야기의 시작은 무엇이었나.
정말 오랜 시간 준비한 작품이다. 기획은 2014년에 처음 했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21년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품어온 이야기를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다. 2014년 가족들과 경주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내가 생각한 경주는 불국사 같은 문화유산이 있는 익숙한 수학여행지였는데 실제로 가보니 굉장히 달랐다. 비도 많이 오고 스산했고, 무덤 옆에 빨래가 널려 있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도시가 다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비가 갑자기 내려 가족들이 편의점에서 2000원짜리 흰 우비를 사 입었다. 대릉원에서 흰 우비를 입은 가족들이 내 앞을 걸어가는데, 그 뒷모습이 마치 사람 하나 죽이고 내려오는 일행처럼 보였다.(웃음) 가족들에게 뒤를 돌아보라고 한 뒤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 한 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시나리오 초고는 2021년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썼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반전이 없었고 딸들보다 엄마 옥실의 독주극에 가까웠다. 장르적 요소보다는 드라마가 짙었다. 이후 개발 과정에서 살인범 백상현을 만들기 위해 여러 범죄자를 조사했고, 그 과정에서 장르적인 요소와 지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가족여행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결국 살인과 복수를 다루는 영화가 됐다. 그 안에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결국 내가 쓴 작품이기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관심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담긴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탐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많이 봤다. 사건 자체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을까’가 늘 궁금했다. 가족 이야기를 생각할 때도 그동안 벌어진 여러 안타깝고 슬픈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섞였다. ‘왜 이런 사건은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특정 사건을 의식적으로 반영했다기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관심사가 이야기에 녹아들었다.
네 모녀를 통해서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딸만 넷인 집의 막내딸이다. 어릴 때부터 언니들과 엄마를 보며 흥미롭게 느낀 것이 많았다. 특히 엄마에 관해서는 자매들이 모두 다르게 이야기했다. 나는 막내라 사랑만 받고 자랐기 때문에 언니들이 ‘엄마가 나한테 그랬잖아’라고 하면 ‘엄마가 그랬다고? 우리 엄마가?’라고 놀란 적도 있다. 그때 엄마라는 사람은 자식의 수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 특히 큰언니가 ‘장주’(공효진)에게 많이 투영됐다. 큰언니가 예전에 ‘이 아줌마를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좇으며 살았지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관계와 감정을 영화에 많이 담고 싶었다.
처음에 네 모녀는 단체 티셔츠를 입고 군인처럼 등장한다. 모두 같은 마음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행이 계속되면서 각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옥실은 끝까지 가족 티셔츠를 입고 있지만 세 딸은 백상현이 탈출한 뒤 티셔츠 위에 외투를 입고 있다. 그때부터 가족이 분열되고 각자의 내면이 갈라진다고 생각했다. 복수 여행을 통해 하나로 보였던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붕괴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 붕괴를 부정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하나인 줄 알았던 가족에게도 각자의 사연과 상처가 있고, 그것을 온전히 드러내는 순간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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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실은 백상현에게 “너를 용서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고 말한다. 용서가 곧 치유와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익숙한 결말을 거부하는 대사처럼 들리더라.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옥실을 용서와 화해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복수하게 할 것인지 고민했을 것 같은데 결국 사적 제재를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나. 나는 그 심리가 궁금했다. 나에게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준 사람을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하면 정말 모든 것이 해결되고 치유되는지도 궁금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유가족 심리상담센터 센터장님과 인터뷰도 했다. 사적 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복수한다고 누군가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그런데도 끝까지 용서하지 않고 자기 안의 불덩이를 꺼뜨리기 위해 끝까지 가보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을 내리기보다 ‘옥실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를 보고 싶었다. 그 과정을 통해 옥실이 자기 안의 불덩이를 해소하고 딸을 진짜로 떠나보내며 이별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복수를 끝낸 뒤 옥실이 다시 딸을 마지막으로 배웅하지 못했던 날로 돌아가는 것인가. 복수와 회복을 어떻게 연결하고자 했나.
