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오승욱 감독에게 먼저 작품을 제안했다고.
넷플릭스 <길복순>(2023)을 하기 전이었다. 뭐든 하고 싶은데 들어온 작품은 없었고, 오승욱 감독님과는 워낙 막역하니까. (웃음) 그래서 만났더니 마침 작품을 하나 쓰고 계신다더라. 그런데 당시에 쓰고 있던 작품이 분위기도 어둡고 시간도 많이 걸릴 거 같다고 하길래 경쾌하고 밝은 저예산 영화 하나 찍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렇게 <리볼버>가 나오게 됐다.
먼저 오승욱 감독을 찾을 정도로 <무뢰한>의 기억이 좋게 남았나 보다.
사실 <무뢰한>을 하는 도중엔 오승욱 감독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감독님께 글은 굉장히 날카로운데 현장에서 많이 타협하시는 거 같다고, 그 글을 감독님 본인이 쓴 게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웃음) 당시엔 <무뢰한>의 ‘김혜경’처럼 나도 날이 서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긴 시간 동안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감독님에 대한 이해도 생기고 인간적으로도 편안해졌다. 그래서 만약 내가 감독님과 또다시 작업하게 된다면 감독님이 원하는 바를 내가 이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리볼버>의 첫인상은 어땠나.
내 쪽에선 좀 더 가벼운 작품을 제안했는데 완성된 시나리오를 받고는 ‘이 감독님은 밝고 경쾌한 게 안되는 분이구나’ 싶더라. 여자 버전 <무뢰한> 같았다. (웃음) 그래서 걱정이 됐다. 항상 새로운 것만 할 수는 없지만 같은 감독과 비슷한 무드의 작품을 또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어떻게 해야 <무뢰한>과 비교되지 않게, 색다르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어떤 점이 <무뢰한>과 유사하다고 느꼈나.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 ‘하수영’이 <무뢰한>의 ‘김혜경’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와의 미래를 꿈꾸는 ‘하수영’에게서 ‘김혜경’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리볼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사이 <길복순>으로 액션도 해봤고 드라마 <일타스캔들>로 대중들에게?오랜만에 밝은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내내 어두운 작품만 하다 어렵게 밝은 분위기의 작품으로 돌아왔는데 <리볼버>를 하자니 다시 내 발로 무덤에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웃음) 하지만 오승욱 감독과의 약속이 있으니까 이왕 하는 거 잘 해내고 싶었다. 마침 직전에 <길복순>을 해서 액션 폼도 좋아지기도 했고, 감독님이 이 영화로 내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게 목표라고 해서 그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렇다면 <무뢰한>과 다른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오승욱 감독의 영화는 기교 없이 투박해서 좋다. 잔재주 안 부리고 묵직한 감정으로 이끌어간다. 그게 누군가에겐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클래식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리볼버>에는... 그 클래식함이 없지 않나? (웃음) 연기하면서는 몰랐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코믹한 부분이 많았다. 혹자는 오승욱 감독 감각이 젊어졌다고 하더라. 좋다 나쁘다를 논하는 게 아니라 그런 지점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감독님 전작들은 하나같이 다 쓸쓸하고 묵직했는데 이번엔 블랙코미디적인 부분이 강하게 느껴졌다.
‘하수영’을 연기하면서는 어디에 주안을 뒀나.
이전엔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연기를 많이 했고 이번엔 그런 걸 많이 걷어내려고 했다. ‘하수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얘기만 반복한다. 경찰의 신분으로 비리를 저지르는 대가로 받기로 한 아파트와 돈을 돌려받는 게 ‘하수영’이 원하는 전부다. 그런데 영화 내내 같은 말만 반복하니까 연기하면서 내 스스로가 지루하더라. 감독님께 얘기하기도 했다. ‘하수영’이 단조로워서 영화 전체가 루즈해지지 않을까 염려됐다. 그런데 창욱 씨, 지연 씨를 비롯해 함께한 배우들이 영화에 숨을 불어넣었다. 두 배우 모두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잘하는지는 몰랐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대본에 없는 부분을 캐릭터에 채워넣더라. 그들이 아니었으면 나 스스로도 연기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동료 배우들에게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오히려 그들의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하수영’을 단조로운 캐릭터로 만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선 두 분 감독님에게?너무 감사하다.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세대가 바뀌어 있더라. 그러는 사이 나는 누가 먼저 선뜻 작품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게 어려운 위치가 됐다.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나는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나를 어려워했다. 그렇다고 마냥 작품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지 않나. 기다린다고 오지도 않을 거고. (웃음) 그걸 인지하는 순간부터 편한 배우가 되는 법을 고민했다. 특히 <길복순> 변성현 감독님께는 많이 고맙다. 내가 감독님께 먼저 다가갔지만 감독님을 만나면서 나를 내려놓고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작품이 나로 인해 시작된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큰 거 같다.
최근엔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내가 했던 모든 작품이 흥행한 건 아니지만, 나는 내 필모가 자랑스럽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회자될 만한 작품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연기에 대한 갈증은 항상 품고 있었다. 그걸 채워준 게 <벚꽃동산>이다. 27년 만에 하는 연극이라 사실 처음이라 봐도 무방하다. (웃음) 자신감도 없고 무서웠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다. <벚꽃동산> 덕분에 무대를 더 사랑하게 됐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또 좋은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무대에 오르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전도연에게 연기란?
예전엔 배우 전도연과 배우가 아닌 전도연을 분리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근데 이제는 둘을 분리하려 하지 않는다.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 거 같다. 연기할 때 가장 나답고 즐겁다. 행복이 무어라고 콕 집어 정의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이 일을 지금까지 하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워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채울 게 아니라 내려놓고 비워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더 채우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연기 자체로도 즐겁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내 필모를 좋은 작품들로 채워나가는 것이다.
사진제공_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