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시한부를 선고받은 엄마이자 딸인 ‘바이리’(탕웨이). 남겨질 이들을 위해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한다. 가상 공간에 사는 인공지능 ‘바이리’는 고고학자가 되어 유적을 발굴하고, 떨어져 있는 딸과 엄마랑 매일 영상통화로 소통한다. 자기가 죽었다는 것도 모른 채. 영화 <만추>(2011) 이후 김태용 감독과 재회한 탕웨이 배우를 만났다. 김태용 감독을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소개하며, 그와의 작업을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개봉 소감은. 또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관객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고 긴장된다. 관객이 자기의 실제 생활과 영화를 어떻게 연관시키고, 어떻게 느끼는지가 제일 궁금한 부분이다. 시사회에 온 한 열다섯 살의 소녀가 처음 ‘바이리’(탕웨이)가 병상에 있는 모습부터 울기 시작해서 끝까지 울었다고 하더라. 이 이야기의 어느 부분이 감정을 건드렸기에 울었는지… 또 어떤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우는 정도로 MBTI의 F와 T 정도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해서 재미있었다. (웃음)
시나리오에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사실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부터 꾸준히 이야기를 들어왔다. 마치 내가 테스트 대상인 듯 자꾸 물어보는 거다. 배우 입장에서 진지하게 읽은 건 ‘촬영 들어갑니다’ 할 때로, 이때 비로소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 좋았던 부분은 AI(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인물의 관계를 보여주고 이런 관계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감독님은 창작하는 예술인으로서 또 과학자가 된 듯 면밀히 살피며 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난 그분이 이런 시도를 하는 게 너무 좋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만약 지금 다시 시나리오를 쓴다면, 당시와 달리 인공지능이 더욱더 발달했고 그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에 아마 다른 방향의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김 감독은 당신이 질문을 많이 했다던데 주로 무슨 질문이었을까.
오히려 감독님이 내게 질문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 꿈은 뭐였냐 등등 한번은 내가 얘기하다가 운 적이 있는데 그걸 다 녹음했더라. 마치 내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 계속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질문이 많았다니!
처음 구상했던 이야기와 완성된 이야기, 차이가 있을까.
감독님은 이야기꾼이다. 솔직히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는 감독은 좋은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를 끌어들이고 참여하게 해야 하니 언변, 소위 말발이 좋아야 한다. 감독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하나였다.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메시지와 상관없는 변화는 있었지만, 메시지에는 변함이 없다.
바이리는 남겨질 딸을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하지만, 엄마(니나 파우)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바이리의 모성애로 시작해 나중에는 딸 바이리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실제로 어떤 엄마이고 딸일까.
엄마, 나 그리고 딸 썸머, 모두 외동딸이다. 실제로 셋이 있을 땐 영화 속 모습과 비슷하다. 바이리가 딸을 위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부분도 있다. 극 중 영상 통화를 하면서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가능하면 엄마와 딸이 같이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고 있다. 딸에게는 ‘외할머니는 지금 네 살 반이야, 네가 언니이니 보살펴 줘야 해’라고 한다. 손녀가 할머니가 운동하는지 안 하는지, 또 건강한 음식을 먹는지 잘 감시(?)하고 있다.
베테랑 배우인 니나 파우와 모녀로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
내가 정말 죽도록 사랑하는 분이고 영원히 그럴 거다. <원더랜드> 시사 후 애프터 파티에서 만난 지인 두 분이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엄마를 연기한 배우가 너희 엄마와 정말 똑같더라’ 하시더라. 이 말을 듣고 정말 너무 행복했고, 감독님이 엄마 역 배우를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왜 이분이 바로 떠올랐는지 알겠더라. 선생님은 이 작품을 위해 수많은 역경(?)과 긴 시간을 들여 현장에 와 주셨다. 팬데믹 기간이라 한국에 오고 가기 위해 42일을 격리하셨고, 와서는 ‘탕웨이~’ 하며 안아 주셨다. 너무 발랄하고 항상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다. 어린아이처럼 항상 모든 걸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현장에 이런 기운을 퍼뜨리신다. 그러다가 막상 연기에 들어가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몰입해 연기하는데, 만약 선생님이 없었다면 엔딩의 공항 장면은 없었을 거다. 지금 큰 바람은 개봉 후 니나 파우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손잡고 같이 무대인사 하는 거다.
