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어색해 보이지 않는 게 큰 과제” <소주전쟁> 유해진 배우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337만 명을 동원한 올해 최고 흥행작인 <야당>에서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야망으로 똘똘 뭉친 검사였던 유해진이 <소주전쟁> 속 그릇이 크고 사람 좋은 ‘종록’으로 다시 관객을 찾는다. <소주전쟁>은 IMF 시절 국내 최대 소주회사가 외국자본에 넘어간 실화에서 모티브를 딴 작품으로 유해진과 이제훈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IMF 시기에 특별히 힘든지도 몰랐다는 유해진이다. 연극하며 ‘버스비 아껴서 소보루 빵 하나 사먹던 시절’이라 원체 가진 게 없었다고. 매 작품마다 유해진이 아닌 캐릭터 자체로 보이는 유해진을 만났다. 이야기 속에 크게 거슬리지 않고, 어색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큰 과제라 한다.

장발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지금 사극 <왕과 사는 남자>를 촬영 중이라 머리를 기르고 있다. 일정을 맞추지 못해, <소주전쟁> 인터뷰도 개봉 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관객이 많이 들지 않아서… 하하하

한평생 소주회사에 헌신한 ‘종록’(유해진)은 참 정이 많고 인간적인 모습이다. 어떻게 접근했는지.
인간적인 모습을 굳이 표현하기보다 씬에 어떻게 스며드냐, 대사를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모든 작품에 어색하지 않게 녹아드는 게 큰 과제다. 예를 들자면 <올빼미>(2022) 같은 경우, 무려 왕이라 관객들이 그동안 보지 못한 내 모습이었다. 기존의 이미지를 기대하다가 내가 왕으로 등장하면 웃어버리지나 않을지 걱정했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원래는 느닷없이 등장하는 건데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아, 앞에 발을 치고 카메라가 밀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발이 올라가는 시간 동안 관객에게 유해진이 왕이라는 사실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지. (웃음) 관객과 나만의 사인을 맞춘다고 할지. 이번 종록은 회사가 전부인 인물이라 특별히 준비하기보다 그가 어떤 심정이었을지를 많이 생각했다.

<소주전쟁>이라고 해서 소주 회사간의 경쟁을 예상했는데 기업 인수 합병이라는 기업 드라마이자, 나아가 휴먼 드라마더라. 소주라는 소재에 끌린 면이 있는지.
예전에 어렸을 때, ‘우리 주류 문화의 큰 장점은 빈부를 떠나서 공평하게 소주를 마신다’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만큼 친근한 소주를 다루는 영화라 좋았다. 처음부터 이야기한 건, 인수니 합병이니 해도 무조건 쉬워야 한다는 거였다. 원래는 전문 용어가 훨씬 많았는데, 다행히 이를 최대한 풀어 이야기하고 그래프 등을 이용해서 이해를 돕도록 했더라. 중요한 건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갈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게끔 하는 거였다.

소주라는 소재 외에 참여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영화는 하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있고, 또 어떤 영화는 잘 풀어나가면 어느 정도 흥행도 되겠다 싶은 영화가 있다. <소수의견>(2015)이 전자라면 <소주전쟁>은 후자라 하겠다. 관객이 <소주전쟁>에 잘 안착해서 흥행도 같이 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웃음) 딱딱하지 않고 쉽게 푸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말이지. 아쉬움이 남는다.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못하고 반대로 돈이 없어도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정이 있지 않나.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냐의 문제일 텐데, 우리 영화도 ‘그치, 저게 사는 거지’하고 한 번쯤 생각해 볼 영화인데 관객에겐 그렇게 다가가지 않았나 보다. (웃음)

회사 나아가 소주가 전부인 ‘종록’과 닮은 점이 있을까. 당신도 연기 외길 인생 아닌가. (웃음)
닮았다기보다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자랄 때 동네에 종록 같이 사는 아버지분들이 꽤 많으셨던 것 같다. 회사일이 ‘내 일’이라는 자세로 사는 분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그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혼자 산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그럴 거면 왜 결혼했는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인범’(이제훈) 같은 마인드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나라면 오로지 연기를 위해 살고, 연기를 위해 다른 부분을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다. 종록 같은 큰 그릇이 못 된다.

<소주전쟁>을 보고 행복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떤가.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와 지금의 성공한 유해진, 어느 행복이 더 와닿는지.
음… 계속 연극했으면 나이도 있고 해서 힘들었을 것 같다. 지금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20대에 IMF 시기를 거쳤는데 당시 어떻게 보냈나.
솔직히 IMF라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연극할 때인데 버스비 아껴서 소보루 빵 사먹었던 시기라 내 생활은 똑같았다. 뉴스나 주변인 등을 통해 힘든 시기라는 걸 인식했을 뿐, 내게 큰 변화는 없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늘 못살고 힘들어서… (웃음) 만약 아르바이트라도 했다면, 수입이 없어지니 체감했을 텐데 우리 극단은 새벽 2시에도 끝나는 등 마치는 시간이 늘 들쭉날쭉 해서 아르바이트할 수도 없었다. 한 번은 집에 가는 길에 있는 가스 충전소에 가서 프리타임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그땐 연극에 출연하지 않는 사람은 모라도 만들어야 했다. 가령, 선생님이 골판지로 차를 만들어라 하면 어떻게든 차를 만드는 식이었다. 뭐든지 해내야 했다. 그래서 예능 <삼시세끼>에서 보면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고 있지 않나. 다 그 시절 덕분이다.

