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원더랜드>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우선 시나리오가 흥미롭고 감동적이었다. 그리운 사람을 영상통화로 만난다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고,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AI 기술로 극복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더라. 처음 작품에 참여할 때에는 '원더랜드' 같은 기술이 언젠간 오겠지 생각하며 설?는데, 어느새 그런 세상이 훌쩍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거 같다. (웃음)
촬영하기 전만 해도 ‘원더랜드’ 서비스가 있다면 신청해 보고 싶다고 생각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안 좋게 활용될 수도 있고, 윤리 문제도 있을 거 같아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지만. (웃음) 그래도 AI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우리 영화가 다양한 질문을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입대 전에 찍은 작품을 드디어 만나 보게 됐다. 제대 이후 처음 선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2020년에 촬영을 끝냈으니 지금보다 4~5년 어린 모습을 보는 거지 않나. 더 탱탱하고 예쁘더라. (웃음) 특히 수지 씨랑 함께하는 장면들이 더 예뻤다. 예전 모습을 보니 어릴 때 더 열심히 연기했어야 했나 싶더라. 그때 모습을 더 많이 남겨둘 걸 그랬다.
나이 드는 게 아쉽나. (웃음)
나이를 먹는 게 마냥 기쁘진 않지만 슬프지도 않다. (웃음)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내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어릴 때 좋은 작품 많이 남겨라는 선배들의 말이 이제야 와닿는다. 그래서 요즘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 같다.
‘정인’ 역의 수지와 백상예술대상 진행자로 6년간 호흡을 맞췄지만 연기 호흡은 <원더랜드>가 처음인데.
MC를 볼 때는 시상과 수상 관련한 멘트만 나누다 보니까 서로 진행자로서만 접근하고 그렇게 돈독한 친분을 쌓지는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존댓말을 썼는데 영화로 만나면서 친해졌다. 캐릭터에 대해 계속해서 얘기를 나누고 연구하다 보니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됐고, 많이 가까워졌다. 영상통화 하는 장면에서도 수지 씨가 항상 현장에 와서 목소리로 연기를 해줬다. 그 덕에 조금 더 생동감 있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극중 ‘태주’와 ‘정인’에 대해 연인 사이라는 것 외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둘의 서사가 영화에 많이 드러나진 않는다. ‘태주’, ‘정인’을 제외하고 다른 인물들은 다 가족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봤을 때 가족도 아닌데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할 정도로 둘 사이가 애틋할까 의아할 수 있을 거 같더라. 감독님과 프러프로덕션 작업할 때 ‘태주’, ‘정인’은 서로 고아였는데 고등학교 때 만나서 서로 가족처럼 지냈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관계이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평범한 연인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같은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수지 씨와는 두 캐릭터의 관계성과 그 이전의 서사를 잘 만들어 가자면서 만날 때마다, 리딩할 때마다 서로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태주’ 입장에서 ‘정인’을 에쁘게 담아주고 싶었다. 그때 찍은 사진은 다 저장해놨다. 영화 스코어가 올라갈 때마다 하나씩 공개하겠다. (웃음)
사실상 1인 2역을 했다. AI ‘태주’와 실제 ‘태주’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을까.
AI ‘태주’를 AI라고 의식하며 연기하지는 않았다. AI ‘태주’는 현실 ‘태주’와 ‘정인’ 사이에 남겨진 사진, 영상, 그리고 ‘정인’의 기억으로 구현된 캐릭터다. ‘정인’에게 이상적인 ‘태주’의 모습을 투영한 인물이니까 밝고 즐겁게 연기했다.
반면에 현실 ‘태주’에 대해서는 감독님의 디렉션에 따라 조금 이상하게 보이게끔 연기했다. (웃음) ‘태주’는 오랜 시간 의식 없이 지냈고, 깨어난 뒤 AI ‘태주’를 보며 자신이 진짜인지 AI ‘태주’가 진짜인지 혼란스러웠을 거다. 그래서 현실 ‘태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 가득한 인물로 연기했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로 하고 싶은 작품, 역할이 더 다양해졌다. 어렸을 때에는 작품을 선택할 때 한계가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컸다. 나이가 들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치가 쌓이면서 장르, 역할 폭도 넓어지는 것 같다. 뮤지컬도 그 일부분이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어떤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예전에는 나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신경썼던 것 같다. 상대가 마음 편하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후임들을 챙기다 보니 문득 '나는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챙겨주는데 그럼 나는 누가 챙겨주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군대에서 동기들이 챙겨주기는 했지만, 그때까지의 삶을 돌아보니 가족, 친구, 팬 분들로부터는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군대에서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면서 많이 충전했다.
그래도 그런 성격 덕에 미담이 많은 배우 중 하나로 꼽히지 않나. (웃음)
확실히 그런 건 장점이다. (웃음) 이번 <원더랜드> VIP 시사회 때 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감독님, 작가님, 동료 배우들, 대학 동기들, 군대 친구들을 초대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다 와주셔서 울컥했다.
본인보다 남들을 먼저 신경쓰는 게 부담으로 다가올 때는 없을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다들 주변을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나. 모두가 그럴 거다. 다만 그런 감수성이 내가 좀 더 발달한 거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건 나에게도 좋은 거 같다. 상대가 불편하지 않을까 먼저 생각하니, 나도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건강하게 푼다. 요즘엔 션 선배와 달리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에게 익숙한 길이 아닌 새로운 루트로 달리다 보니 여행 온 느낌도 든다.
마지막 질문이다. 배우로서 목표가 무엇일까.
군 입대 전까지 제대로 된 액션을 해본 적 없다. 소원을 풀었다고 하기에는 쑥스럽지만 이번에 드라마 <굿보이>라는 작품에서 복싱 금메달리스트 출신 경찰로 나온다. 뮤지컬도 그렇고 액션도 그렇고 도전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현장에서 늘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과 일하면 상대도 힘을 많이 받는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 마음을 변치 않으려고 생각하며 일을 하려 한다. 매번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면서,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제공_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