딸 ‘바이지아’(여가원)의 캐스팅에도 의견이 반영된 건가.
맞다, 최종 후보를 두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고 내 뜻대로 결정되었다. 이 딸을 만날 수 있어 운이 정말 좋았다. (웃음) 연기를 위한 연기가 아니라 정말 엄마 바이리를 믿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인다고 느꼈다. 굉장히 순수한 눈빛을 지녔고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아는 아이였다. 무슨 이야기든 아무 조건 없이 믿고 받아들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는 아역 배우에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바이리가 사는 ‘원드랜드’ 세상에는 가이드라고 할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인공지능 ‘성준’(공유)이 존재한다. 바이리와 몇 차례 만나는데 둘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문득 궁금하더라.
그렇지 않아도 그와 바이리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궁금해 감독님께 물어봤었다. (웃음) 왜냐하면 공유 씨와 만날 때마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거든. 같이한 장면이 너무 적어서 아쉽다.
김태용 감독님에 따르면 당신이 ‘정인’(배수지)과 ‘태주’(박보감)의 에피소드를 매우 좋아했고, 또 두 배우를 보면 너무 예쁘다고 감탄했다고.
그 두 분을 또 언제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겠나. 최대한 눈에 담아야지! 두 분은 한마디로 카메라가 편애하는 배우다. 무대인사 때도 틈 나는 대로 사진 찍고 그랬다. 피부, 눈빛, 입꼬리가 올라가는 미소까지 예쁜 걸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 아닌가 한다. (웃음) 수지 씨는 한국에서 국민 첫사랑이라고 불린다는데 과연 건강하고 밝고 순수한 분이었다. 정인-태주 커플을 보고만 있어도 그냥 마음이 편해지고 생기 가득 찬 에너지를 받았다. 또 이번 작품은 수지, 보검 배우만이 아니라 (최)우식, (정)유미 배우까지 함께해서 말할 수 없는 극한의 즐거움이었다. 계속 쳐다봤었다.
원더랜드 세상에서 바이리의 직업은 고고학자다. 사막, 모래 폭풍, 로컬 풍경 등은 모두 CG로 작업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기하는 게 힘들진 않았나.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현장에서 상상으로 연기해야 해서 조금 어려웠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니 너무 아름답고 장관이었다. 여기에 음악까지 입혀 아주 잘 나와서 좋다. 생명의 나무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내가 마치 신선의 경지에 오른 듯한 느낌도 들더라. 또 후반부 자동차가 모래폭풍을 뚫고 나오는 장면에서 차가 전복되며 바이리가 위험에 빠지는데 이때 ‘성준’이 나타나서 안아주는데 너무 로맨틱했다.
<원더랜드>는 영화 <만추>(2011) 이후 김 감독과 오랜만에 함께한 영화다. 남편이자 감독인 김 감독과는 첫 작품인데 이전과 차이점이 있을까.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생. 로. 병 사, 네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인생의 큰 변환점은 딸 ‘썸머’의 출산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했고, 또 이에 맞닥뜨려 나갈 힘이 생겼다. 감독님과의 작업에 있어 이전과 차이점을 꼽는다면, 예전보다 훨씬 익숙해졌으니, 적응하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거다. 마침, 유미 씨나 우식 씨도 <부산행> 이후 8년 만에 만난 거라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호흡이랄지. 감독님과 나도 그런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SNS에서 제목인 ‘헤어질 결심’을 변형한 다양한 패러디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본 적이 있는지.
하나의 작품이 끝난 후 그 배우를 좋아한다는 건 아마도 맡은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만약 이번에도 그렇다면 바이리 캐릭터를 위한 내 노력의 반응이 아닐까 한다. SNS 패러디는 미처 못 봤는데 알려준다면 딸 썸머에게 보여주며 자랑해야겠다. (웃음) 또 <원더랜드>에 대한 반응을 하나하나 번역해 읽어보려 한다.
앞으로도 김 감독과 작업할 의향이 당연히 있겠지? (웃음)
당연하다! 거절은 불가능하다. 그분의 생각과 관심사를 잘 알고 있는데 나 역시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다. 가끔 내가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면 그는 더 깊이 파고들어 숙고해서 답을 주곤 한다.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지금까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지금까지 좋은 캐릭터를 만나 왔음에 감사하다.
사진제공.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024년 6월 1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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