인범이 자기 목적을 위해 계속 종록의 뒷통수를 치는데, 인범에 대한 종록의 감정은 뭐였을까.
보니까 엄청 당하더라. (웃음) 뒤에서 인범처럼 철저하게 움직인다면 종록이 아니라도 눈치 채는 게 힘들지 않았을까. 종록 자체가 사람을 좋아하는 캐릭터라 어쩔 수 없다고, 어느 정도 포기하고 내려놨을 것 같다. 자기와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겠지. 인범이 ‘한 대 때리고 싶죠? 때리세요’ 할 때도 때릴 가치도 없다고. ‘네 삶이지’ 하고 말지 않나.

국보소주 회장님(손현주)한테도 종록은 엄청 당하지 않나. 손현주는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현장에서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눴다던데, 같은 작품은 처음 아닌가.
같이 한 건 처음이지만, 형과는 자주 만나는 사이다. 이번에 형이 해줘서 좋았던 점이, 빌런 역할을 너무 잘 해줘서 종록이 더 측은해 보이더라. 형의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현장에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이번에 보니 정말 몸을 사리지 않더라. 짬밥이 저렇게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열정적이라 놀랐다. 편집되기는 했는데, 회장이 주먹으로 치는 부분이 있다. 정말 전력을 다해 쳐서 손이 많이 부어올라 찜질하고 그랬다. 그냥 시늉만 해도 되는데 말이지. 한편으론 그런 열정이 부럽고, ‘손현주구나’ 싶었다. 또 항상 ‘제가 사랑하는 유해진’ 이렇게 늘 좋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운 형이다.

같이 작품을 안 했는데도 친분이 깊다니, 어쩌다가? (웃음)
몇몇 모임이 있다. 처음에는 ‘선배님’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편해져서 형이라고 한다. 지금은 너무 편해서 조금 조심해야지 할 정도다. 형이야말로 그릇이 큰 사람이다.

후배이기도 하지만, 젊은 배우들에겐 대선배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이들과 세대 차이를 느낄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하면 꼰대가 안 될지 노력한다. (웃음) 현장에서 볼 때는 후배라기보다 그냥 동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니까 ‘이렇게 해봐’ 이런 조언 같은 건 전혀 하지 않는다. 일대일로 붙는 거니까. 또 현장 외의 자리는 절대 강요하지 않고, ‘와, 한잔하자’ 딱 거기까지만 한다! 정말 정말 같이 자리하고 싶을 때는 ‘한 잔만?’ 하고 한 번 더 물어볼 때도 있긴 하다.

작품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유해진이 아니라 그 캐릭터로 보인다. 비결이 무얼까. (웃음)
캐릭터가 바뀐다기보다 이야기가 바뀌는 것 같다. 이야기 속에 맡은 인물로 있으려 한다. 다 다른 이야기니, 모두 달리 보이는 것 아닐까. 아까도 말했지만, 제일 큰 숙제는 이야기 속에 어떻게 하면 거슬리지 않고, 어색하지 않게 녹아드느냐다. 그런데 ‘아, 이 인물이면 이렇게 하겠구나’ 하는 건 있다. 예를 들면 <야당>에서 ‘구관희’(유해진)는 아주 욕망이 큰 사람이라,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넌 성공해야 해’라는 이야기를 캐릭터에 집어넣었다. 캐릭터에 따라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심어줄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점이 내 나름대로의 캐릭터화라면 캐릭터화겠다.

<야당>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누적 관객이 337만 명으로 올해 최다 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축하한다.
청소년관람불가인데도 스코어가 잘 나와서 기분 좋다. 그러다가 에휴… 참…(웃음)

작품이 끊이지 않는데 감독이나 제작자가 유해진을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글쎄, 어느 작품이든지 현장에서 재미있게 해서 아닐까? 떠들썩하게 웃긴다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같이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아이디어를 내는 등 서로 의견을 나눠서 좋은 영향을 미치면 다행인 거고, 그래서 찾아주는 거 아닐까 한다. 이야기뿐이 아니라 감독님들과 맞춰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올해만 해도 <야당>, <소주전쟁>으로 연이어 관객을 만났고, 지금도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촬영 중이지 않나. 영화보다 좀 더 호흡이 긴 OTT 시리즈에서도 보고 싶은데, 고려하고 있는지.
다행히 업계가 어려운데도 영화 제안이 들어오고, 계속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영화라는 시스템 안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그만큼 익숙함도 크다. 이번에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엄청 울었다. OTT도 좋은 작품이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영화가 계속 들어와서 어떻게 보면 익숙함에 용기를 못 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좋다.


사진제공. ㈜ 쇼박스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0 )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