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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는 다른 방식의 범죄영화를 그리고 싶은 야망” <리볼버> 오승욱 감독
2024년 8월 16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9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초록물고기>(1997)와 <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각본가, 자기 색 강한 영화평론가 그리고 <킬리만자로> <무뢰한> <리볼버>의 연출자. 글 발, 특유의 분위기 발로 씨네필들에게 사랑을 받는 오승욱 감독이다. 약속을 이행 받으려는 전직 경찰(전도연)이 약속 당사자(지창욱)를 향해 직진하는 범죄 영화 <리볼버>로 9년 만에 관객을 찾은 오 감독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가슴 속에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 ‘타이거 마스크’와 ‘내일의 죠’(카지와라 잇키), ‘로드 짐’(조셉 콘래드)을 껴안고 있는 것 같다는 감독. 그를 사로잡은 작품들이 어우러진 범죄영화를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야망을 전한다. 인간군상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우스꽝스러움과 슬픔을 녹여 오승욱의 색채로 물들인, 오승욱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2015년에 개봉한 전도연, 김남길 주연의 <무뢰한> 이후 무려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건가. (웃음)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준비하던 작품이 이런저런 문제로 엎어지고 그래서 새로 준비하다 보면 1년이 후딱 지나가더라. 게다가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 전도연 배우의 제안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벌써 4년 전이니 말이다.

그동안 팬데믹, OTT 플랫폼의 일상화 등 업계는 큰 변화를 겪어 왔다. 영화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떤가.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 같은 영화’, ‘오승욱 영화’를 만든 것 같다고 하더라. 촬영부터 미술, 사운드 믹싱까지 오승욱 영화를 만들기 위해 팀워크를 발휘한 것 같다. 내 색깔이 드러난 영화라고 봐주어서, 이런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오승욱표 영화란 어떤 영화일까. (웃음)
이게 참 표현하기 난감한 부분인데… 전작인 <킬리만자로>(2000)와 <무뢰한>(2014)를 보고 장르를 뒤틀거나 기대보다 박자를 좀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하는 연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대사 등에서 모서리가 살아 있다(엣지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 <리볼버>에서 예를 들자면, ‘수영’(전도연)이 ‘앤디’(지창욱)를 찾아 바에 들어갈 때 그 얼굴을 비추지 않다가 ‘약속한 돈을 주세요’ 할 때야 비로소 얼굴을 드러낸다든지, 또 수영이 앤디를 삼단봉으로 두드려 팬 후 그 피 묻은 손바닥만 보여준다든지 하는 식이다. 편집의 도움을 많이 받은 장면인데, 이런 편집이 오승욱답다고 하더라. 아마 내가 오랜만에 찍으니까 스태프들 모두가 도와주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웃음)

<무뢰한>은 끝 갈 때 없이 추락한 ‘혜경’(전도연)의 현재가 너무 먹먹해서 다시 볼 용기가 안 났었다. 그렇게 무자비할 정도로 후벼 파던 리얼리티가 이번에는 사라지고 살짝 현실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전향적인 톤앤 매너를 지향했다. 우울하고 딥한 정서를 선호하지 않는 트렌드를 반영한 걸까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따른 인식의 변화일까.
전작들이 약간 잔혹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전도연 배우를 모델로 하여 ‘하수영’이라는 인물의 트라이엄프를 목표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급한 톤이 된 것 같다. 목표를 위해 고생하더라도 또 그 과정에서 여러 인간 군상을 접하며 씁쓸함을 느껴도 결국엔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인물로 그리고자 했다. 전도연 배우도 처음에는 비현실적일 수 있는 부분에 살짝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수영의 승리라는 데 동의했다.

등장인물이 단출하고 대부분의 내용이 대사를 통해 전달되어 자칫 루즈해질 수 있는데, 리듬감을 어떤 식으로 부여하려 했나.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후반부로 가기까지 초반의 빌드업이 필요했고, 이는 액션이 아닌 배우의 연기와 분위기로 쌓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느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편집하면서 특히 신경썼는데 관객이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고 떨리는 지점이다.

