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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아껴온 갈망, 고아성이 마주한 첫 멜로 <파반느> 고아성 배우
2026년 3월 10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를 찍은 건지, 한 시절을 진하게 보낸 건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내 진짜 모습을 담을 수 있어 의미가 깊어요.” 아역 시절 영화 <괴물>(2006)로 강렬한 눈도장을 찍은 뒤 쉼 없이 달려온 고아성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생애 첫 멜로 영화 <파반느>를 내놓았다. 10년 전부터 원작 소설을 아끼며, “영화 중에 최고는 사랑 영화”라고 믿어온 그녀에게 이번 작품은 오랜 갈망을 해소해 준 소중한 선물이다. 외모라는 편견의 굴레에 갇혀 존재감을 지우며 살아온 ‘미정’(고아성)으로 분한 고아성. ‘경록’(문상민)이라는 빛을 통과하며 세상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동력을 얻는 여정을 조용하지만 단단한 연기로 증명해 냈다. <파반느>에서 보여준 배우들과의 호흡에 200점을 주고 싶다며 작품을 향해 지극한 애정을 드러내는 고아성을 만났다. 5월 첫 도전을 앞둔 연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영화 <파반느>를 본 시청자들이 여운이 짙다고 먹먹함을 표하더라. 처음으로 멜로를 선보인 소감은.
여운 짙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여러 반응을 살피며 공감하는 중이다. 가장 행복했던 리뷰는 “나의 청춘을 생각하게 했다”는 글이었다. 현재 청춘을 지나는 분들과 그 시절을 지나온 분들 모두에게 청춘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아 행복하다. 사실 평소에도 영화 중에 최고는 사랑 영화라고 생각해 왔고, 워낙 멜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만약 멜로를 한다면, ‘혼자 있을 때도 든든하고 씩씩해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파반느>는 이런 나의 소망을 완벽히 충족시킨 작품이다.

멜로 영화가 최고라니! 실제 좋아하는 영화가 궁금하다.
극 중 거론된 영화는 이종필 감독님 취향이고, (웃음) 내 취향은 <첨밀밀>(1996)이다. 감독님께서 참고할만한 고전 영화나 <피셔킹>(1991), <사랑한다면 이들처럼>(1990) 같은 작품들을 소개해주기도 하셨다.

처음 리딩 때 눈물을 흘렸다고. (웃음)
큰 키의 문상민이라는 배우가 오랫동안 상상했던 경록의 모습으로 실제 등장했을 때, 나는 키가 작은 편이라, 신장에서 오는 그 불균형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혼자 연습했던 대사를 함께 주고받으며 ‘너였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혼자 연습한 건 아니다, 경록의 대사는 이종필 감독님이 대신 쳐주셨다. (웃음) 정말 상민 씨는 경록 그 자체인 아주 새로운 눈빛과 얼굴을 가졌더라.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정의 첫 등장씬에 준비를 많이 했을 것 같더라.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향후 스토리를 예고한다는 점에서 생각이 많았을 것 같다.
이종필 감독님은 배우 출신이라 배우를 깊이 이해하는 분이다. 그래서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누었고, 사실 감독님이 잘 만들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영화 <탈주>를 보면서도 ‘규남’(이제훈) 등장씬을 보고 감탄했거든. 별다른 서사 없이도 그의 탈주 의지가 느껴지더라. 나 역시 미정의 첫 등장에 기대감을 갖고 바라봤던 것 같다.

‘미정’을 미생물 같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감독님이 붙여 주신 일종의 대명사 같은 표현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라는 의미다. 백화점 지하에서 일하고 홀로 도시락을 먹으며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하는, 그저 세상의 시선에서 지워진 채 사는 게 편안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미정의 ‘미생물 같은 눈빛’을 장착하는 게 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미정이 경록에게 서서히 마음을 여는 감정선은 어떻게 잡아 나갔나.
서로에게 물에 젖듯이 서서히 스며들었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잘해줘요?”라는 미정의 물음에 경록이 “그러면 안 돼요? 그쪽도 나한테 잘해주면 돼요”라고 답하는 부분에서, 내 안의 어느 부분이 건드려지면서 깊이 몰입되더라. 초반 열린 문틈 사이로 연주되는 파반느를 감상할 때의 떨리는 마음, 밤새 수다를 떨고 출근길에 마주한 선명한 경록의 잔상 등이 여전히 내 안에 소중하게 남아 있다. 사랑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별을 택하기도 한 미정이지만, 결국 경록에게 받은 빛 덕분에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소설 원작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미정이 못생긴 여자로 나온다. 각색되기는 했지만, 이런 미정의 외양이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더라. 신경 쓴 지점은.
지금의 미정을 찾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원작 소설을 출간 당시 읽었기에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외모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각색된 시나리오에서는 그 부분이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특수분장으로 강한 인상을 주기보다 미정의 눈빛과 미세한 요소의 변화에 집중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간 쌓아온 ‘보여지는 직업’의 노하우 그러니까 퍼스널 컬러 등 좀 더 (나를) 예쁘게 보이게 하는 포인트와는 오히려 역행하는 지점을 찾아갔다. 입었을 때 엉성해 보이는 기장감의 바지, 살짝 균열이 간 치아 등이 그렇다. 영화 <괴물>때 부터 인연이 있는 송종희 분장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올드보이>부터 넷플릭스 <마스크걸>까지 특수분장의 대가심에도 이번에는 아주 은근한 터치만 하기로 했다. 또 미정의 걸음걸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체중을 증량한 부분도 있다.

