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정지훈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우재단 이사장 ‘완수’(김하늘)를 경호하는 보디가드 ‘도윤’ 역으로 시청자를 찾았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은 대한민국 상위 1% 화인가를 둘러싼 치명적인 스캔들을 다룬 작품. 폭발적인 액션부터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까지 담은 복합 장르 드라마다. 의도했던 흥행성과 대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는 정지훈을 만났다. 1세대 K-팝 레전드이자, 22년차 배우로 미디어 환경의 격랑을 헤쳐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처음으로 출연한 OTT 시리즈다.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기대보다 만족감이 크다. 영화로 따지면 팝콘무비 격이고 한국적인 클리셰가 많지만, 그 와중에 여러가지 맛을 담았는데 이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다.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캐릭터도 기대만큼 나온 것 같다. 경험상 드라마가 잘되면 주변에서 전화가 온다. ‘다음 화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는데, 오랜만에 전화가 오길래 ‘잘되고 있구나’ 싶었다.(웃음) 반응을 좀 찾아보니 (안 찾아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양복이 어울린다, 헤어스타일은 어디서 했냐, 재미있다 등 같은 좋은 이야기도 있고, 한편으로는 너무 뻔하고 작위적이지 않냐는 반응도 있더라. 호불호는 예상했던 부분이다.
김태희 배우는 뭐라고 하든가. (웃음) 궁금하다. ]
서로 일에 터치하지 않는 편이고, 할 때는 칭찬만 한다. 집에서라도 최고라고 해줘야 밖에서도 힘이 날 것 아닌가. 보고 ‘너무 재미있다’하고는 끝이다. 연기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이런 건 안 하고, 같이 보지도 않는다. (웃음)
호불호를 예상했음에도 참여할 만큼 끌린 부분은.
대중성이 높은 점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솔직히 플랫폼(디즈니+)내에서 1위에 랭크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매운맛 더하기 클리셰 잔뜩인 이런 류의 드라마가 디즈니+에서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한국적인 드라마라 해외 반응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디즈니+ 측에 의하면 해외에서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더라. 액션, 치정, 멜로가 혼합된 매운맛이 통하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는 혼자만 힘이 들어간 캐릭터가 아닌 점이었다. 그전에는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리드하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상대역인 김하늘 선배를 비롯해 윤제문, 서이숙 선배에게 기대어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촬영하며 연륜 있는 선배와 호흡을 맞추는 재미를 알게 됐다. 특히 윤제문 선배의 연기를 어떻게 받아 칠지 나름의 수싸움을 했던 것 같다.
배우로서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연기자라면 어느 한 부분에 치중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성이나 대중성을 우선하기보다 이야기든, 캐릭터든 끌리는 부분이 있으면 하는 편이다. 이번 <화인가 스캔들>은 아주 대중적인 드라마이고, 이를 기대하는 시청자의 바람에 잘 부응했다고 생각한다.
완수의 ‘나랑 잘래요?’, 도윤의 ‘내 여자 할래요?’ 같은 오글거리는 대사와 호칭에 항마력이 달렸는데 (웃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놀랍기도 했다.
‘2024년에 이런 대사를 한다고?’ 하고 놀랄 수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웃음) 사실 우리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한편으론 작가님이 얼마나 고민 끝에 썼을까 싶더라. 작가님의 의중을 잘 표현하면서 최대한 덜 오글거리도록 하늘 선배와 여러 느낌으로 연습했었다.
완수와 도윤의 멜로라인을 어떻게 잡아갔는지. 자칫하면 불륜관계만 부각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사랑과 불륜 사이의 경계를 잘 잡는 게 중요했다. <화인가 스캔들>이 로맨스 드라마는 아니지 않나. 친구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던 도윤이 완수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모두가 그녀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느낀 연민의 감정이 시작이라 하겠다. 완수 역시 마찬가지고. 살짝 로맨스의 텐션만 유지할 뿐이지 구체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마지막 화 키스씬은 죽기 직전까지 내몰린, 여자는 남자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남자는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상황에서의 일탈 같은 느낌으로 접근했다.
짧은 헤어에 핏한 슈트 등 보디가드 스타일링이 찰떡 같다는 칭찬이 많다. 반면 초반부 등장한 수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더라. (웃음)
스타일링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을 내지 않는 편이다. 해주는 대로 따르는데 이번에는 액션 때문에 슈트에 신축성이 필요해서 따로 말씀드린 정도였다. 다른 착장 없이 슈트만 입어서 편하더라. 수염은, 원래 잘 안 어울리는 데다 그간 주로 의사나 검사 같이 수염이 필요 없는 캐릭터를 하다 보니 극 중에서 더더욱 기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윤이 초반에 필리핀에 처박혀 범인을 쫓는 캐릭터라, 너무 말끔하면 안 되겠더라. 그래서 투박하고 덥수룩하게 기르고, 또 너무 우락부락 보이지 않도록 일부러 근육을 좀 빼고 촬영했었다.
삼단봉 액션을 비롯해 역시 액션연기가 훌륭하더라. 스턴트맨 없이 직접 소화했다고. 또 여성 경호원 ‘이진’(정주연)과의 대결 장면도 시원시원하고 좋았다.
액션연기를 좋아하고, 감정이 실려야 해서 평소 직접 소화하는 편이다. 이번은 99%는 내가 했지만, 유리 깨지는 장면은 대역분이 해 주셨다. 이번에도 액션연기는 재미있었지만, 확실히 호흡은 예전 같지 않더라. (웃음) 상대인 ‘진’이 칼을 사용하는데 이에 맨손으로 맞서면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또 도윤이 마침 경찰 출신이라 삼단봉으로 맞서는 게 상황에 맞겠다고 생각했다. 극 중 ‘진’은 어릴 때부터 킬러로 길러진 암살자이기도 한데, 정주연 배우가 굉장히 열심히 잘 표현해 주었다. 실제로 키가 커서, 시원한 맛이 있다.