어떤 일은 끝까지 가야 끝이 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는데 이야기하지 않거나 끝장 토론을 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일이 있지 않나. 옥실에게는 딸을 죽게 만든 범인을 용서하는 것이 과연 회복일까 하는 의문이 있다. 옥실이 ‘내 마음속에 불덩이가 있는데 어떻게 사느냐’고 말한다. 그 불덩이를 꺼뜨리려면 옥실이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옥실은 복수를 끝까지 이행한 뒤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 마음속에 미련으로 남은, 딸을 마지막으로 배웅하지 못했던 날이다. 끝까지 간 뒤에야 불덩이가 조금 식고, 그 식은 마음으로 딸을 진짜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옥실은 이후 법적 처분도 받는다. 그런 방식으로 복수와 회복을 연결했다.
마지막 복수의 방식으로 ‘교수형’을 택한 데에도 의미가 있나.
우리나라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으니 공권력이 하지 못한 처벌을 옥실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하려 할지 고민했다. 총은 어울리지 않았고 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칼은 상대와 손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가야 하는데 옥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딸의 죽음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공적인 시스템을 대신해 옥실이 자기 방식의 판결을 내리고 싶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복수 과정도 일부러 어렵게 묘사했다. 복수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옥실이 백상현을 힘겹게 업고 산을 오르고 나무에 매다는 과정도 어렵고 고통스럽게 표현했다.
일반적인 복수극과 달리 범인을 잡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붙잡은 뒤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구조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대로 된 장르적 복수극으로 만들려면 한 사람이 복수하는 이야기가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인물들로 구성돼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이며 백상현을 이겨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나름대로 계획은 세웠지만, 계획과 실제 실행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세운 계획은 모두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때부터 복수 계획이 계속 흔들리고 관객도 ‘이 사람들이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감정을 품게 만들고 싶었다.
소동극과 범죄물, 가족극을 오가면서도 무거운 복수극 안에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장르의 균형은 어떻게 잡았나.
이 영화가 나라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 내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모든 것을 비극적으로만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다. 아버지는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기신다. 그런 성향이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의 문화와 분위기가 됐고 내게도 영향을 미쳤다. 가족이 복수하기 위해 떠났다고 해서 복수에만 몰두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네 모녀가 복수를 향해 돌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투닥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웃음을 계산해서 넣었다기보다 이 인물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백상현의 잔혹함을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 것인가도 중요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했나.
백상현이 가장 만들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다른 인물은 주변에서 쉽게 참고할 수 있지만, 백상현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가 할 법한 행동과 말을 만들어야 해서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여러 충동형 범죄자의 특성을 백상현에게 응축했다. 다만 그렇게 할수록 영화가 지나치게 잔혹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경주기행>에 범죄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요소는 있지만, 범죄자가 얼마나 극악무도한지를 공들여 묘사하는 것이 영화의 주제에 도움이 되는지는 따져봐야 했다. 그 결과 백상현이 해장국집 주인과 경찰을 살해하는 장면도 촬영했지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쪽을 택했다. 경주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처음부터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백상현의 잔혹함과 장르적 긴장감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영화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목표에 맞게 어디까지 조절할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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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녀의 캐스팅에는 약 1년이 걸렸다고. 배우들을 어떻게 모았나.
이정은 선배님은 뮤지컬 <빨래> 때부터 정말 좋아했다. 내가 영화 <오마주>(2021)에 스크립터로 참여했을 때 주인공인 선배님께 ‘나중에 선배님을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를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2년 뒤 실제로 시나리오를 드렸고 흔쾌히 하고 싶다고 하셔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공효진 선배님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을 20번 넘게 본 것 같다. 장주가 원톱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에 출연해주실지 걱정했는데 처음에는 일정 문제로 거절하셨다. 사실 이정은 선배님을 제외한 배우들이 처음에는 모두 일정이 맞지 않아 거절했다.(웃음) 그런데 시나리오는 좋지만 일정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러면 일정만 맞으면 가능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사 대표님과 상의한 뒤 다시 제안했다. 공효진 선배님도 거절한 뒤 누가 캐스팅됐는지 몇 차례 물어봤다고 하더라. 박소담 배우도 비슷했고 이연 배우에게는 장문의 다이렉트 메시지도 여러 차례 보냈다. 당시에는 이분들이 아니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했다. 결론적으로 정말 운이 좋았다.
백상현 역의 변요한은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노개런티로 참여한 사실도 화제가 됐다.