이번 현장에서 본인만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냈다고 들었다. 특히 공간에 공을 들인 이유는.
평소 공간에서 주는 힘을 많이 받는 편이다. 또 미정에 대해 그만큼 자신이 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미정의 집에는 거울이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화장할 때도 화장실에서 할지 고민하다가, 옷장 속에 숨겨둔 거울을 보면서 하는 설정이 어떨까 싶었는데, 감독님이 콘티부터 반영해 주셔서 정말 감동했다. (웃음)

미정이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에서 책을 읽는 듯한 독특한 톤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잡았는지.
유일하게 이종필 감독님과 이견이 있던 장면이었다. 촬영 전 우연히 한국 영화 <바보선언>(1983)을 접했는데, 영화 속 어린아이가 또박또박 읽는, 굉장히 문어체적인 내레이션이 인상 깊더라. 그래서 나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감독님은 아니라고 하셔서, 결국 문어체적이면서도 감정이 섞인 중간 지점으로 톤을 잡았다.

극 중 미정과 경록의 가교 같은 ‘요한’ 역의 변요한과도 첫 호흡인데 어땠나. 세 주인공의 앙상블이 훌륭하던데 자평한다면. (웃음)
왜 이제야 만났나 싶을 정도로 훌륭했다. 극 중 요한처럼 외줄을 타는 듯한 연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감탄했고,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 문상민, 변요한 세 배우가 나이도 경력도 다르지만 주파수가 딱 맞는 듯한 짜릿한 앙상블을 느꼈다. 정말 200점을 주고 싶다.

방황과 찬란함, 청춘의 아름다움을 잘 담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좋아하는 장면을 꼽는다면.
청춘의 아름다움을 담은 장면으로 떠오르는 건 중·후반부, 경록이 대학교에 간 후 세 사람이 새벽녘 바람을 맞으며 걷는 장면이다.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말자”는 영화 <시네마 천국>(1988)의 대사를 하는 요한이 하는데, 청춘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나 역시 잘 알기에 마음이 뭉클하더라. 사실 어떻게 리액션할지 고민했던 장면인데 요한 배우 덕분에 저절로 감정이 우러나왔다. 또 하나는 엔딩이다. 정확히 설명되진 않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꿈인지, 요한의 소설 속 이야기인지 모를 묘한 여운을 남긴다. 스태프들과도 이 엔딩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먼저 간 영혼을 다시 만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 먼저 보낸 소중한 이들이 있기에 그들을 만날 때 어떤 얼굴을 할지 생각했었다.

아이슬란드 오로라 촬영은 당신과 문상민, 그리고 이종필 감독 세 사람만으로 촬영했다고.
이종필 감독님이 영화 <탈주>(2024)로 유럽을 방문하셨을 때였다. 마침 2주 정도 시간이 비니, 내가 상민 씨와 함께 아이슬란드로 와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다. 물어보니 상민 씨는 스케줄 외에는 해외여행 경험이 아예 없다고 하길래, 내가 나름 ‘프로페셔널하게 이끌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웃음) 게다가 상민 씨는 장롱 면허고 감독님은 아예 면허가 없으셔서, 결국 내가 두 분을 태우고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운전하며 촬영 스팟을 찾아다녔다. 영화 속에서 걸어가는 경록과 미정은 우리가 서로 직접 찍어준 모습들이다. 당시 기장님이 창문을 열어 오로라를 보라고 하셨고, 비행기 안에서 기적처럼 오로라를 보기도 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종필 감독과의 첫 작품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인데, <파반느>는 그보다 앞서 10년전부터 이야기해 왔다니 그 인연이 궁금하다. (웃음) <파반느>로 다시 만난 감독님에게 변화가 좀 있던가.
감독님의 첫 영화 <전국노래자랑>(2013)에 출연했던 류현경 배우와 절친한 관계다. 덕분에 감독님을 일찍부터 알고 지냈었고, 2017년쯤 제작사가 정해지기도 전부터 <파반느>를 하자고 하셨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후 다시 만난 감독님은 훨씬 멋있어지셨고 마치 대학교에 들어간 경록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감독님과 친하지만, 둘만 있으면 아직도 어색한 부분이 있다. (웃음) 감독님들과 엄청 친하게 지내는 다른 배우들을 보면 살짝 질투가 날 때도 있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고유의 속도감으로 다가가고 싶은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의 단편 시절 감성을 워낙 좋아해서 전반적으로 신뢰가 두텁다.

배우로서 소중한 것, 그리고 일상에서 소중한 것은 무얼까.
배우로서는 마음이 잘 맞는 배우를 만나 앙상블이 잘 맞을 때이다. 마치 주파수 맞는 것 같은 순간의 짜릿함이 있다. 실제로 세 자매이기도 하고,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에서도 세 친구의 관계가 너무 좋았다. 이번 <파반느> 역시 세 인물의 구도와 관계성에서 행복감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라디오 북클럽’이라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 얼마 전 이종필 감독을 개인적으로 모신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인상 깊다.

배우 고아성에게 이번 작품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또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파반느>는 내 한 시절을 오롯이 담은 ‘진짜’ 같은 느낌이다. 내 진짜 모습을 영화 속에 담을 수 있어 그 의미가 크다. 평생 눈에 띄지 않으려던 미정이 진정한 자기를 알아봐 주는 이들로부터 위안을 얻었듯, 나 또한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준 동료 배우와 감독님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 씩씩하게 살아갈 미정을 믿으며, <파반느>라는 작품을 행복하게 보내주고 싶다. 차기작은 5월에 연극 <바냐 삼촌>으로 뵐 것 같다. 처음으로 하는 연극이고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 중이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6년 3월 10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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