촬영할 때 체력은 예전만 못하다고 했는데 그 외에 변화된 점이 있을까.
액션할 때 예전보다 숨이 가쁜 것이지, 보통의 연기에서 체력적인 차이는 없다. 어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이 유전적으로 당뇨가 있었고, 어린 나이에 병간호하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 매일 같이 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을 가꾸게 되고, 지금은 운동이 생활의 큰 기쁨 중 하나다. 나이 들며 촬영장을 대하는 자세가 좀 달라진 부분이 있다. 고객을 모신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촬영장에 간다고 할지. (웃음) 스스로 뭔가를 막 잘하진 못하지만, 이젠 연륜이 생기다 보니 촬영장의 상황이나 소품, 세트, 분위기 등을 체크하고 더 챙기게 되더라.
음악, 예능, 연기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데 고민은 없나.
고민이 많다. 특히 예능과 연기 사이의 균형이 쉽지 않았다. 선배 배우님들과 신비주의가 필요한지에 대해 몇 번 대화나누기도 했는데 이미 신비롭지 않은 존재 아닌가. (웃음) 때로는 옆집 형 같기도 하고 또 때로는 멀리 동떨어진 존재 같기도 한데 어느 날 갑자기 ‘배우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그렇다고 예능인으로 나서기도 애매해서 부캐(부캐릭터)라는 생각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팬들과의 약속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통하며 같이 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를 컨셉으로 연기든 예능이든 열심히, 잘하는 게 목표다.
<화인가 스캔들>은 당신 필모에 어떻게 남을 것 같나.
예전에 어느 선배한테 작품할 때마다 무엇을 남기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기 젊음을 남기고 싶다’고, ‘그 시절 그 필름에 담긴 나를 남기고 싶다’고 하시더라. 그 대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작품이 어떻게 전달될지, 무엇을 남길지만 생각했거든. 내게 <화인가 스캔들>은 언젠가 다시 볼 때 재미있다고 느낄 작품, 의도했던 흥행성과 대중성이라는 목표에 잘 도달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월드스타의 호칭을 단 레전드이자 K-팝의 선구자로 대중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TV, 케이블, 유튜브, 그리고 OTT까지 다양한 미디어 환경을 거쳐 왔는데 돌아보니 어떤가.
레전드라고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다. 내가 활동할 때만 해도 해외투어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모두 (박) 진영, (방) 시혁 형이라는 원투 펀치 덕분이다.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능력자 두 분이 데스크에 앉으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왔었다. 요즘 플랫폼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진 것 같다. OTT 플랫폼이 증가했다고 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배우는 한정적일 터이고, 결국 가수로서 배우로서 그 위치를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 건 내게 주어진 숙제가 아닌가 한다.
옛날이야기지만, (웃음) 공중파 3사에 출연만 하면 얼추 이름을 알리고, 밖에 나가면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화인가 스캔들>이 공개 중인데도 뭐하고 지내냐고 물을 정도로 채널이 분산돼 있다. 친척 아이들만 봐도 TV를 틀어놓고 각자 유튜브를 보고 있거든. 뭐라고 하면 꼰대 소리 듣고. (웃음) OTT 오리지널 시리즈나 방송 드라마, 심지어 영화도 쇼츠나 요약분을 보니… 어느새 나도 가끔 그렇게 보기도 한다. 요즘처럼 시청자가 파편화된 시대에서 유튜브는 필수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예전 공중파 3사 시절이 좋은 것 같다. 경쟁이 치열했지만, 그만큼 뚫고 들어가는 희열과 성과가 컸거든.
트렌드를 읽는 안목이 더욱더 중요해진 요즘이다. 주로 어디서 트렌드를 파악하는지.
유튜브를 본다. 들어가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나 탑텐곡 등 따로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한 눈에 훑어보기가 수월하다.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하고 (웃음) 그러다 보면 웃으며 넘길 얘기도 있고, 그렇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너무 심할 경우 고소할까 하다 가도, 그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것 같기도 하고 또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좋게, 즐겁게 넘기려 한다. 주변 사람에게도 지금의 내 행보와 추세가 어떤지 자주 물어보는 편인데, 심장에 비수를 꽂기도 하고 아주 냉정하게 얘기하는 분들 덕분에 나름대로 흐름을 잘 읽고 있는 것 같다.
차기작과 가수로서 활동 계획은. 또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재미있는 콜라보 앨범을 준비 중이다. 배우로서는 그동안 연기적인 갈망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차기작에서 내가 원하던 캐릭터를 하게 되어 기대가 크다. 목표는… 어릴 때는 계속 도전하며 나태해지지 않고 하루도 흐트러짐 없이 살았던 것 같다. 크든 작든 목표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도 좋지만, 지금은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크다. 우리 직업이 롤러코스터 같은 면이 있으니까, 이를 잘 다스리며, 오늘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인터뷰하고, 끝나고 가서는 재미있게 쇠질(운동)하고 그러고 나서 가족들과 맛있는 것 먹으며 좋은 기운을 얻는 일상이 소중하다.
내 인생의 명장면을 꼽는다면.
배우로서 망설임 없이 딱 두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때 박찬욱 감독님의 디렉션과 그 진두지휘 아래 연기한 순간, 또 하나는 <닌자 어쌔신>(2009)에서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살인 충동을 느끼는 표정과 눈빛을 연기한 때이다. 이 두 순간이 여전히 내 연기의 축이 되는 것 같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4년 8월 19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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