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드디어 나에게 왔다, 내 안의 고독을 꺼낼 시간” <파반느> 문상민 배우
2026년 3월 16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드라마 <슈룹>(2022)으로 존재감을 각인한 후 최근 <은애하는 도적님>에서 영혼 체인지 사극이라는 고난도 장르까지 섭렵하며 대세로 떠오른 문상민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옷을 입었다. 영화 <파반느>에서 그가 맡은 ‘경록’은 수려한 이미지 뒤에 가려진 불안정하고 서툰 내면을 지닌 인물로 청춘의 표상 그 자체다. 문상민은 <파반느>를 처음 접했을 때, “드디어 나한테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내 안의 고독함을 꺼낼 때가 왔구나 싶었다”는 말로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다. 원작의 염세주의적 공기를 자신만의 직관적이고 솔직한 에너지로 변주해낸 그는, 스크린 속에서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활짝 웃으며 우리가 잊고 지낸 청춘의 뜨거움을 소환한다. 모델 출신의 압도적인 피지컬 뒤에 숨겨진 슬픈 눈빛과 서툰 진심, 배우 문상민이 <파반느>를 통해 전하는 고독과 성장의 시간 을 들여다본다.

어느덧 2년 전 촬영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로 공개됐지만, 시사회 등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큰 스크린으로 보니 어떻던가.
서툴러 보이더라. (웃음) 정돈되어 있지 않고 많이 투박한데, 대신 진심은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성 누나와 요한 형이 없었다면 과연 이 연기가 납득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타리 같은 형과 누나를 보며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구나’ 싶어 감사했다.

영화는 처음인데, 이렇게 좋은 작품이라니! 처음 제안받고 어땠나, ‘드디어 나한테 왔다!’ 뭐 이런 기분이 들진 않았는지. (웃음)
정말 그랬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드디어 나한테 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것 같다.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고독함을 꺼내 보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경록이라는 친구가 나에게 딱 적합하다는 확신이 섰다. 보통 시나리오를 받으면 쭉 앉아서 읽는 편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연기를 해보게 되더라. 거실에서 상상하며 대사를 뱉어보는데, ‘어? 나한테서 보지 못한 느낌인데?’ 싶었다.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이 시나리오가 나한테 어떻게 왔지?’ 하는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 첫 영화 제안이라 그만큼 욕심이 났던 것 같다.

평소 갖고 있다는 그 ‘고독함’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선택’에서 오는 고독함인 것 같다. 항상 생각하기를, 스무 살 중반 즈음 되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감에 따라 경험이 쌓이고 그만큼 저절로 성숙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되어보니 여전히 모든 게 서툴고 여러 면에서 혼란스럽더라. 혼자만의 방황을 하며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지?’, ‘이건 말할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속으로 삼키곤 했었다. 그래서 경록이 “고민이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넋두리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공감이 되면서 그 대사가 그냥 나처럼 느껴졌었다. 내 말투와 말맛을 살렸는데 영화를 본 지인이 딱 알아봐서 배우로서 기분 좋았다.

원작 소설 속 경록은 상당히 염세주의적이다. 영화화된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
원작의 경록은 염세주의적이고 말수가 적으나 영화 속 경록은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말이 많고 또 텐션도 높은 편이다. 이런 점이 원작과는 멀어질 수 있겠지만, 내가 자신 있는 부분은 ‘평범한 20대 남자’라는 점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말이 빨라지기도 하고, 좋으면 좋고, 슬프면 슬프고, 이런 청년 ‘경록’을 단순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매 순간 하나하나 진심을 담아 솔직하고 직관적으로 연기하자고 다짐하며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경록은 ‘미정’(고아성)에 대해 “불쌍하다”고 표현하면서도 그녀를 마음에 담게 된다. 왜 미정이었을까.
경록의 대사 중에 "불쌍하잖아요"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나는 경록이 그녀를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동정이 아니었다. ‘요한’(변요한)에게는 본심을 들키기 싫어 둘러댄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면 눈을 뗄 수 없지 않나. 떨어져 있어도 계속 그 사람을 향하게 되는데, 경록은 어느 순간부터 미정을 따라다니고 또 웃음을 보이고 있다. 경록에게 미정은 처음으로 미소를 짓게 하고 다양한 표정을 짓게 하는 인물이었을 거다.

극 중 보드를 타고 현대무용도 선보였다. 어떻게 준비했나.
무용과 보드는 경록이 좋아하는 두 가지 일인데, 일종의 오브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무용은 단순히 동작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경록의 마음 상태를 대변해준다고 느꼈다. 그런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보드는 대역 분의 도움을 받으며 적절히 섞어서 촬영했다.

‘요한’과 예기치 못한 키스씬이 있다. 촬영 당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웃음)
사실 이 장면에 이렇게 많은 분이 주목하실 줄은 몰랐다.(웃음) 정말 다들 너무 진지하게 임했고, 씬 자체가 지니는 무게감이 있어서 찍으면서도 긴장감이 있었다. 극의 정적을 깨는 필수적인 요소였기에 단순히 가벼운 뽀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한 형이 "한 번에 끝내자"고 리드해 주셔서 과감하게 갔다. 키스 후에 가글을 하거나 ‘쪽’ 하는 소리를 내는 것 등은 모두 현장에서 나온 애드리브였다.