의외로 웃음을 잘 일구어냈더라.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터진다.
일부러 웃기려고 의도한 건 아니다. 사실 <킬리만자로>에도 <리볼버>와 유사한 웃음 포인트가 있는데 영화가 너무 잔혹하다 보니 관객이 차마 웃지 못한 것 같기도. (웃음) 코미디 영화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부상당한 앤디를 차에 구겨(?) 넣고 뺄 때 같이 관객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있다.

생각보다 액션의 비중이 크지 않다. 제목은 ‘리볼버’인데 전직 경찰 ‘수영’은 검도에 기반한 액션을 행한다. 의도가 있을 것 같다.
경찰이 상대방과 싸울 때 어떤 격투기를 쓸지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유도와 검도가 떠올랐다. 한데 유도는 영화적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고, 검도는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것 같더라. 한때는 꼬장꼬장한 선배였으나 현재는 시한부인 경찰 선배(정재영)가 마치 괴팍한 검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도움을 청하러 선배의 집을 찾아간 수영은 그의 강요로 리볼버를 받지만 동시에 (선배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지 않냐며 삼단봉을 들고나온다. 개인적으로 평소 삼단봉을 활용한 액션에 매료된 것도 있고 또 예전부터 전도연 배우가 삼단봉을 휘두르면 얼마나 멋있을까 생각해 와서 마침 기회다 싶었다.

출소 후 시작한 수영의 ‘약속 이행 재촉 여정’이 절에서 마침표를 찍는데, 절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리볼버>는 존재감 제로인 투명인간 같은 하수영이라는 인물이 점차 뼈를 만들고 피를 돌게 하며 살을 채워 온전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 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 한 생각과 그림을 전도연 배우가 연기로, 특별하게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다 표현해 주더라. 글이 현실화된다고 할지, 이런 느낌을 예전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각본: 오승욱)의 한석규 배우한테도 받았었다.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내가 이런 글을 썼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었다. 나는 생선의 뼈다귀를 썼을 뿐인데 배우가 온전하게 채워주는 경험! 내가 진짜 복 받은 것 같다. (웃음) 아, 장소가 절인 이유는 예전에 절에서 기거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본 파쇄석이 깔린 마당이 앤디와 ‘그레이스’(전혜진), 수영 세 사람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기에 적합해 보여서였다. 그런데 예전에 머물던 절에 가니 그 마당이 없어져서 파쇄석이 깔린 절을 찾아서 전국을 헌팅 했다.

절이 아니라 파쇄석이 포인트?
맞다, 별것도 아닌 파쇄석 하나로 인해 무너지는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레이스는 극 중 권력과 부를 지닌 어떻게 보면 최종 빌런인데, 그런 그가 수영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앤디를 위해 돈가방을 직접 들고 오지 않나. 앤디가 탄 휠체어를 끌고 파쇄석이 깔린 마당을 지나가려 하지만, 휠체어는 밀리지 않고 구두만 망가지고 만다. 결국 앤디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고, 앤디 역시 마음에 담아두었던 애증의 마음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곁에 있던 수영은 그 둘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되지만,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말이지. 이때 그레이스의 너덜너덜해진 하이힐이 클로즈업되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전혜진 배우가 그레이스의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서, 과연 대단한 배우라고 감탄했었다.

