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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펙트는 자연의 현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 <엘리오> 이재준 디렉터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픽사 신작 <엘리오>의 주인공 ‘엘리오’는 우주에 매료된 소년. 끊임없이 외계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파도가 일렁이는 해변가에서 모래밭에 메시지를 쓰며 ‘제발 자신을 납치해달라’고 비는 엘리오. 소년의 뿌리 깊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바다와 모래 같은 자연은 화면에 1~2초 빠르게 지나가고 말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 뒷단에서는 수천대의 컴퓨터가 사용된다. 이 작업을 담당하는 이가 바로 이펙트(FX) 테크니컬 디렉터다. ‘이펙트는 자연의 현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소개하는 픽사 스튜디오 이재준 이펙트 테크니컬 디렉터를 화상으로 만났다. <엘리오>가 표현하려고 했던 인간적인 성장과 외로움의 극복이 한국 관객에게 꼭 다가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한다.

담당한 파트와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지.
담당한 파트는 이펙트(FX)이고, 나는 FX 테크니컬 디렉터이다. <엘리오>에서 넓은 바다를 주로 작업했고, 물 작업이 먼저 끝나서 나중에는 모래 작업도 하게 됐다. 물 작업, 모래 작업 이렇게 팀을 나눠서 하지는 않지만,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 주로 하나의 작업을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펙트 파트는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어떤 방식으로 따라가나.
시나리오는 전적으로 감독님의 비전에 달려 있고, 영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바뀐다. 우리가 얼마만큼 표현할지 감독님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더라도, 어느 감정을 어떤 이펙트로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을지 계속 보여드린다. 그럼, 감독님이 ‘이 정도 구현할 수 있구나’ 하며 시나리오를 변경해 나간다.

바다와 모래 등 이펙트 작업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이펙트 분야에서는 물 작업을 어려워한다. 다뤄야 할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다. 1~2초 보여지는 하나의 화면을 만들기 위해 뒷단에서는 수천대의 컴퓨터가 사용된다. 내게도 이번 물 작업은 도전이었다. 또 엘리오가 해변가에서 교신할 때 모래를 자세히 보면 아주 디테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래 작업의 포인트는 수백, 수천만에 달하기 때문에 최대한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매우 무거운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 엘리오가 모래밭에 쓴 외계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경우, 글씨체와 형태는 수많은 피드백을 통해 완성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상영된 버전은 아마도 한글로 글씨가 써졌을 텐데, 그건 내가 쓴 거다. (웃음) 픽사에는 워낙 다양한 국가에서 온 아티스트가 있어서 각 나라에 맞게, 지원자를 받아서 각 나라 글자로 썼다. 다만 글자는 다르되 아트적인 비전에 맞게 좀 더 귀엽게 쓰려고 노력했다.

바다와 모래 등 자연이나 배경을 구현하는 것과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구현하는 것은 다른 접근일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 또 이펙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캐릭터를 작업하는 건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감정을 연기하는 것일 수 있다. 이펙트는 자연의 현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거라 하겠다. 예를 들어 거친 파도는 감정이 격해진 상황을, 캐릭터의 슬픔이나 고뇌를 표현할 때는 잔잔한 바다나, 잔잔하게 울렁이는 물을 가지고 표현한다. 해당 시퀀스에서 감독이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하길 원하느냐가 우선이다. 이에 베이스를 두고 이펙트를 다룬다. 캐릭터 작업과 이펙트 작업의 공통점은 결국 둘 다 감정을 다룬다는 점이다.

이펙트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겠다. <엘리오>의 어느 장면에서 어떤 효과를 의도했는지 예를 든다면.
엘리오가 커뮤니버스에서 쫓겨나 바다로 떨어질 때는 엘리오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아주 거친 바다, 큰 파도가 일어나도록 작업했다. 이후 엘리오가 해변으로 밀려 나왔을 때는, 비록 거짓으로 지구 대표라는 직함을 달게 됐다가 박탈당하면서 느낀 상실감을 표현하고자 잔잔한 파도를 사용했다. 시뮬레이션은 물리 기반이라 파도의 크기나 중력 등의 수학적인 부분을 다 계산하지만, 이런 수치를 떠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현실보다) 좀 더 세게 또는 좀 더 잔잔하게 가져갔다.

이전 <엘리멘탈>, <인사이드 아웃2> 제작진이 <엘리오>도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작들과 비교해서 이펙트 파트에서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부분이 있을까.
<엘리멘탈>과 <인사이드 아웃2>는 워낙 대단한 작품이라… (웃음) 넓은 바다와 디테일한 모래는 매번 어려운 작업이라, 기존에 해왔던 이펙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어떤 형태로도 만들 수 있는 메타볼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이 기술을 활용하여 처음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바로 엘리오가 커뮤니버스에 처음 갔을 때 만난 찰흙으로 만든 것 같은 귀여운 캐릭터다.

어떤 경로로 이펙트 테크니컬 디렉터가 됐는지. 궁금해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고창에서 자라서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처음 본 영화가 <라이언 킹>인데, 큰 화면에서 본 이 영화가 너무 가슴에 남는 거다. 그때부터 애니메이터를 꿈꾸게 됐다. 아주대학교 미디어학과에 입학에서 모델링, 라이팅, 이펙트 등 전반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수학이나 물리를 좋아해서 이펙트라는 분야가 이런 역량을 좀 더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더 알아보고자 했다. 이펙트를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작업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그후 미국에 와서 석사과정을 하며 전문적으로 이펙트를 공부하게 됐다.