미정이 떠난 후 경록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세라’(이이담)와 모텔행에 납득되지 않는다는 비난(?)의 시선이 있기도. (웃음)
경록이 무너지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미정이 떠난 뒤에 그녀만을 기다리고 찾는 모습은 오히려 너무 판타지 같지 않나. 모텔씬 직전, 클럽에서 경록은 평소엔 추지 않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춤을 춘다. 그렇게 첫 번째 무너지고 모텔에서 두 번째, 그리고 LP바에서 나와 쓰레기 옆에 앉아 울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바로 그 장면(쓰레기 옆 울음 씬)에서 이종필 감독이, 당신의 눈물 연기를 많이 기다려 주었다고.
LP바 내부 촬영 때와 밖에서 무너지며 우는 장면의 촬영 날이 달랐다. 바 안에서는 눈물이 툭하면 났는데, 막상 밖에서 찍으려니 눈물이 안 나더라. 계속 복기해도 마음처럼 안 돼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오셔서 "상민아 괜찮아, 눈물이 중요한 게 아니야. 진심으로 느끼고 하면 돼. 몸으로 표현해도 되고 다 열려 있으니 편하게 시간 줄 테니까 충분히 느껴봐"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앉아 있는데 마음속 무언가가 툭 하고 무너지는 기분이 들더라. 아무 쓸모가 없어진 존재라는 느낌이 들면서, 마치 내가 옆에 있는 쓰레기처럼 되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이 나도 보지 못했던 내 안의 나를 끌어내 주셨는데 정말 신기했다.

‘미정’ 역의 고아성과의 호흡은 어땠나.
누나에게 너무 감사한 건 나를 후배 문상민이 아니라 '경록' 그 자체로 봐줬다는 점이다. 첫 만남부터 미정으로서 나를 대해줬다. 누나의 눈빛을 보면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게 느껴졌고, 그게 경록을 빛나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또 누나가 나오지 않는 장면이라도 항상 멀리서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아이슬란드 장면이다. 감독님과 아성 누나, 나 이렇게 셋이서만 촬영을 갔는데 스태프 없이 셋이서만 찍다 보니 정말 미정과 경록 둘만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이 촬영 콘티를 일주일 치나 다 그려오실 정도로 열정적이셨다. 아이슬란드의 마지막 장면도 원래는 없던 부분이었다. 그날 밤에 촬영을 다 끝낸 후 감독님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다가 ‘마지막 경록은 어땠을까’ 하며 즉흥적으로 찍어 본 거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느좋이다, 느낌 좋다’ 하시며 미정을 불러서 같이 찍었고, 거기서 ‘사랑해’라는 대사도 추가해서 만든 장면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사랑해 라는 대사가 없었다.

후반부 경록이 버스에서 내려 미정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비하인드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최애 장면 중 하나인데 찍으면서는 걱정도 참 많았다. 겨울에 찍어야 해서, 모든 촬영 종료 후 3개월이나 지나서 다시 모여 촬영했거든. 평소보다 테이크를 꽤 많이 갔던 장면인데 다행히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 초반 촬영 때보다 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고, 그만큼 나에게는 중요했던 장면이다.

이번 작품을 하며 가장 컸던 고민은 무엇이었나.
감독님과 제작사, 그리고 아성 누나가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라는 걸 알고 참여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진심과 나의 진심의 농도를 맞추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내가 그들의 깊은 진심을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고, 나를 믿고 캐스팅해주신 것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감독님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시길래 ‘제가 농도를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더니, 감독님이 ‘그 대사를 지금처럼 하면 돼. 네 진심을 잘 아니까 지금처럼만 해주라고 하셔서 고민이 싹 풀렸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슈룹> 이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요즘 ‘대세’ 같기도. (웃음)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나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
대세라기보다 ‘반반세’ 정도라고 생각한다. (웃음) 이제는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겼다. 예전에는 내 것, 나만 보였다면 이제는 상대역이 보인다. 또 책임감이 생기면서 더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걸 느낀다. 얼마 전 식당에서 40대 남성분이 나를 계속 보길래, ‘아, 나를 알아보시는구나’ 싶었다. 화장실 가는데 그 분이 “<파반느>가 너무 좋았다"며 감격해하시는 걸 보고 울컥하더라. 누군가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했다는 것 자체로 정말 행복했다.

가벼운 질문 하나! (웃음) 요즘 문상민의 가장 큰 ‘선택의 고민’은 무엇인지,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매력 포인트는 뭐라고 보나.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은 ‘슬렌더로 갈 것인가, 덩치를 키울 것인가’였다. 배우에게 이미지는 정말 중요한 선택인데, 고민 끝에 일단은 슬렌더로 가기로 결정했다. (웃음) 재차 확인해 봐도 지금의 나에게는 여리여리한 느낌이 더 괜찮을 것 같아 혼자 연구하고 있다. 매력 포인트는…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러운데, (웃음) 청춘 문짝남이라고 말씀들 해주시더라.

<파반느>는 문상민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20대 중반의 내 얼굴을 온전히 담은, 행복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파반느>를 통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작품을 만났구나, 내 얼굴을 내가 잘 알고 있구나’ 하는 믿음과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도 도전적인 기세를 이어가면서, 요한 형의 그 깊은 눈빛을 닮고 싶어 하는 후배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싶다. 배우 문상민뿐만 아니라 인간 문상민으로도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6년 3월 16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