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내면뿐만 아니라 얼굴과 온몸으로 규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만큼 푹 빠져 살았던 것 같아요” 영화 <탈주>에서 남북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일념으로 직진하는 북한 군사 ‘임규남’으로 분한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이제훈이 여름 성수기 극장가의 포문을 연다. 규남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신념을 지닌 자유의지의 표상 같은 인물. 마른 장작 같은 단단한 신체에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대중을 찾은 이제훈을 만났다. 물리적으로 동기화되고 싶은 마음에 촬영 전부터 촬영 종료까지 음식물을 극도로 절제했다는 그는, 부끄럼 없도록 한 땀 한 땀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배우의 사명 같다고 말한다.
다른 영화에 비해 언론시사를 일찍했는데, 호평이 많다.
언배(언론배급시사회)를 조금 앞당겨 한 건 입소문을 기대한 부분도 있다. (웃음) 좋게 봐주셨다면, 영화의 톤과 메시지가 의도대로 잘 전달된 것 같아 기쁘다. 내부에서도 대체로 직선적인 메시지와 짜릿한 추격전이 공존하는 이야기인 시나리오를 잘 구현했다는 평이었다. 그래서 관객도 이 부분을 알아봐 주시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영화를 미리 본 분의 반응 중 미처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는데, 관계성에 대한 시선이 그렇다. 같은 영화를 봐도 다양한 상상과 해석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임규남’은 북한에서 탈출한다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직진하는 인물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마냥 낙원이 아닌 ‘실패(성공)할 선택의 자유’라는 데서, 인간 본연이 지닌 자유의지의 표상 같기도. 어떻게 접근했나.
지금 말했듯이, 규남은 이 영화의 메시지 혹은 목적성을 캐릭터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실패할지언정 도전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갈망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난관에 부닥쳐도 주저하지 않고 직진의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정신과 마음이 대중에 가 닿았으면 좋겠더라. 개인적으로는 배우로서의 삶을 대입해 봤던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이 (오래 한다고) 어떤 자격증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사랑을 먹고 사는 삶, 선택받아야 하는 삶 아닌가. 이런 미지수가 가득한 삶을 위해 20대를 살았고, 또 지금도 그렇다. (웃음) 한데, 다시 20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연기 외의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연출, 제작 등 연기 외적인 영역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였는데 배우 이제훈의 지금 꿈은 뭘까.
연기 외적인 관심과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상통하는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 볼 때 가장 행복하고, 보면서 나도 찍고 싶다는 의지가 샘 솟더라. 만약 영화가 없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고, (웃음)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영화를 보며 꾸었던 꿈을 서서히 실천해 나가는 지금이 기적 같다는 생각이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도전하는 당신인데, 이번에는 어떤 도전을 했는지.
극한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내달리는 순수한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규남의 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규남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세상이라면 내게는 영화라 생각했고, 이런 마음으로 극한의 상황으로 나를 몰아갔던 것 같다. 또 규남이 정말 뛰는 장면이 많은데, 몸이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을 때 어떤 한계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딱 그 한 씬만을 찍는다면, 어떻게든 더 달려들 텐데 혹시라도 부상당하면 전체 스케줄에 지장이 생기니 그럴 수도 없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여러모로 쉽지 않은 경험이었다.
신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규남은 넉넉하지 않은 음식마저 부하들에게 양보하는 터라 늘 굶주려 있는 상태다. 3~4개월에 이르는 프로덕션 과정부터 규남의 이런 상황에 동기화하려 했었다. 촬영이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한계에 부닥치는 규남을 얼굴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먹는 걸 극도로 절제했었다. 거의 단백질 쉐이크를 달고 살았고, 식이 섬유를 보충하기 위해 야채를 섭취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탄수화물을 극한으로 자제했는데 촬영하면서 가끔 어지럽기도. 몸이 당분을 원하는 걸 느끼면서도 그걸 먹는 것조차 고민할 만큼 규남에 푹 빠져 살았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또 촬영 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우직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 다시 또 하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은 못 할 것 같은데, 또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고생한 만큼 규남이 극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 같다. 거의 쉬지 않고 작품하는데, 언제 그렇게 준비해서 <탈주>에 들어간 건가.
