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현장에서 열심히 한다는 소문이 난 것 같아요.” 여러 작품에서 찾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지환은 이렇게 답한다.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티빙 <우씨왕후> 그리고 디즈니+ <강매강>(<강력하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강력반>)까지 국내외 OTT 플랫폼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이다. <범죄도시> 시리즈 ‘장이수’로 범국민적으로 알려진 박지환, 이미지 고착이나 이미지 변신에 대한 우려나 욕심은 전혀 없다고 한다. “캐릭터에 맞는 짐을 꾸린 후, 앞에 있는 배우에게 집중해요.” 물론 짐을 꾸리기까지는 죽도록 노력한다고. <강매강>에서 팔랑귀 + 무대포 + 마성의 매력을 지닌 ‘무중력’으로 분해 극의 웃음을 주도한 박지환을 만났다. 이미지란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라 풍성해졌다가 앙상해지는 나무와 같은 거라고, 배우란 본디 선택받는 직업이라 주어진 역할을 잘하기 위해 온몸을 던질 뿐이라는 그의 말을 들어본다.
최근 티빙 <우씨왕후> 넷플릭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이번 디즈니+ <강매강>까지 플랫폼도 장르도 모두 다른 작품을 소화했다. 이렇게 끊이지 않고 러브 콜을 받는 이유가 뭘까. (웃음)
음… 현장에서 열심히 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아닐까. (웃음) ‘저 배우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한다더라’ 이런 거지. 사실 감사하면서도 무섭다. 감사할 일이 많아지면 불안해지기 시작하거든. 자기 실력이나 부족한 부분을 남들은 몰라도 스스로는 알지 않나. 칭찬받고 사랑받을수록 좀 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지 더 생각하고 경계한다.
힘들어 보이지 않는 연기가 일품이다.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 든다고 할지, 준비는 보통 어떻게 하는지.
죽음만큼 준비한다. (웃음) 그 인물에 맞는 짐을 꾸리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편이다. 그 역할에 필요한 생각들만 하고, 그외 생각은 일단 하지 않는 편이다. 하면서 찾아가는 스타일이다.
이번 강력반 형사 ‘무중력’의 짐은 어떻게 꾸렸을지 궁금하다.
진심으로 클리셰하고 뻔한 인물이지만, 완전히 다르게 하겠다는 마음보다 치열하고 은밀하게 순간순간 포인트를 잡아서 차별화하려고 했다. 전형적인 캐릭터라고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글을 다 쓸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정성과 치성을 다 해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집중해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상대방 덕이라고 생각하고, ‘늘 보던 모습인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내 탓은 안 한다. 대본을 보는 눈은 훈련하면 느니까, 이 방식으로 놀아보고 또 저 방식으로 놀아보고 하는데 그럼에도 저를 보고 뻔하다고 한다면 ‘죄송합니다,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라고 할 수밖에… (웃음)
무중력의 어느 면에 끌렸나. 설정상 마성의 매력을 지닌 캐릭터인데.
초고가 너무 재미있었고, 하게 되면 ‘무중력’ 역을 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진짜로 그 역을 맡게 됐고, 캐릭터상 덩치가 좀 있어야 할 것 같아 약 8kg 정도 몸무게를 늘렸었다. 그런데 벌크업이 아니라 살크업이 된 듯! 지금은 다시 빠져서 73kg 정도 된다. 마성이 매력을 지닌 친구라, 그 매력을 표현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하기 부끄럽거나, ‘이렇게까지 한다?’ 하는 장면이 없지 았았지만, (웃음) 일단 작가님을 믿고 해봤다. 해보니 생각보다 과하지 않더라. ‘정자 훈련’이나 (무중력의) 페르몬 덕분에 할머니가 쓰러지는 장면 같은 경우도 이 드라마는 그 정도까지 가줘야 미덕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도 다른 배우도 서로의 배경이 되어, 남들이 볼 때 무리한 씬이 아니냐 하는 씬 조차도 열심히 촬영했다.
<범죄도시> 시리즈나 이번 <강매강>이나 모두 코믹인데, 이미지 고착에 대한 고민은 없나.
이미지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정말이지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무중력을 했다가, 누군가의 삼촌(<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이나 충직한 장군(<우씨왕후>)을 하는 것처럼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테니 말이다. 이미지란 봄여름 가을 겨울의 나무가 변화하는 것과 같다. 때론 풍성하고 때론 앙상할 수 있는 거지.
이번 ‘무중력’은 <범죄도시> 시리즈 ‘장이수’와 비슷한 결이다. 다른 면을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전혀! 말했듯이 요즘에도 결이 다른 역할을 했고, 이를 떠나 무엇보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지, 선택하는 입장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배우 중 몇 명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역할을 할까. 평생 방자 역할만 하고 간다고 해도 방자의 대가가 된다면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고착을 고민하기보다 방자를 좀 더 잘 연기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 왔기도 하고. ‘장이수’는 내 삶을 바꿔준 너무 좋아하고 또 감사한 캐릭터다. 이 세상에서 나 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근한 캐릭터이기도 하고. 이번 무중력이 장이수와 비슷하다고 해서, 하지 않기보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중심을 잡고, 또 디테일한 씬 하나하나까지 잘 잡아줬다고, 함께한 후배 배우들의 칭찬이 자자하더라.