백상현 역을 가장 늦게까지 찾았다. 영화 중반에 나타나 극을 완전히 전환하고 네 모녀의 엄청난 에너지와 대적할 배우가 필요했다. 애초에는 변요한 선배님을 생각하지 못했다. 출연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후보로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제작사 대표님이 변요한 배우는 어떠냐고 물었고 그 순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싶었다. 선배님은 이 시나리오와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흔쾌히 참여해주셨다. 노개런티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기 때문이다. 미팅 때도 목발을 짚고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였다. 실제로 다리를 절고 계셔서 백상현도 다리가 불편한 인물로 설정했다. 촬영 때도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계속 뛰고 액션을 해야 했다. 다음에 다시 작업하게 된다면 극악무도한 사람이 아니라 멋진 캐릭터로 이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두 번째 장편이자 첫 상업영화다. 전작보다 큰 규모의 현장을 경험하며 감독으로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무엇인가.
독립영화는 친한 스태프들과 소규모로 작업해 서로의 실수를 이해해주는 부분이 있었다면 상업영화는 이해보다 책임의 영역이 더 강했다. 처음 4회차까지는 한 컷 한 컷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이 내려오는 모양이나 옥실의 머리카락 같은 작은 부분에 집착하며 한 컷을 세공하듯 찍었다. 그런데 현장 편집본을 보면서 영화는 한 컷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조각이 모여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독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한 컷만 세공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잘 조합해 큰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꾼 뒤부터 조금 편안해졌다.
후반 작업까지 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작업 과정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경주기행>을 완성하기까지 감독으로서 타협하지 않으려 한 지점은 무엇이었나.
예전에 배우와 스태프가 고생하는 것을 보면 죄송해서 한 번 더 찍고 싶어도 그냥 오케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단편영화를 편집하면서 그런 선택을 굉장히 후회했다. 그 경험 뒤에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영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1분, 10분 동안 느끼는 미안함을 참으면 10년, 20년 뒤의 김미조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 너무 힘들어서 타협한다면 결국 후회할 것 같았다. <경주기행>을 만들며 세운 목표가 세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드는 것, 두 번째는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 세 번째는 이 작품이 다음 작품으로 가는 발판이 되는 것이었다. 세 가지 목표를 이루려면 순간순간 타협하지 않아야 했다.
<경주기행>의 인물들은 큰 상실과 고통을 품고 있지만, 영화는 그들을 비극적인 존재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비극적인 인물을 그릴 때 창작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가 있나.
나는 비극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다룰 때 단순히 ‘이 사람들은 비극적이고 슬프다’에서 끝내고 싶지 않다. ‘비극적이지만’이라는 말 뒤에 한마디를 더 해주고 싶다. 그것이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미치는 영향은 크고, 글을 쓰다 보면 캐릭터에게 굉장히 깊이 몰입한다. 인물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지면 나 역시 견디기 어려워진다. 인물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무책임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겪고도 계속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미칠 것 같다.(웃음) 몸은 하나인데 가끔은 나 자신이 여러 명으로 분리됐으면 좋겠다. 김미조 1, 김미조 2, 김미조 3이 공장처럼 계속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다스러운 사람이라 꺼내고 싶은 이야기와 열광하는 이야기가 많다. 재미있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에게 링크를 보내주고 싶지 않나. ‘나는 정말 재미있는데 같이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정말 힘들지만 완성된 작품을 큰 스크린에서 볼 때의 쾌감이 모든 것을 상쇄한다. 힘든 과정을 뚫고 결국 해냈다는 카타르시스가 굉장히 중독적이다. 이미 그 감각에 중독된 것 같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나. 여성 중심 서사를 계속 이어갈 생각인지도 궁금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여자 교도소 이야기도 있고 1970년대 복부인 이야기도 있다. 좀비물에도 관심이 많고 <매드맥스>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의 이야기나 SF도 만들고 싶다. 여성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내가 여성이고 여성들이 많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전작 <갈매기>(2018)에는 당시 내가 천착했던 주제를 담았고 <경주기행>에서는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성의 이야기만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지금 내 관심사와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캐릭터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는 얼마든지 더 확장하고 싶다. 한 번에 두 계단을 오르기보다 한 번에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고 있다.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26년 9월 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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