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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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타노스’ 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연기 복귀를 생각지도 못했을 거예요.” 마약 사건 이후 복귀하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최승현의 말이다. 극 중 ‘타노스’는 약물쟁이에 실패한 인생, 한마디로 정의로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루저 캐릭터다. 한편으로는 최승현이 저지른 과거의 과오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경솔했던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힘든 결정 끝에 시청자 앞에 섰다는 최승현을 만났다. 대중의 인식이 한 번에 바뀌지 않더라도 시간을 들여 설득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한다. 그 시간 또한 자신이 감내할 몫이라 한다.
비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기도 했는데.
함부로 말씀드리기 힘든 부분이고 너무 경솔했다. 대중의 과분한 사랑으로 너무 찬란하고 아름다운 20대를 보냈었다. 당시 너무 큰 실수를 했고 지옥같이 어두운 시간을 보내면서 심리적으로 피폐해졌었다. 자기혐오도 너무 컸었고 사랑하는 가족과 팬들께 큰 상처를 드린 데 대한 죄책감 역시 깊었었다. 황폐해진 정신 속에서 무너져 버린 것 같아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2020년 라이브 방송을 했었다. 어리석었고 경솔했고 평생 반성해야 할 시간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연예계 복귀를 알린다고 봐도 될까.
그렇다기보다 지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이에 대해 사죄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오징어 게임2>에 합류하게 된 과정은.
제작사를 통해서 오디션을 제안받았다. ‘타노스’ 캐릭터를 보고 선뜻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내 부끄러운 과거와 직면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가 박제될까 봐 망설였던 부분도 있지만, 그 또한 치러야 할 대가이고 한편으로는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사에 오디션 영상을 찍어 보냈고 감독님과 미팅을 두세 번 거쳤다. 마지막으로 감독님이 요청한 씬으로 영상을 찍어 보낸 후 캐스팅이 확정됐다. 사실 타노스를 제안받기 전에는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지 않았다. 오래 고민하여 오디션 영상을 찍어 보냈는데, 감독님과 만나고 리딩하는 과정에서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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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이었기에 복귀할 결심을 한 것인가.
<오징어 게임>이 아니었다면, 아니 ‘타노스’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복귀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과거의 과오와 직면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결정할 수 있었다. 정의로움이 있는 캐릭터도 아니고 전형적으로 실패한 인생의 힙합 루저, 한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용기 낼 수 있었다. 타노스라는 캐릭터 자체가 MZ 세대의 타락한, 약물에 의존하는 세대를 풍자하는 캐릭터이고 사회적으로 메시지가 있는 인물이라서 욕심이 났던 것 같다. 수백 명의 배우와 스탭진들 앞에서 ‘타노스’가 약을 투약하는 장면을 찍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맡은 역할이고 이겨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했다.
타노스는 주변의 사람이 죽어도 놀라지 않고 한편으로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가다듬어 갔는지.
타노스를 준비하면서, 그는 강력한 각성제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러한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에 대해 검색하고 찾아봤었다. 그들은 약이 없으면 극도의 초조함, 불안감을 띠고 마치 ADHD 같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약을 먹기 전후의 모습에 차별점을 두려 했다. 그가 하는 랩 같은 경우는 미국 남부 힙합 랩이 발음을 흘리면서 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를 따라 했다. 치아 손상이 많이 됐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약을 먹고 각성했을 때는 좀 더 텐션을 올리는 등 감독님과 많은 의견을 나누며 디테일을 다듬어 갔다. 그의 귀에는 음악이 들린다는 설정이라 무언가 계속 움직이는 인물을 표현하려 했었다.
황동혁 감독은 어떤 디렉션을 주었는지
감독님은 “좀 더 미쳐 주세요”, “좀 덜 미쳐주세요” 이런 식으로 디렉션을 주셨다. 또 감독님이 주문한 부분은 타노스가 하는 영어 대사가 많은데 ‘이 친구는 한 번도 미국에 가보지 않은 친구라 영어도 어쭙잖게 해야 한다’ 였다. 그래서 영어 발음이 좋으면 오히려 NG가 나기도 했었다. ‘노 프라블럼’에서 N을 일부러 R처럼 발음하는 등 허술한 면을 보이려 했다.
옆사람의 이름을 매번 까먹는다든지 기억을 잘 못하고, 얻어맞은 상대에게 랩 플러팅을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약에 의존하는 친구라 매번 까먹기도 하고, 그의 기억력은 제로에 가깝다. 많이 아주 많이 떨어지는 친구다. 그 지능은 거의 붕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반 이상을 래퍼로 살았는데 여자 앞에서 랩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그 정신 연령이 짱구 수준이 아닐까 했었다. 그렇게 생각해야, 삼십 대 후반인 입장에서 그 오그라듦을 참으면서 연기할 수 있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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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단계부터 이슈가 됐고 황 감독은 벌써 6년이 지난 일이라 대중이 용서했을 걸로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대중이 당신에게 가혹한 이유는 무얼까.
내게 유독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때 너무 큰 사랑을 받았고 많은 영광을 누렸기 때문에 나의 잘못에 대해 실망하고 상처받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팬들의 사랑에 큰 배신으로 보답한 것 아닌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고 평생 반성할 부분이다.
원래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이다. 빅뱅이라는 팀의 이미지를 망친 것에 대해 항상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다. 이번 캐스팅 기사가 났을 때 너무 논란이 커서 무너질 뻔했을 때 감독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다.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할 수 있다고 믿어 주셨고, 이에 보답하는 일은 배우로서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편한 마음으로 현장에 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거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임했다.
타노스 연기에 대해 국내에서는 과잉이라는 불호 평이 많은 반면, 해외에서는 ‘호’의 반응이 많다. 연기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연기와 캐릭터는 당연히 호불호가 나뉘고, 매우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평가는 배우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타노스는 몸만 컸지 정신 연령은 짱구 같은 친구라, 단순하고 엽기적이고 우스꽝스러워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호평과 혹평 모두 수렴하되 아직까지는 딱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워낙 오랜만에 한 작품이라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11년 만의 첫 스텝으로 우선은 이렇게 기자님들과 만나 뵙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평가를 떠나 ‘저’라는 사람이 한국에서 먼저 용서를 받은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동안 소통의 창구가 없어서 심경을 표명하지 못한 것도 있고, 입장 표명하기에 명분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 한번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SNS를 통해 했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고 사죄드린다.
공백기에는 어떻게 지냈나.
사회생활을 차단하고 지냈다. 자기혐오와 죄책감으로 어둠 속에서 피폐하게 보냈던 것 같다. 집과 음악 작업실만 왔다 갔다 하면서 7~8년을 지냈다. 음악을 만들 때만 숨통이 트이고, 어둠 속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
빅뱅으로 컴백할 의향은 없나. 또 솔로 음반 발매 계획은 있는지.
빅뱅이라는 팀으로 너무 찬란한 20대를 보냈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팀에 피해를 준 사람으로서 이미 팀을 떠난 지 오래다. 그렇게 떠난 지 5년이 지났고 이후 ‘봄여름가을겨울’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빅뱅으로서 마지막 프로젝트라 생각하고 참여했다. 돌아갈 면목이 없는 것 같다. 솔로 음반은… 그간 작업한 곡이 꽤 돼서 계획 중이기는 하나 발표 시기 등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
사진제공. THE SEED
2025년 2월 1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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