드라마 <모범택시1>의 촬영이 끝난 후 <탈주>라는 목표점이 생겼고, 한 6개월 정도 굶주린 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스스로 안쓰럽기도 하면서 (웃음) 동시에 배우라면 응당히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이들이 비단 북한만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분쟁 지역의 난민 등 많이 현존하지 않나. 그들에 비하면 음식을 절제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북한의 현실이나 군 상황은 실제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인데, 이입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분단 현실을 잘 자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그렇다. 무엇보다 <탈주>는 체제나 이념에 대한 영화라기보다 그 설정값이 북한일 뿐이다. 북한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려 하기보다 영화적인 상상력을 많이 가미한 이야기,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이런 부분에서 배경이 어디든 납득 가능하고 그 진심이 통할 거로 생각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과 첫 작업인데, 같이 해보니 어떻든가.
20대 중반 무렵 다시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이전에 독립영화를 많이 찍었었다. 그때 이종필 감독님은 독립영화 씬에서 매우 독보적인 분이었고, 언젠가는 꼭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감독님은 상업영화로 와서도 두각을 보이셨고, 내가 그의 네 번째 작품인 <탈주>에 참여하게 됐을 때 너무 기뻤다. 작업하면서 놀라운 순간이 많았다. 감독님과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 나는 규남에 대한 상상이나 전사를 편하게 이야기하는 반면 감독님은 상황 상황에 따라 일어날 가능성을 전부 페이퍼로 준비해 오시더라.
한번은 촬영 전날 그 씬에 대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셨었다. 그 장면을 대하는 규남의 자세와 생각을, 감독의 입장에서 정리해 주셨는데 굉장히 많이 도움됐었다. 사실 이렇게 일일이 챙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장에서 감독이 얼마나 할 일이 많고 바쁘고 정신없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믿음이 가는 감독님이구나, 괜히 배우가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아니구나’ 싶었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만들지 궁금하고, 기회가 된다면 당연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다.
상대역인 ‘리현상’ 역의 구교환 배우에게 한 시상식에서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공개적인 러브콜을 보냈고, <탈주>로 그 바람을 이뤘다. 그토록 함께하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웃음)
이종필 감독님과 마찬가지로 구교환 배우가 <꿈의 제인>(2016)이나 <반도>(2020) <모가디슈>(2021)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파수꾼>(2010) 할 때부터 익히 그 존재를 강력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웃음) 배우로 감독으로, 또 상업영화에서도 보이는 행보가 너무 멋져 흠모하던 참이었다. 오래전부터 간직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공식 석상에서 드러내어 당황했을 법한데도 내가 날린 하트를 하트로 답해줘서 감사하고 기뻤다. <탈주> 시나리오를 보내자 바로 답을 준 것 또한 너무 고마웠다.