픽사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비주얼 아티스트라면 픽사에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지 ?았을까. 지금이야 워낙 그래픽을 잘 만드는 회사가 전 세계 도처에 있고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많지만, 픽사에는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이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든 아티스트, 감독님과의 작업을 꿈꾸다가 2014년 대학원을 마치고 LA에서 7~8년 정도 경력을 쌓을 무렵 우연치 않게 픽사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최종 목표는 무얼까.
음… 내가 작품 전체를 이끌거나 연출하는 건 아니지만, 픽사의 작품 하나하나는 단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전 세계 애니메이션의 한 페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언제까지 픽사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웃음) 있는 한 최대한으로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

픽사는 업계의 꿈의 직장이 아닌가 한다. 한국인 아티스트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또 픽사에 입사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가 있다면.
픽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들에게서 많이 받는 질문인데 왕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력을 쌓으면서 좋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월등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마침 시니어레벨일 때 <엘리멘탈>이 론칭했고 덕분에 합류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인 아티스트는 10~15명 정도 되는 것 같다.

픽사 작품 중 최애를 꼽는다면.
픽사 팬이라 픽사 작품을 좋아하고 그중 어렸을 때 봤던 <월-E>를 정말 좋아한다. 대사를 하지 않고, 그러니까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느낀 작품이다. <니모를 찾아서>와 <월-E>를 연출한 앤드류 스탠튼 감독이 현재 작업 중인 <토이스토리 5>에서 물 작업을 서포트하기도 했다.

AI의 대두가 애니메이션과 그 아티스트에게도 영향을 미칠 거로 예상되는데 AI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재는 AI를 사용하지 않고 있고, AI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 직업과 포지션에서 AI로 인해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거로 예상한다. AI의 발달은 아티스트로서는 강점이 될 것 같다. 혼자 할 수 없는 많은 작업량과 거대 자본이 필요한 화면 등 이펙트 작업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다만 픽사 내에서도 성공한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이 있듯이, AI도 마찬가지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콘텐츠의 퀄리티가 달라질 것 같다.

순수하게 국내 기술로 만든 <킹 오브 킹스>가 북미에선 먼저 개봉해서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성적을 내었고, 최근에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공동 연출자인 매기 강도 한국인이다. 애니메이션에 있어 한국인의 강점이 있을까. (웃음)
음… 치열하게 경쟁하며 자라서 그런지, 한국 사람이 열심히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의 중흥기가 아닌가 한다. 한국 문화 인식에 있어, 15년 전 처음 미국에 올 때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으로서 자랑스럽다. (웃음) 한국 자체가 문화 강국인데 그 문화가 글로벌에 알려지기까지 계속 축적된 부분이 많고, BTS 등의 그룹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전 세계가 한국문화를 주목하고 집중하게 된 것 같다.

<엘리오>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글로든이 엘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 포대기로 감싸는 듯한 장면이, 미국에도 포대기 문화가 있는가 싶어 인상적이었다.
엘리오가 커뮤니버스에서 혼자 날아다니는 무언가를 마시고 토하는 장면이 있다. 미국에서는 무언가를 마시고 토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이 장면이 너무 한국스럽다고 생각했다. 웃기면서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미국에도 포대기 문화가 있다. 다만 한국처럼 뒤로 업는 것이 아닌 앞으로 매지만, 미국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엘리오>만의 매력을 꼽는다면.
<엘리오>는 기존의 픽사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외로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부모의 부재에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지만, SF 장르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외로움이 있는 것 같다. 커다란 우주라는 공간에서 갖는 본질적인 외로움이라고 할지. <엘리오>의 시작과 끝 장면 모두 지구인이 끊임없이 외계와 교신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이런 본질적인 외로움을 엘리오가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한다.

<엘리오>는 외로움, 관계, 연결 등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어 공감대가 큰 작품인데, 특히 한국 관객에게 소구할 점이 있을까.
지금은 픽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술적으로) 애니메이션 수준이 올라왔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의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우선이고 그 위에 기술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픽사의 강점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은 픽사 작품을 매우 좋아해 주시고 그 어느 나라보다 관심을 갖고 봐주시는 것 같다. 그 이유가 픽사가 단순히 비주얼적인 자극과 단편적인 어떤 유머만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픽사는 뭔가 관객의 감정을 터치하고 다가가려 노력하는데, 이런 부분을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것 같다. 요즘은 단편적인 재미와 웃음이 유행함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이라는 어떤 철학적인 고찰을 다루려고 한 부분이 특히 한국 관객에서 소구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엘리오>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엘리오>는 개인적으로 맞닿은 부분이 많은 의미가 큰 작품이다. 엘리오는 부모를 잃었을 때 펑펑 울며 표현하기보다 감정을 삭이고 외계인과 교신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과 사랑의 갈구라서 이를 보면서 내 아이들이 생각나 매번 울었던 것 같다. 두 살 아이와 한달 된 아기가 있거든. (웃음) 또 나 역시 학창 시절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살짝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때 느낀 상실감이 엘리오와 비슷했다. 혼자 있는 느낌을 부모나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한편 일부러 바쁘게 움직일 무언가를 찾았던 것 같다. 그게 애니메이션이었다.



2025년 6월 2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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