그건 그 친구들의 시선이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통해 내 생각이 맑아진 부분도 많다. 다만, 난 (경험이 조금 더 있다 보니) 우당탕 덤벼들기만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차근차근 하자’고 했었다. 코미디일수록 자기만의 함정, 그러니까 자기만 웃기면 안 된다고 얘기했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대하기 조심스러운 선배로 남아 있기보다, 오빠나 형같이 친밀한 존재로 서로 같이 ‘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으?으?했었다.
덕분에 현장 분위기 역시 좋았다고. 당신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던데, 이 기회에 후배들 칭찬 한 말씀.
서현우 외에 김동욱 박세완 이승우 모두 첫 호흡이었다. 세완은 원래도 코미디를 느낌 있게 잘 한다고 생각했고, 승우는 정말 맑고 순수한 에너지를 지닌 친구라 너무 사랑스러웠다. 동욱이는 선배답게 현장을 잘 이끌었고, 현우는 온갖 것을 청소하는 것처럼 돌아다녔다고 할지, 나서지 않고 세세하게 챙기는 고마운 친구다. 서로가 편해지고 즐거워지니까 코믹 본능이 마치 발화하는 것처럼 최고의 상태가 되더라. 처음에는 본인 하나 건사하기에 바빴다면 후반부는 모두 제 역량을 발휘한 덕분에 극의 짜임새가 더욱더 좋아졌다. 에피소드마다 각각의 캐릭터가 도드라지는 씬이 있는데 이때도 몸 사리지 않고 각기 리딩해 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너무 좋았다. 끝나고 나서도 안 가고 기다렸다 ‘갈까? 가자!’ 이렇게 다같이 가서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그랬었다.
액션씬이 많아서 준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예전에는 보라매 공원에 모여 액션 연습했었다. 보라매 출신이라고 불렀는데, 그때는 기본적으로 운동장 30바퀴 뛰고 시작했었다. 그때 훈련한 동작이 몸에 남아 있어서 현장에서 두세 번 보고 바로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모르고 그냥 따라했다면, 이제는 합을 맞추는 등 액션에 대해 좀 아는 만큼, 그때보다 조금은 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좀 더 멋있게 담긴 것 같다.(웃음) 기쁘지 아니한가! 하하 화이팅 보라매!
무중력의 여러 모습 중 팔랑귀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재밌더라. 실제는 어떤 편인가.
팔랑귀는 비슷한데 다행히 움직임은 굼떠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웃음) 내가 했던 역할의 어느 모습이든 크고 작게는 모두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있을 수도 있고, 전혀 없다고 해도 캐릭터를 준비하다 보면 비슷한 면이 스며드는 것 같다.
다양한 분장을 비롯해, 여러 모습을 보였는데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분장에 대해서는, 20년 넘게 같이 한 형, 누나들이라 그분들을 믿고 맡겼다. 극 중 다양한 분장을 했는데 순간순간 어려움은 있어도 나중에는 재미있을 걸 아니까, 이것저것 시도했었다. 제일 어려운 부분은 마성의 매력을 뿜어내는 씬들이었다. NG도 계속 나고, 부끄러워서 못 하겠는 거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나. 계속 해 보는 거지 뭐.
때때로 과부하가 걸릴 수 있는데, 이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건 없고,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 주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화가 걸릴 수 있거든. 촬영 중에도 다 쏟아낸 후에는 중간 중간 병원에 갔다 오기도 한다. 물론 몸이 안 좋은 사실은 절대 티 내지 않는다. 이런 과정이 예전에는 매끄럽지 않았는데, 노하우가 쌓이면서는 자연스러워지더라.사방팔방에서 일이 밀려와도 정신 차려서 해 나가다 보면 여유가 생긴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여러 현장에서 선배나 동료를 보며 배운 덕분이다.
연기는 어떻게 입문하게 됐나. 찾아보니 ‘마니산’이 연관어로… (웃음)
그 이야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웃음) 왜냐하면 하려고 하면 몇 박 몇 일을 얘기할 수도 있거든. 대학 때, 책 읽고 하다가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서 무전여행을 간 적이 있다. ‘뭐하고 살지’ 고민했던 시간이었는데 그 여행의 종착지가 마니산이었다. 여행 노선이 달랐다면, 다른 산이 될 수도. (웃음) 문득 마니산에서 연극하면 ‘사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연극하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었다. 어느 백화점에서 아동극을 하고 있길래 갔다가 계속 연극을 하게 됐고, 그게 군대 갔다 와서도 이어졌었다. 그러다가 영화 <짝패>(2006)로 데뷔하게 됐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추창민 감독의 사극 시리즈 <탁류>로 찾아뵙겠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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