같이 한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웃음)
촬영하면서 ‘이 사람의 매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매번 느꼈었다. 장면으로 예를 들면, 현상과 규남이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잠시 내려 쉬는 씬이 있다. 그때 현상이 손을 닦던 물티슈로 규남에게 비둘기가 나오는 듯한 마술을 보이는데, 이 장면 하나로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규남의 아버지가 현상 가족의 운전사였던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둘이 친밀한 관계라는 걸 그 짧은 한 컷으로 보여준 거다. 평상시에는 여유로우면서 예술적이고 한편으론 권위적인 현상이 누군가를 쫓을 때 보이는 잔인한 냉혈한 같은 면모, 이런 간극이 큰 모습이 현상의 매력인데 다른 배우가 하는 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멋지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친분도 좀 쌓았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도 많이 친해졌다. 내가 최근에 오픈한 유튜브(‘제훈씨네’, 전국의 독립영화관과 독립영화 소개를 목표로 한 개인 채널)에 출연해 달라고 하니 좋다고 하기도. 형 역시 이옥섭 감독과 함께 창작물을 만들어 유튜브에 꾸준히 올리고 있지 않나. 이번에는 배우 구교환과 작업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감독 구교환과 배우 이제훈이 만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형은 상상의 범주가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내 사고를 훌쩍 뛰어넘는 경지의 분이다. 정말 양파 같은 분이라 배우로 또 창작자로 계속 작품했으면 하고, 나도 언젠가 불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범택시>를 시즌제 드라마로 안착시켰고, 최근엔 MBC <수사반장1958>까지 연이어 성공시켰다. 전성기 같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파수꾼>과 <고지전>을 통해 괴물 신인으로 불리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후 쭉 이어진 흐름이기도 한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쎄… 신인시절에는 연기만 계속해도 좋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주역을 맡게 됐고 당연히 이에 따른 책임감도 생기고 평가에 신경 쓰이기도 한다. 계속해서 사랑받으며 일하고 싶지만, 그 (대중의) 사랑이 보장된 일은 아닌지라, 어떤 피드백이든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매우 귀담아듣고, 매 순간 나아지려고 노력중이다. 지금이 전성기인지는 잘 모르겠고, 언젠가 찾아올 거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따른 업앤다운은 필수라 이에 일희일비하지 하지 않으려 한다. 어느 작품이든 부끄럽지 않도록 한 땀 한 땀 만드는 게 배우의 사명이고, 이런 불타오르는(웃음) 열정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요즘 배우 시장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즉 쏠림 현상이 심한데 ‘배우 이제훈’이 선호되는 포인트는 뭘까.
어려운 질문을… 작품을 제안받으면 어떤 부분이 좋았고, 또 어떤 부분이 그렇지 않은지 진솔하게 말씀드린다. 하나의 작품(글)이 나오기까지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노력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기에 정성스럽게 읽고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 작품에 같이 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그렇게 인연을 맺다 보니 여러분이 찾아주지 않나 싶다. 마음을 다하고 진짜 열심히 하니까! 이 또한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 같다.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또 로맨스물은 안 하는 건가, 못하는 건가. (웃음)
직업적인 부분으로 보자면, 안 해본 직업이 많아서 메디컬 드라마로 의사 가운도 입어보고 싶고 법정드라마에서 판사나 검사도 좋을 것 같다. 로맨스물은 정말 타이밍의 문제 같다. 어쩌다 보니 쉬지 않고 일했음에도 딱히 로맨스 멜로 이야기가 없는 거다.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는 구강액션 전문이라 로맨스가 전혀 없고, 혹시 <시그널2>에는 있으려나… (웃음) 진심으로 로맨스 멜로를 하고 싶다.
로맨스 멜로도 다양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격정, 소프트 등 다양하지만 <건축학개론>에서 풋풋한 사랑을 해 봤으니, 지금은 내 또래에 맞는 현실적인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다. 김은숙, 박해영, 박지은 작가님의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그분들의 작품에 녹아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사적인 질문인데 실제로도 그 흔한 연애 기사 한 번 뜨지 않는데 무언가 이유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민이 왜 없겠나. 너무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문제는 점점 그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집에서도 걱정하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바로 프로포즈하고 싶다. (웃음)
댄스 잘한다고 유명하더라! 6월 초 열린 2024년 팬미팅에서는 BTS 정국의 댄스를 커버했다고. 비하인드 좀 들려달라.
배우 일은 실제로 팬을 가까이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팬미팅을 통해 항상 애정을 주시고 응원해 주는 분들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자, 무리해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게 됐다. 정말 춤에 재능이 없지만, 서툰 댄스라도 팬분들이 실수나 하지 말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예쁘게 봐주실 것 같아 도전해 봤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댄스인데, 정말 쉽지 않더라. 한 번에 2~3시간, 총 일곱타임 레슨받았다, 작년에는 열 타임이었으니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웃음) 힘에 부치지만, 결과물을 보고 좋아할 팬들을 상상하며 혼자 연습하곤 했는데 결론은 ‘K-팝 아이돌은 대단하다’는 거였다. 선택받고 끊임없이 갈고 닦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노래와 춤, 퍼포먼스를 동시에 하다니 정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있더라.
사진제공.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2024년 7월 1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