하수영은 끝까지 품격과 품위를 잃지 않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는데, 비리 경찰인 그가 과연 품위 있는 사람일까 하는 시선도 있다. 또 첫 등장이 <무뢰한>의 혜경을 떠올리게 하는 (술집) 마담 룩 같은 스타일링도 전직 경찰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다.
스타일링에 관해서는 수영은 경찰서 내근보다 클럽 등을 다니며 수사했을 것이고, 그런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무디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감옥에 가기 전에도 진한 화장과 딱 붙은 착장을 한 것도 그래서이다. 경찰 출신이니 수감 생활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고, 출소해서는 아무도 자기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고 약속조차 이행되지 않은 상황에 놓인다. 결국 자기 손으로 목표를 쟁취하고 존재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그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품위란, 비록 비리경찰이지만 살인만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일 거다. 절대 어느 순간에도 리볼버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기 약속, 마지막 선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품격이다. 또 앤디와 그레이스에게 한 지금까지의 일을 다 잊고 앞으로 과거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다짐 또한 그 품격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10년 만에 전도연 배우와 다시 작업했는데 변화된 부분이 있던가.
음. 어떤 깊이가 더해졌고 또 그 품이 더욱더 넉넉해진 느낌이었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촬영했는데, 그 작업에서 굉장히 좋은 영향을 받고 온 것 같더라. (웃음) 항상 힘들고 어려운 역할만 하다가 유쾌하고 발랄한 역, 자기를 마음껏 드러낼 역할을 한 점이 그에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너무 옥죄지 않았으면 했거든. 그래서 <리볼버>는 승리의 영화라고 강조했었다. 이제는 현장에서 선장이 된 것처럼 동료, 후배, 스태프들을 다 아울러 격려와 응원을 하더라. 예전에는 하지 않던 ‘파이팅’도 하고 다니면서 말이지. 현장의 모든 사람이 전도연 배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리볼버>에 화려한 색을 더해준 ‘윤선’역의 임지연, 의도치 않게 웃음을 유발한 ‘앤디’역의 지창욱 배우와 작업한 소감은.
임지연 배우는 최근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도 인상 깊었지만, 영화 <인간 중독>(2014) 때부터 좋게 본 배우였다. 이번에는 전작과는 다른 얼굴을 끌어냈으면 하는 감독으로서 욕심이 있었는데, 이미 만날 때부터 처음 접하는 모습이었다. ‘수영’과 ‘윤선’은 주종이 아닌 대등한 관계라고, 마치 배트맨과 로빈 같은 파트너라고 하니 되게 신나 하며 좋아했다. 지창욱 배우는 영화 <조작된 도시>(2017)만 봤을 뿐이라 잘 몰랐는데, 이번에 작업하면서 완전히 팬이 됐다. 권력도 돈도 잃고 끈 떨어진 연 같은 신세가 된 앤디를 너무 잘 표현하더라. 다리만 살짝 떨어도 ‘와우’하고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의 연기와 동작이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좋아서, 내가 속초 앞바다까지 업고 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수영의 옛 연인이자, 윤선의 연인이기도 한 ‘임석영’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덕분에 무게감이 남다르더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감독과 배우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합류하면서 어마어마한 힘이 실어졌고, <리볼버>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생각한다. 가끔 ‘형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하고 묻곤 했는데, 이제는 배우로서 또 감독으로서 만나니 서로 이런저런 고충을 나누는 등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킬리만자로> <무뢰한> <리볼버>까지 그 공통점은 믿음과 신의가 의심(시험) 당하는 범죄 영화가 아닌가 한다. 이런 범죄 영화를 계속하는 동력은 무얼까.
어릴 때부터 60살이 넘은 지금까지 나를 쭉 살펴보니 내 가슴 한편은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 다른 한편은 ‘타이거 마스크’와 ‘내일의 죠’(카지와라 잇키) 그리고 ‘로드 짐’(조셉 콘래드)이 있더라. 인간이 죄를 짓게 되면서 가장 먼저 파괴되는 부분이 신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와 신의라는 주제 하나만이라도 잘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를 남들이 그려내지 않은 방식의 범죄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야망도 있고. (웃음) 인간군상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우스꽝스러움과 슬픔을 표현하고 싶다. 이번 <리볼버>는 어느 정도 보인 것 같아서 안심이고, 다음에도 역시 이런 부분을 좀 더 그려보고 싶다.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2024년 8월 16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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